|
|
[과학과 신앙] 과학기술의 발전도 하느님의 섭리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은 산소 1분자와 수소 2분자로 만들어집니다. 곧 H2O입니다. 이 정도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설탕이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공장에 투입하여 만든 천연 감미료라고 설명하면 쉽게 이해되지만, 설탕이 보통 글루코스(포도당)나 프럭토스 또는 과일당을 의미하며, 탄소 6개와 수소 12개와 산소 6개 또는 탄소 11개와 수소 22개와 산소 11개로 구성된 분자라고 설명하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화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철이니 산소니 수소니 하는 원소가 있다거나, 이들 원소가 각기 다른 무게(원자량)를 갖고 있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르질리우스의 실험실
오늘날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원자량, 가령 수소는 1이고 산소는 8이라는 이 원자량을 처음으로 측정한 사람은 18세기 화학자이던 베르질리우스(JonsJakob Berzelius, 1779-1848년)입니다.
스웨덴 태생의 화학자이던 그는 값비싼 연구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오늘날의 화학자들과 달리, 정말 형편없는 실험장비로 실험하였으면서도 당대 최고의 실험화학자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그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봅시다.
베르질리우스의 실험실은 전기로도 없고 후드도 없으며, 물도 가스도 없는 조촐한 보통 방 두 칸입니다. 벽에 붙어 있는 찬장에는 몇 개의 화학약품이 얹혀있고, 그 중간엔 수은을 담은 구유와 송풍용 램프 받침대가 놓여있습니다. 그 옆에는 개수대로 사용하는, 밑에 구멍이 있고 마개가 있는 돌 절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항아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엌 옆에는 조그만 난로가 놓여있습니다.
그 난로를 가열장치로 대신하면서 2천 번 이상의 실험을 거듭하여, 그때까지 알려진 50종의 원자량을 결정하였습니다. 20-21세기의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결정된 원자량과 그가 결정한 원자량을 비교해 보면, 베르질리우스의 실험기술이 얼마나 정교했고 또 인내심이 강했는지 증명됩니다.
“좋은 노력의 결과는 영광스럽고, 예지의 뿌리는 소멸되지 않는다.”(지혜 3,15)는 성경 말씀대로 그가 이룬 업적은 근대화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준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화학자 가운데 돌턴(John Dalton, 1766-1844년)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딱 부러지게 논리정연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실험기술이 정교한 실험가도 아니었으며, 화학자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색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난과 신체상의 약점을 이겨내고 원자가설이라고 하는 위대한 이론을 세워 현대화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우리는 베르질리우스와 돌턴의 삶에서, 성장 배경이 어려워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가난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큰 평화로 즐거움을 누리리라”(시편 37,11). 또는, “가난한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2코린 6,10)라는 성경 말씀대로 가난하고 불우했던 그들의 삶은 오늘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하고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한편, 현대화학에서 원자구조나 소립자, 방사선 동위원소 등을 공부할 때 빠지지 않고 듣게 되는 이름은 바로 뉴질랜드 태생의 러더퍼드(Ernerst Rutherford, 1871-1937년)입니다. 핵의 발견은 물론이고, 수소 핵에 양성자란 이름을 붙였으며, 알파, 베타, 감마 입자의 이름도 붙였습니다. 또한, 방사선 동위원소에 반감기의 개념을 도입한 화학자입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장학생 선발 시험이 있었습니다. 1등을 한 학생 한 사람에게만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러더퍼드는 안타깝게 이 시험에서 2등으로 선발되어 처음엔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이 러더퍼드와 함께했던가 봅니다.
이 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된 사람이 결혼 문제로 국내에 남기로 하고 유학을 포기한 덕분에 러더퍼드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유학의 행운을 잡게 되었습니다. 만일 러더퍼드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장학생 선발의 행운을 잡지 못했다면 과연 그가 핵 발견과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홀과 에루의 알루미늄
요즈음이야 알루미늄은 콜라 캔이나, 포일, 냄비 등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나폴레옹 시절에는 알루미늄이 금보다 더 귀중한 보석이었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 나폴레옹 3세(CharlesLouis Napoleon Bonaparte, 1808-1873년)는 보통 때는 금이나 은으로 된 식기를 사용했지만, 아주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알루미늄으로 된 포크나 숟가락으로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에는 알루미늄이 귀하고 값비싼 금속이었다는 말인데, 순수 알루미늄을 얻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홀(Charles Martin. Hall)과 에루(헤럴트라고도 함; Paul Heroult)가 혁명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술이 부족했던 1850년대 이전까진 알루미늄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1854년 나트륨을 사용하여 금속 알루미늄을 얻는 방법이 발견되긴 했지만, 당시 알루미늄 가격은 1파운드당 십만 달러, 곧 우리 돈으로 약 400g에 1천2백만 원이니 1g에 3백만 원 정도입니다. 요즈음 금값과 비교하면 얼마나 귀한 금속이었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1파운드당 12만 원 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리고, 1890년엔 1파운드당 2,400원, 1895년엔 600원 하다가 요즈음은 다시 1,600원 수준이 되었습니다. 가격 추이를 보면 이 두 사람의 공헌이 얼마나 큰 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태생의 홀과 프랑스 태생의 에루, 이 두 사람은 지구의 거의 정반대에서 태어나 자라고 죽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같은 해(1863년)에 태어나서, 같은 해(1914년)에 죽고, 같은 해(1886년) 거의 같은 시기에 순수 알루미늄을 얻는 똑같은 방법을 발명하였습니다. 이 무슨 장난 같은 운명일까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이렇게 가난하고 불행했던 환경을 딛고 믿음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은 많은 신앙 선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희한한 인연 또는 우연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거나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간 사람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우연이나 인연에 대해 보통사람들은 어쩌다 일어나는 행운 또는 불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문으로 듣던 그분을 먼발치에서라도 뵙고자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감으로써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 세관장 자캐오가 생각납니다.
과연 키 작은 자캐오가 그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뵐 수 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시려고 그 자리에 계셨을 것이라는 게 신앙인의 생각일 것입니다. 가난했던 어부 시몬이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고 우리 교회의 반석이 되는 과정도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믿고 받아들이는 우리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희망의 빛
우리 교회에서 역할도 다르고 부르심을 받은 때와 장소도 너무나 다른 베드로와 바오로! 동시대에 살다 천국에 들어 오늘도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는 두 위대한 사도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 우리 교회의 신비가 절실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엔 결코 우연이 없으리라는 것이 신앙인으로서뿐만 아니라 40년 동안 고분자공학을 전공해 온 과학자로서 제가 체득한 교훈입니다.
러더퍼드나 돌턴의 경우도 그렇고, 홀과 에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 위대한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학기술의 발전마저 모두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분들의 삶과 업적을 보면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언제나 다음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6).
앞에서 언급한 위대한 화학자들만큼 능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이런 희망은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제 연구실에서 우연히 이루어진 어떤 성과가 세상 사람들을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되고, 사람들에게 세상 살 맛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의 연구활동으로 하느님께 더 큰 영광(Ad Majorem Dei Gloriam!)을 드리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 꿈꾸며 오늘 밤에도 연구실에 불을 밝힙니다, 아멘!
[과학과 신앙] 두드려야 얻어지는 ‘세렌디피티’
고분자화학과 플로리
미국 화학회에서는 1986년부터 「이력, 진로 그리고 꿈」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화학자들을 엄선하여 그들의 학문 세계와 인생 역정을 자서전 형식으로 엮는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 중에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로버츠 교수가 쓴, 「적시적소(適時適所, 그때 그곳)」란 제목의 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학문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우연처럼 기회가 만들어졌고, 먼 훗날 뒤돌아보니, 자신의 모든 학문적 성과나 인생의 중요한 사건에 관련된 그 우연은 적시적소에 필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비단 화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오늘의 자신을 만든 ‘그때 그곳’은 언제 어디서였을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로버츠 교수가 쓴 책 제목을 빌려, 제가 전공하는 고분자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기고 그 공로로 1974년 화학 부문의 노벨상을 받았던 P.J. 플로리(Flory) 교수의 삶을 통해 ‘그때 그곳’의 흔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분자화학 분야에서 플로리 교수의 공헌은 지대합니다. 고분자 전공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의 80% 이상의 내용은 거의 그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플로리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 주 노스 맨체스터에 있는 맨체스터대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신시내티대학교와 코넬대학교, 스탠더드 석유개발회사와 굿이어 타이어 고무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1961-1976년에 스탠퍼드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76년 명예교수가 되고 1985년에 작고하였습니다. 그의 이력에 나타난 대로 그는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로리가 고분자화학의 토대를 완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된 데는 아주 기막힌 우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델라웨어 주 웰밍턴에 있는 듀폰의 연구원으로 취업합니다. 고분자화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였지만, 듀폰에서 캐러더스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고분자화학의 세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플로리와 캐러더스
지난 2000년 새로운 천 년기를 앞두고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이 지난 천 년 동안의 10대 발명 가운데 하나로 플라스틱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고분자의 하나인 플라스틱이지요. 그때 1900년에서 2000년까지, 곧 지난 백 년 동안 인류 최고의 발명품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컴퓨터와 함께 10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이 바로 나일론입니다.
오늘날 의류용은 물론이고 각종 산업용품으로 널리 쓰이는 나일론을 발명한 분이 바로 캐러더스입니다. 하지만 나일론 합성 과정의 이론 전개는 순전히 플로리의 몫이었습니다. 플로리는 캐러더스와 함께 일하면서 나일론뿐만 아니라 고분자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고분자과학의 중심을 이루는 수많은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1920년대 말부터, 독일의 슈타우딩거가 고분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화학자들조차 고분자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만큼, 플로리의 탁월한 천재성은 캐러더스에 의해 꽃필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참고로 고분자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슈타우딩거는 고분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공로로 1954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듀폰에서 캐러더스와 오랫동안 함께 일하였다면 플로리의 삶은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다른 삶의 길을 걸었을지 모릅니다.
캐러더스는 40대를 갓 넘긴 나이에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립니다. 1938년 플로리가 듀폰을 떠나 2년간 신시내티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캐러더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 때문입니다.
코넬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된 플로리 교수의 「고분자화학의 원리」라는 책은 고분자 과학의 성경 같은 교과서입니다. 플로리는 8년간(1948-1956년) 코넬대학교에 재직했는데 그 책의 집필은, 또 다른 저명한 화학자이며 그의 코넬대학교행을 가능하게 하였던 디바이의 초청 덕분이었습니다.
플로리 교수가 듀폰, 에소, 굿이어 등 기업 연구소에 있으면서 발표한 고분자 관련의 이론에 감탄한 디바이 교수는, 코넬대학교가 마련한 베이커 강연에 플로리를 초청하게 됩니다. 그 강연 자료를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위 책입니다. 디바이의 초청이 없었다면 그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플로리 교수가 고분자과학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탁월한 이론을 세운 배경에는 그의 다양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터에서 용액 속에서 고분자의 거동을 비롯하여 고분자의 기본적 성질에 대해 뛰어난 논문들을 발표하였습니다.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부산물로 얻은 성과입니다.
플로리 교수는 코넬대학교 시절을 끝내고 1960년까지 피츠버그에 있는 멜론연구소에서 고분자 분야 연구소장을 맡습니다. 그는 여기서 코넬대학교와 멜론 시절을 통해 지난 8년간의 회사 경험을 살려 고분자 용액의 점도와 분자 크기의 상관성에 대해 더욱 깊이 연구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플로리 교수의 삶을 보면, 정말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연구를 통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이런저런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과학자에겐 창의성 못지않게, 이른바 하늘이 내린 그 기회를 어떻게 잘 살리는지가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가름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플로리 교수는 그 기회를 아주 적절히 잘 살린 과학자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페니실린 발명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플레밍은 우연히 미생물 배양 배지 접시 바닥에 붙어있던 곰팡이에서 그 힌트를 얻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엑스선도 뢴트겐이 진공관에서 방전되는 전하의 영향에 대해 연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뢴트겐에게 물리학 부문의 제1회 노벨상을 안겨준 발견이지요.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더 깊이 살펴보면, 그런 우연 뒤엔 필연적으로 그 과학자의 피와 땀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는 숱하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직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교우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계기는 저마다 다를 테지요. 이웃의 권면으로 성당 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을 테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주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저처럼 제 발로 성당에 찾아가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남에는 결코 우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가톨릭 신자가 된 것으로 생각되어도, 하느님의 섭리와 부르심이 없으면 결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겠지요?
요한 묵시록 3장 20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주님께서 곁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시는데도 쉽게 문을 열지 못하는, 아니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닫힌 마음을 가진 이웃이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와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자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노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세렌디피티를 바란다면 두드려라
플로리 교수라고 하는 한 고분자 화학자의 삶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려면 우연히 찾아온 위대한 과학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밤낮없이 노력해야 가능한 법입니다.
참,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그렇게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대한 성과로 이끌어내는 능력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릅니다. 사전을 보면 ‘행운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는 단어입니다. 과학사에서는 완전하게 우연히 얻어지는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우연에 따른 과학적 세렌디피티는 없습니다. 저온 살균법으로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라고 하였다지요? 세렌디피티가 일어나려면 ‘준비되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우연한 발견이라고 하지만, 그 말엔 그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30년 이상을 고분자 과학의 연구에 몸담은 저에게도 그런 세렌디피티라고 부를 만한 세기적 발견을 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단히 노력하면서 주님께 부지런히 청하고,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청하는 대로 받고, 두드리면 문이 열리겠지요(마태 7,8 참조).
[과학과 신앙] 노벨상의 마흔한 번째 의자
노벨상 수상 자격
노벨상 수상은 모든 과학자의 꿈입니다.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일본 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자 우리 언론이 들쑤셔졌습니다. “역시나 일본….” 하는 부러움과 함께, 일본 과학계를 조명하는 분석 기사가 넘쳐났습니다.
더구나 지난해엔 외국 대학 소속이 아닌, 중국 본토 학자로서 사상 최초로 중국 대륙에 노벨 생리 · 의학상을 안겨준 한 여류학자 소식에, 우리는 모두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눈으로 중국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누군가가 하루빨리 노벨상을 받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상에는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연구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발표 당시 생존해야만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당 분야의 공헌도를 따져 세 사람까지만 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아무리 공헌도가 크더라도 기여도 면에서 세 번째 안에 들지 못하면 노벨상 수상과는 영원히 인연이 없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몇 분은 충분한 수상 자격을 갖추고서도 안타깝게 노벨상 수상의 기회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력이 약한 것도 그 한 가지 이유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수상자들 출신 국가의 경쟁력에 따라 수상여부가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무리 뛰어난 학자이며 역사적인 연구 성과를 남겼다 하더라도 물리학자, 화학자, 또는 생리 · 의학자 이외의 학자들은 평생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노벨의 유언 때문이지요. 가령 수학자나 지질학자 등은 제아무리 뛰어난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죽었다 깨어나도 노벨상은 받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세기적 연구를 하고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노벨상의 뒤안길
과학사에 따르면, 안타깝게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놓친 대학자들이 많습니다. 수소, 산소, 철, 금, 은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원자량이나 기본 성질들에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성을 알기 쉽게 표로 만들어 놓은 것을 주기율표라고 합니다.
주기율표를 만든 사람은 러시아 화학자인 멘델레예프(D. I. Mendeleev, 1834-1907년)입니다. 주기율표 덕분에 화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원소의 기본 성질을 알기 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학들에게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대단히 크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화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 깁스(J. W. Gibbs, 1839-1903년)만큼 자주 등장하는 이름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화학의 기본인 에너지에 관한 이론과 통계역학 등의 기초를 세운 학자인데 노벨 화학상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그렇지만, 이분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엑스선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던 뢴트겐이나 삼투압 이론 등으로 노벨상을 받은 발스 같은 동시대의 학자들보다 결코 학문적인 탁월성이 뒤떨어졌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탁월한 연구 성과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불운을 겪은 것은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여러 가지 규정에 따라 제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멘델레예프는 두 차례(1905년과 1906년) 후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자연의 이치로 확고한 기초가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최종 노벨상 후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대신 1905년에는 염료와 유기화합물 합성으로 유명한 바이에르에게, 또한 1906년에는 순수 불소를 제조하고 전기로를 개발한 므와상에게 5대 4의 표차로 노벨 화학상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0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한 학자에게만 노벨상 수상 자격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생애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의 업적이 “너무 오래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노벨상 후보에서 제외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미국의 라우스는 1911년 악성종양이 바이러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발견하고서도 1966년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을 때까지 56년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세상을 떴으면, 그는 영원히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놓쳤을 테지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선정과정은 철저히 미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사가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선정과정에서 “수상할 만하다.”고 판정했으면서도, 최종 단계에서 수상이 유보된 학자들의 이름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물론 깁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어떻게 보면 갈릴레오나 뉴턴의 업적에 필적한다고 평가됩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이 당연함에도, 그의 생전에 한 번도 후보로 추천된 일이 없다는 것은 정말 역사의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천만 되었으면 당연히 받았으리라 생각되는데도…. 깁스가 후보로도 추천되지 못한 데에는 분명 과학 이외의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타깝게 노벨상을 놓친 대학자들
만약 노벨상이 1870년대나 1880년대에 있었더라면, 멘델레예프도 틀림없이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에이버리는 디엔에이(DNA)가 유전의 담당체라는 것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너무나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당대의 학자들에게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에서 “더 많은 것이 알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평가와 함께 유보되었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노벨상 후보자 명단에만 머물다가, 195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에이브리 덕분에 DNA에 관한 노벨상은 1959년에 오초아와 콘버그에게, 1962년에는 왓슨과 크릭에게 돌아갔습니다. 만약 그가 4년을 더 살았더라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학자가 노벨상 수상 직전에 좌절하였습니다. 별의 구조와 관련된 기체 구(gas sphere)를 발견한 엠덴은 1923년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2인 이상의 공동수상 금지 규정 때문에 아깝게 노벨상 후보에만 머물고 말았습니다. 살세균소의 활동 양태에 관한 코언의 연구업적은 “상을 탈만하지만 공헌자가 많아, 상 하나로는 선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노벨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그의 동료와 후예 중 일부 학자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31년에 애스카임과 존덱은 임신 검사법의 개발로 거의 노벨상을 탈 뻔했습니다. 하지만 1973년 다시 후보로 추천되었을 땐 “이미 새로운 발견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을 놓쳤습니다. 생리학자인 쿠인케는 1909년과 1918년 두 차례 후보로 올랐습니다. 1918년에도 거의 마지막 수상 후보로 고려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을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안타깝게 최종 순간 탈락하였습니다.
노벨상의 마흔한 번째 의자
프랑스 학술원 회원수는 40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자들이라도 40명 안에 선정되지 못하면 학술원 회원의 의자에 앉을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이에 빗대어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노벨상을 받지 못한 학자들을 종종 “노벨상의 마흔한 번째 의자에 앉았다.”고 말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대단히 탁월한 분들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노벨상의 마흔한 번째 의자에 앉는 분은 물론이고, 마흔두 번째, 마흔세 번째 의자에 앉는 분들도 노벨상 수상 여부와는 관계없이, 나름대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고자 엄청난 땀과 눈물을 흘렸고, 또 지금도 흘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노벨상의 백 번째, 천 번째 의자에 앉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학자 한 분 한 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존경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분들의 성과가 하나씩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로써 인류의 생활이 더 나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이룬, 2000년 동안의 성장도 노벨상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발전은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과 같은 교부들과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성인과 같은 위대한 수도자들의 헌신 덕분임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목숨으로 신앙을 증언한 전 세계의 수많은 순교자의 공로 또한 결코 작은 공헌이 아니지요. 순교자들의 피가 없었다면 오늘날처럼 이토록 하느님 제단이 영화롭게 꾸며질 리가 없었겠지요?
요셉 성인과 모퉁이의 머릿돌
해마다 3월이 되면 저는 특히 ‘의로운 사람’(마태 1,19 참조) 요셉 성인에 대해 많이 묵상합니다.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에 비해, 성경 말씀의 마흔한 번째 의자에 겨우 앉으셨던 분입니다(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실제로 요셉 성인은 아브라함의 사십일 세 후손입니다). 하지만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강생에 결정적으로 협조하며 묵묵히 하느님 사업에 참여했던 요셉 성인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노벨상의 만 번째 의자에 앉을 자격도 없는 학자입니다. 하지만 그 의자에 초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 실망하지는않습니다. 제 연구실에서 발표한 연구 성과도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조금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시편 118,22)라는 성경 말씀처럼 연구 성과가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저 같은 사람을 노벨상의 백 번째 의자에 앉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연구에 정진합니다. 누가 압니까?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할 테니까요(마태 19,26 참조).
[과학과 신앙] 차차차 이론
요즈음 우리는 많은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풍요는 과학기술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여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학기술이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용어부터 낯설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그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발되는 문명의 이기들
하지만 오늘날은 전혀 사정이 다릅니다. 초등학생 가운데 검색, 부팅, 댓글 등과 같은, 컴퓨터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용어들을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자고 나면 새로 등장하는 새로운 통신수단은 또 어떻습니까?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만 해도 유령이 그 속에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화 속으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심지어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은 아무리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도 스마트폰이 무엇인지 정도는 압니다.
20세기 이전에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유선전화기가 무선전화기로 바뀐 것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2세대, 3세대를 거쳐 4세대 휴대전화가 등장하였습니다. 2세대니, 3세대니, 4세대니 하는 용어들의 정확한 정의는 몰라도, 날이 갈수록 스마트폰이 더 빠르고 편리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용어들이 난해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최근 들어, ‘사물 인터넷’, ‘가상현실’ 등 매우 중요한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사물 인터넷’이니 ‘가상현실’ 등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과학자인 저 자신도 그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신기하다는 느낌뿐입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나노 과학기술 분야입니다.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만큼 작은 세계를 다루는 나노 과학기술 또한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가 빙빙 돕니다. 이번 호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의 결과물들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발명품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명 또는 발견에 얽힌 비화들
과학기술의 지식을 그저 주입식으로 배우는 것보다, 유명한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유용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는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그 진리를 뜻밖에 쉽게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나일론은 어느 날 갑자기 발명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먼저 만든 것을 개량하여 만들어낸 것일까? 뇌 속에 있는 신경 전달물질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낸 과학자는 누구일까? 물이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과정을 추적하면서 과학기술의 지식을 습득하면 과학기술이 그렇게 따분하지만은 않다고 느껴질 때도 많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론 한 가지를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차-차-차 이론
수년 전에 세계적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으로 이끄는 세 가지 범주의 동기를 다룬 이론에 관한 것입니다. 곧 ‘충전(charge)’, ‘도전(challenge)’, 그리고 ‘기회(chance)’입니다. 영어로 모두 차(cha-)로 시작되는 단어들이기에, ‘차-차-차(cha-cha-cha)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마침,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을 ‘차차차’라고 하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룸바와 맘보에서 파생한 이 음악 장르가 우리 대중가요 속에 스며들어 ‘다함께 차차차’와 같은 노래도 유행한 적이 있지요.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말하는 ‘차-차-차 이론’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10년간(1985-1995년) 「사이언스」의 편집장을 지냈던, 고(故) 코쉬랜드 2세 교수가 쓴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일반화된 이론은 아닙니다. 코쉬랜드 2세 교수가 단독으로 만든 말인데, 우리에게 차차차란 음악 장르가 익숙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먼저 ‘충전’이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여 세기적으로 발명하거나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누구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것에서 인류 역사를 바꿀 위대한 과학기술의 업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자신이 앉은 벤치에 앉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오직 뉴턴밖에 없었습니다. 충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도전’이란, 설명되지 않거나 기존의 이론들을 벗어나는 변칙적인 사실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거의 400년간 모든 사람이 뉴턴의 기계론에 바탕을 둔 세계관에 젖어있을 때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과학기술의 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 위대한 이론을 ‘도전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2014년 겨울에 개봉하여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 등장하는 웜홀, 블랙홀 장면 등도, 상대성이론 덕분에 가능하게 된 개념들이지요.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과학기술의 업적인지는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기회’란 아무도 보지 못했거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플레밍이 유리접시에 붙은 흔적에서 페니실린을 발명한 것이 이러한 ‘기회’로 말미암은 과학 발명에 해당합니다.
지난 2월 호에 과학기술의 업적에 관하여 ‘행운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대해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얻게 되는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요. 이런 세렌디피티가 ‘기회’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차-차 이론의 경우들
‘차-차-차 이론’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심장병 예방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콜레스테롤의 대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였던 멘델은, 자식들이 어버이를 닮는다는 사실로부터 그 유명한 유전법칙을 발견하였지요. 이 두 경우가 바로 ‘충전’에 해당하는 세기적 업적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벤젠의 구조를 알아낸 케큘레, 원자구조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양자역학의 기초를 마련한 보어, 또 디엔에이(DNA)의 복제와 암호해독을 설명하고자 연구를 하면서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의 경우는 ‘도전’에 해당합니다.
‘기회’에 의해 세기적 업적을 남긴 예로는, D-형과 L-형 타르타르산의 결정구조를 연구하다가 광학활성을 알아낸 파스퇴르나, 저장 실린더에 달라붙는 물질을 연구하던 중에 테플론을 발명한 플렁켓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차-차-차 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세기적으로 발명하거나 발견하는지는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의 차이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곧, ‘충전’ 범주에 속할 경우, 문제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고안하는데 독창성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도전’ 범주에 속할 경우는,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점을 알아채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독창성이 비롯된다고 봅니다. 반면, ‘기회’ 범주의 경우, 어떤 사건이나 현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독창성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세기적 업적은 준비된 마음이 있어야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을 이루어낸 동기가 ‘충전’이든, ‘도전’이든, ‘기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2월 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바로 ‘준비된 마음’입니다.
평소에 늘 접하던 어떤 현상의 비밀을 캐려면 그것을 잘 설명하려는 기본적인 과학지식과 열정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이 복권에 당첨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합니다.
뛰어난 과학적 성과가 과연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과학사가들의 논란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우연’같이 보이는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도, 사실은 그 발견자나 발명자의 엄청난 땀과 피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만 그런 ‘우연’같은 행운이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에서 언급한 과학 분야의 ‘차-차-차 이론’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 신앙인에게 늘 일러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깥일을 정리하고 밭일을 준비한 다음 집을 지어라”(잠언 24,27).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님을 기다리며 늘 준비하는 자세로 깨어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업인 과학 분야에서도, 늘 준비하면서, ‘충전’과 ‘도전’, 그리고 ‘기회’, 그 가운데 어느 ‘차’가 찾아오더라도 놓치지 않고 잡겠습니다. 물론, 제가 열심히 준비하여 ‘기회’를 잡더라도, 과학자로서의 마지막 “승리는 주님께 달려”(잠언 21,31) 있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