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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15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 / 김유수 목사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지난 주일에는 자리가 허전했는데 보기 좋게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신 여러분에게도 감사하고 지하실, 유아실,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 한나 선교원에서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 계십니까? 잠깐 소개하면 한나 선교회는 배를 통한 선교를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한국에서 선교선을 운행하는 선교단체입니다. 외국으로부터 배를 기증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배가 그렇게 크지를 못해서 큰 역할을 못했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아주 큰배를 일본에서 시주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귀중한 일에 위해서 광주가 소외가 되어 저희 교회 장소를 이용해서 이번 집회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저희 교회를 방문한 것 같은데 우리 박수로 환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을 세 가지의 삶의 스타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먼저는 독수리형의 삶의 스타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과 땅을 함께 누리며 사는 독특한 새입니다. 높이 날고 멀리 바라보고 도전적이고 용기 있고 진취적인 성격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크리스천을 "독수리와 같이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감과 같도다"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두 번째로는 황소같이 사는 삶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황소는 성실합니다. 진실합니다. 땀흘려 일합니다. 열심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황소의 약점은 먼 앞을 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더욱이나 하늘을 보지를 못합니다. 눈앞만 보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이거는 진실합니다. 성실합니다. 열정도 있습니다. 의욕도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보지 못하고 위를 보지 못하는 자아 중심적인 성실도, 열정도, 진실도 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을 황소 같은 스타일로 그렇게 표현합니다.
세 번째로 고무풍선 같은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볼륨을 띄웁니다. 찬란하고 멋있습니다. 그러나 속이 비어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중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무풍선은 바람이 부는 곳으로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런 자기 중심 없이, 생각 없이,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늘 변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봉독한 말씀 가운데 6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금년 저희 표어 가운데 중요한 말씀이 있어요. 모세를 일컬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절에 살아온 이 세 사람이 공통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 새 땅을 향해서 줄기차게 나아갑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갈렙도 그 땅이 가나안땅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절대로 뒤로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고 뒤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벌써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앞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보며, 땅을 보며, 새 하늘 새 땅을 보면서, 누릴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향해서 배를 타고 가면서 매일매일 항해일지를 썼다고 합니다. 마지막 끝 부분에 쓰여진 말은 언제나 동일한 말 "오늘도 서쪽을 향해서 나아간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언약의 땅을 향해서 날마다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핵심이 8절과 9절입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하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면 땅을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라면 누구든지 공평하게 어머니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어머니로 통해서 생명의 젖줄을 공급하고 양육이 됩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내 삶터요, 꿈터요, 놀이터요, 쉼터요,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든지 불만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새 천년, 새 해, 이것은 어머니입니다. 누구든지 이 새 하늘 새 땅, 시간도 하나님이 주신 어머니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너희 마음껏, 부담 없이, 누구든지 공평하게 누리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어머니를 두려워하지를 않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광야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요단강을 그들은 건넜어요. 여리고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돌면서 여리고성을 점령합니다. 아이성을 통해서 36명이 사망했지만 다시 재도전해서 아이성을 정복합니다. 그 땅에 아낙자손이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를 않습니다. 아낙 자손의 산지 땅을 내게 주소서 그러면 내가 발로 밟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의 기업으로 주신 나의 소유로 만들겠다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들이 금년 한해를 소망과 하나님의 비전을 펼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 세로되"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사십 오년 동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이게 은혜스런 고백입니다. 갈렙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들어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갈렙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나를 생존케 하신 하나님, 인도하신 하나님, 축복하신 하나님, 도우신 하나님, 그렇게 고백해요. 갈렙은 애굽에서부터 출애굽한 사람입니다. 홍해를 생각할 때 반석을 쳐 생수가 나왔을 때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홀은 모세와 함께 기도했지만 칼을 들고 나아가서 앞장서서 장군으로서 실전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애굽에서 나왔던 이십 세 이상은 다 죽었어요. 광야에서 우상숭배로 빠지다 죽고, 원망 불평하다가 빠져서 다 죽고, 불뱀에 물려서 죽고, 음란죄에 빠져서 다 죽었어요.
갈렙이 자기혼자 살아 남았는데 자기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다 원망 불평할 때 자기도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한 순간만 잘못 판단했으면 자기도 그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두 사람만 남고 다 죽었으니까 그런데 아찔하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믿음의 자리에 서게 하고, 가나안땅을 정탐하게 하시고, 오늘 이 땅을 하나님의 언약대로 성취케 하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생존케 하셨사오니, 나를 생존케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특별히 6절에 보면 "그니스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갈렙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 말은 창세기 36:9절에 보면 그니스는 에돔 족속의 후손입니다. 만일에 이 사람과 동일한 인물이라면 갈렙은 유태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닙니다. 에돔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팔레스틴에서 흉년이 들 때 에굽으로 피난 갈 때 유대인, 이삭의 후손만, 야곱의 후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타의 부족들도 함께 흉년을 패해서 애굽에 갔었을 수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유대 공동체에 보면 이방인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할례 받고, 개종 받고, 유대인으로 들어온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갈렙이라고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민수기 13:6절에 보면 갈렙은 유다 지파 대표로 뽑힙니다.
지도자로 뽑힙니다. 우리가 추리를 해보면 갈렙은 에돔의 후손이었는데 유대인으로 개종을 하고 들어와서 얼마나 신앙생활을 했는지 유다 지파의 대표로 뽑혔어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초대 공동체는 이방인도 믿음이 있으면, 신실하면 같은 공동체로 받아들였어요. 열림의 공동체였어요. 민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폐쇄 적인 것입니다. 혈통을 따졌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혈통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열림의 공동체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누가 먼저 믿고, 누가 나중에 믿고, 선후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속이냐, 어느 혈통이냐,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국제적인 시대예요. 누구든지 신실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면 언제든지 그 사람이 앞장을 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로 만들어질 수 있는 열림의 공동체, 얼마나 좋습니까? 갈렙은 생각할 때마다 유대인이 아니면서 에돔의 후손으로서 모든 사람이 자기를 믿어주고 지도자로 세워줄 때 얼마나 감사했겠어요. 더 더욱이나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갈렙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했는지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은혜의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사에 일제시대에 유명한 '안 창호' 선생의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분이 10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 출소를 했습니다. 대전 교도소에서 출소를 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분이 있습니다. 일본 순사였습니다. 찾아가서 무엇을 이야기를 했는고 하니, "당신이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 나를 찾아와서 깊은 밤에 나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하고, 때로는 책을 사서 넣어주다가 필요할 때는 음식을 사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일본은 미워하지만 인간대 인간은 미워할 수 없어" 출소할 때 제일 먼저 그 분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큰 사람이에요.
그가 서대문의 교도소에 있을 때 또 하나의 비슷한 일화는 한번은 친구가 찾아갔는데 그 친구에게 그랬답니다. "친구여, 내가 꼭 부탁을 하나 하겠다. 뭐냐고? 교도소에서 취조 받을 때 일본 사람이 있는데 그분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좀 해주소, 왜냐면 내가 취조 받을 때 내가 너무 힘들어 할 때 아주 맛있는 음식을 사 가지고 나를 대접해주었는데 인간적으로는 참 좋은 분인데 가서 고맙다고 좀 전해주소" 친구가 껄껄 웃으면서 "세상에 감옥에 있으면서도 일본 순경에게 어떻게 그런데 까지 신경을 다 쓰느냐고" 그러니까 안창호 선생이 화를 버럭 내면서 "내 처지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은혜를 입는 사람에게 은혜를 잊으면 되겠냐고 그건 사람이 아니라고 부디 부탁하는데 꼭 가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좀 해주라는" 겁니다.
은혜의식, 부모를 향하여, 스승을 향하여, 나라와 민족을 향하여, 이 은혜의식을 가지는 사람의 지도자
인, 진정한 애국자인,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입는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크고도 큰 은혜를 작은 아픔 때문에 은혜를 다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은혜 받은 사람을 원수시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우리는 이런 마음들을 다 비우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수가 있습니다. 은혜로 한 해를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6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네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사십 오 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갈렙은 사십 오 년 전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열 사람은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당신과 나만이 믿음으로 보고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았느냐고, "믿음으로 나아가 이 땅을 발로 밟으면 너와 너의 후손들에게 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았느냐고, 당신 알지 않느냐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갈렙은 사십 오 년 전의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사십 오 년 동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 묵상할 때 얼마만큼 했습니까?
하루를 하십니까?
일주일을 하십니까?
일년을 하십니까?
갈렙은 45년이나 되었어요.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가슴속에 묻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어떻게 내 생활에 이루어지는가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의 삶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이 우리가운데 어떻게 성취되는가 기대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렙은 그런 사람입니다.
12절에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사는 사람이에요. 특별히 11절에 보면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때나 일반이라 싸움이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힘, 강건한 것, 이것은 육체적인 것을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되어요. 45세와 85세를 놓고 갈렙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도 없고, 얼굴이 팽팽하고, 검은머리가 그대로 있고 그랬다는 이야기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갈렙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물론 주름살이 지고 노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갈렙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시면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신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판단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억력을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살면 절대로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갈렙이 팔십 오세, 지금 대통령이 팔십이 다 되시죠. 그 어르신이 대통령이 될 때 다 염려했어요. 대통령 하다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노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 약점을 얼마나 이야기를 했습니까? 지금도 실수 없이 물론 다는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한 것만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능력 안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요. 경험의 제한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우리는 금년 들어서 여러 차례 강조를 했습니다. 나를 보지 마시고, 나의 한계를 보지 마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라고요.
민수기 13장에 나온 대로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믿음 없는 열 명이 무엇이라고 보고를 합니까? 기름지고 그리고 그 땅에 맺어진 포도송이를 보라고, 얼마나 좋은 땅인지를 모르겠 다고, 그렇지만 섭섭하게도 이미 그 땅에는 장대한 사람이 그 땅을 지배하고 있고 성은 우리가 공격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가서 보았더니 우리가 들어가면 그 땅은 우리를 삼켜버리고 말 땅과 같다고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장대하면 우리는 메뚜기만도 더 못하다고 도저히 불가능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은 맞아요. 갈렙도 여호수아도 인정을 했어요. 옳다는 그 말입니다. 아주 합리적인 보고입니다. 과학적인 정확한 보고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인간의 파악을 뛰어넘는 것이 있어요. 믿음이라는 안목이 있어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믿는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가 있다. 이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능을 믿는 사람만이 그 일을 이루어 냅니다. 사업도 공부도 그래요. 내가 가능하겠다고 믿는 학생이 그것을 이루어내어요. 우리에게 이런 자신감 믿음을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지난주에도 말씀을 나누었지 않았습니까,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얻은 것은 없어도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위탁하면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게 하고 재기하게 하신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위탁하는 것이 믿음인 것을 믿습니다.
▶첫째, 기억할 것은 갈렙은 인간미가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중간에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갈렙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두고 말하기를 나는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성실하게 살아왔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모세가 원하는 대로하고 원하는 대로 보고를 드렸다. 이는 모세가 정탐을 보낼 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라고 보낸 게 아니지 않습니까? 보고 와서 믿음으로 보고하고 우리가 다 들어가기를 바라고 정탐군을 보낸 겁니다. 그런데 열 사람은 그 동안의 모세의 마음을 읽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인간적으로 보고를 드린거예요.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그러나 모세의 마음에 꽉 맞도록 보고를 했다 그 말입니다. 마음의 성실한대로 그 말은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 아니라 모세가 우리를 파송한 그분의 마음에 맞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성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일을 맡겼다고 여러분들의 기분대로 살아라 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 일은 맡기는 지도자의 마음에 맞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성실이라는 말은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는 말이에요. 성실한 사람이 인간으로 승리할 수 있지만 신앙으로도 성실한 사람이 성장해요. 공부를 하다가 말다가 하면 실력이 안 들어요.
그런데 꾸준히 쉬지 않고 할 때 실력이 늘지 않습니까, 신앙이 언제 성장합니까? 기도하는 생활, 말씀 묵상하는 생활, 예배드리는 생활을 쉬지 않고 잘하지는 못할지라도 꾸준히 하면 나도 모르게 성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 성장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실함, 성실함입니다. 성실함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변덕이 많은 사람은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8절을 보겠습니다. "나와 함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갈렙이 누구 때문에 삼십 팔 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을 했지요? 열 친구 때문입니다. 모세 같으면 어떻습니까? 돌팔매를 던져버려서 그것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형제를 원수하고 했어요. 그렇게 훌륭한 모세는 갈렙보다 인격은 더 못했어요. 그러나 갈렙은 간담을 상케하고 녹였던 그들을 향하여 나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갈렙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그들까지 다 품고 형제라고 말합니다. 물론 에돔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어쨌든 갈렙은 자기 인생의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그들을 향하여 형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가슴의 넓이가 폭이
넓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둘째, 8절에 앞서 나왔는데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좋았고" 온전히 라는 말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온 성품을 다하여 생명을 다하여 헌신했던 것입니다. 순수한 헌신, 정직한 헌신, 희생적인 헌신,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믿음의 헌신, 이게 아주 값진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대가가 없습니다. 노력이 없이는 대가가 없습니다.
▶ 셋째, 12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쫒아내리이다"
무슨 땅을 달라고요? 산지 땅을 달라고, 이것은 개척자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나 개척자의 마음이에요.
우리는 지난 금요일 날 '김 순호'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피택자들과 함께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토론토에서 만났습니다. 캐나다에 간지 13년, 혼자 맨손으로 가서 고생고생해서 그 땅에다 한국인 D T S 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12기 째입니다. 일년에 두 번씩 몇 년이 되었어요. 6년입니다. 그런데 장소가 없어 가지고 기도원, 수양관. 돌아가면서 그 훈련을 하는데 이번에 비로소 10만평에 가까운 땅을 샀어요. 기적적으로 샀답니다. 캐나다에서 수양관 건물이 낡은 건물이지만 일단은 건물도 있고, 가정집도 있고, 풀장도 있고 그것을 샀습니다. 그리고 완불을 한 5월 달에 이 분은 안식년을 핑계되고 벤쿠버로 갔습니다. 사실은 그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그분을 만나서 물어보았더니 자기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13년 동안 고생해서 일구었던 그 좋은 그 땅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다 물러주고 자기는 벤쿠버로 간 거예요. 거기에서 또 베이스를 개척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개척이 되면 또 다른 사람에게 물러주고 또 물러주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토론토를 떠날 때 같이 일하는 간사들이 얼마나 존경한지를 모르겠어요.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13년을 살고 떠나실 때 5식구가 승용차에 타고 그리고 가지고 가는 짐이 승용차의 뒤 트럭에 실을 만큼만 가지고 갔대요. 나머지는 다 나누어주었어요. 그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이지요. 예수님처럼 다 나누어주고 그리고 털털 털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역사는 이런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분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을 하셨는데 그 놀라운 비결과 방법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엄청난 일을 했느냐?"고 했을 때 이분이 한 마디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라고, 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역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어떻게 내 삶 속에 성취되는가?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 자기를 믿기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오늘보다는 내일을 향하여, 소유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그 언약을 향하여, 언제든지 털털 털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무소유의 사람, 하나님이 이런 점들을 귀하게 쓰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심을 믿습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