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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능력
신명기16:13-17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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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4:17-21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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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 헌신예배가 있어서 강사를 모시게 되었답니다. 강사를 모시기 전에 주보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사무원이 강사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강사님! 이번 주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헌신예배 설교를 하시는데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설교 제목을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무원이 이상했습니다. 그 이후에 뭐가 더 있을 것만 같아서 그 다음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좀 신경질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사무원은 깜짝 놀라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헌신예배 설교를 위해 목사님이 와서 주보를 보고 나니 깜짝 놀랐습니다.
설교의 제목이 너무 길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면 그걸로 족하지 뭐가 더 필요하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뭐가 부족하고, 다른 것에 욕심을 내고, 불평과 불만을 앞세웁니다.
여러분! 오늘은 정말 복되고 축복된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는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개신교의 추수감사주일의 유래는 청교도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1623년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몇 개월 동안의 사투 끝에 신천지 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싸우고 인디언들과 싸우고 척박한 땅과 싸우면서 첫 농사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출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추수감사를 명령하신 기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우리의 추수감사절의 절기를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초막절, 수장절이라고 부르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13절,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쉽게 말하면 추수감사는 일 년 농사를 다 마쳐서 그 농산물을 다 수확해서 저장한 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수장이라는 말은 수확해서 저장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도열매도 다 거두어들이고 포도주 틀에 저장한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초막절이라고도 부르고 동시에 수장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수확을 해서 저장한다는 의미에서 수장절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초막절의 의미는 그들이 이 절기를 지키는 일주일 동안 집이 아닌 다른 곳, 광야에 초막을 짓습니다.
풀과 나뭇가지로 치은 엉성한 텐트를 쳐놓고 거기서 일주일 동안 생활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미국에 나가 살아도 자기 집 옥상에 일주일 텐트를 치고 생활합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나 일부러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조상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했고 농사를 짓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운 때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생활의 고통스러운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장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있다고 해서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이 다 추수감사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 가지의 절기를 지키는데 첫 번째가 무교절입니다.
유월절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해방절 같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칠칠절입니다.
맥추절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은 맥추감사절을 의미합니다.
보리농사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날,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이 초막절입니다.
일 년의 추수를 다 마친 후에 저장하고 그리고 초막을 짓고 거기서 일주일동안 거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이 초막절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농사도 안 짓는데 무슨 추수감사절이냐?”
여러분! 하지만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부들에 의해서 농사가 지어지고 그들이 농사지은 것을 통해서 먹고 생활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나의 생업을 주신 하나님, 내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 내 의식주를 공급해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동시에 내가 걸어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광야 같은 인생 가운데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초막절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이 추수감사절, 초막절을 어떻게 지내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셨을까요?
먼저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먼저는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즐거워하면 안 됩니다.
가족과 함께여야 합니다.
제가 하와이 코나에 가서 3개월 동안 있었는데 그 때 바로 이 “추수감사절”을 그곳에서 맞이했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Thanksgiving Day’라고 “추수감사절”을 우리의 “추석”처럼 보냅니다.
우리는 “추석”이 되면 다 고향에 갑니다.
2천만 명이 움직이고 가족을 찾고 며칠 동안 가족과 함께 있습니다.
이것처럼 미국인들도 이 추수감사절을 자기들의 최고의 명절로 지냅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니 강의도 하지 않습니다.
다 쉽니다. 연휴며 휴가입니다.
가족들이 다 모여서 칠면서 요리를 해서 먹곤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명절 풍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감사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눕니다.
“추수감사절”은 가족과 함께 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는 한 가족입니다. 가족이 함께 즐거워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오후에 “기관 찬양대회”를 하는데 영신의 온 가족, 온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함께 축제로 보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특별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를 찾는다면 ‘네 이웃과 함께,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우리 주위의 어렵고 궁핍한 사람들과 이 즐거움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원래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못했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앞으로 더욱 우리는 그런 일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되면 이웃과 함께 떡도 나누고 이웃을 초청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어주고 함께 감사의 즐거움을 나눠야지 진정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절”은 이웃과 함께 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절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낼 때에는 또한 이미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분 16절, 17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오지 말고 복 주시는 데로, 복 받은 만큼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주신 은혜, 이미 내 지나간 삶에 주신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에 우리의 마음과 물질을, 물질에 마음을 담아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에는 과거에 대한 감사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축복에 대한 감사를 드립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미래의 일입니다.
앞으로 복 주실 것을 기대하며 미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는 과거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주실 축복에 대한 감사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미래의 삶 까지도 결정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즐거워한다.’는 것은 감사한다는 표현입니다.
감사하는데 화가 나서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즐겁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그 감격과 은혜를 기쁨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3대 절기를 주셨고 특별이 이 초막절, 수장절이라고 부르는 추수감사절을 주셔서 매년 일 년에 한 번씩 감사하는 일들을 반복하게 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는 행복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특별히 감사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여러분!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감사를 배우셔야 합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열고 불평은 불행의 문을 엽니다.’ 불행해지고 싶으십니까?
자꾸 불평하십시오.
그러면 가만히 있어도 불행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하십시오.
행복하기를 원하면 감사를 배우셔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불행을 원하면 자꾸 불평하십시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영이 불평의 저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돈 많이 벌고 출세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 달 전에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를 했더니 잘사는 나라 국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글라데시, 가장 어렵게 사는 나라의 백성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들은 과거보다 현재 너무나 살기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밥은 먹고 사니까, 옷을 입고 사니까 그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사람들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삶이 부유해질수록 점점 불평과 불만이 많아진다는데 에 문제가 있습니다.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많아서 불행입니다.
아니, 더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외적인 환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의 분량은 곧 행복의 분량이다. 그 사람이 감사하는 만큼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하십니까?
가정의 행복을 원하시면 가족에게 감사하십시오.
남편에게 감사하고, 아내에게 감사하고, 자녀에게 감사하고, 부모에게 감사하십시오.
거기서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목회자에게 감사하고, 장로님께 감사하고, 권사님께 감사하고, 구역장님께 감사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럴 때 신앙생활의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의 행복이 없습니다.
늘 인상 찌푸리고 교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왜 이리 재미가 없어.’,
‘아이고 왜 이리 은혜가 안 돼.’
그 사람은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장로님께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구역장을 원수같이 여깁니다.
‘아이고 또 전화 오네, 난 구역예배 절대로 안 가.’
구역장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신도, 여신도 참여하라고 전화하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아이고, 원수 같은 것이 또 전화 왔네. 난 안 가.’
이러면 불행해집니다.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 가도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행복은 감사로부터 옵니다.
감사는 행복을 여는 열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감사를 명령하셨을까요?
두 번째 이유는 축복과 기적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축복은 감사할 때 오는 것입니다.
모든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능력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존 스펄전’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로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
천국에 가면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거기는 광명의 세상입니다.
거기는 전기세도 안 들 것입니다.
그곳에는 흑암이 없습니다.
그곳은 빛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큰 복을 부어 주십니다.
오늘 마태복음 14장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하시는데 수많은 사람, 남자만 오천 명이 모여서 말씀을 듣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 이들을 다 돌려보내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들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가다가 굶주려서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어보고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아니, 주님 저희에게 돈이 어디 있습니까, 떡도 없고요.” 그 때 ‘안드레’라는 예수님께 순종 잘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서 ‘누구에게 먹을 것이 없나’ 하고 찾아봤더니 한 소년이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잘것없는 도시락, 한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그 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너무 반가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도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시니 ‘축사하셨다’고 나옵니다.
축사, 헬라어로 ‘유카리스트’라는 말의 뜻은 감사기도를 뜻합니다.
식사할 때 감사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감사할 상황입니까?
지금 오천 명, 만 명이 되는 사람들을 놓고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셨습니다.
감사하고 이 떡을 떼어서 나누어주라고 명하셨더니 오천 명의 무리가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광야의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일이 생겨납니다.
'나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결국 망할 거야.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감사의 비밀이 있습니다.
감사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자꾸 불평하십니까?
불평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질이 나빠집니다.
그저 그런 남편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남편이 더 훌륭한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맘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반찬만 더 나빠집니다.
그냥 감사하십시오.
반찬은 시원찮아도 이런 부인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그 부인이 더 아름다운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죄수가 되어서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배에 탄 276명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모두가 의욕을 잃어버리고 빛을 보지 못하고 배에 있는 것을 다 던져버리고 이제 굶어죽을 판입니다.
죽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 사도바울이 떡을 들고 하나님을 향해서 축사했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죄수가 자기를 호송하는 군인들, 선원들에게 떡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떡을 먹고 힘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276명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구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적입니다. 감사할 때마다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할 때마는 불행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사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 앞에 가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면서 무덤으로 가십니다. 무덤에는 돌문이 막혀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드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 드리십니다.
“아버지여, 내 기도를 들으심을 감사하나이다.”
그 죽은 사람을 놓고 감사할 때입니까? 오빠가 죽어서 지금 집안이 망할 판인데. 하지만 주님은 먼저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돌문을 치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 나오너라.” 그랬더니 이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나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일어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감사하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7장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열 명의 문둥병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옵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는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 제사장에게 가다보니 자기들의 몸의 문둥병이 깨끗이 나아버렸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은 너무 좋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명 사마리아 사람만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6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니다.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이 다 고침 받았는데 아홉 명은 어디 갔느냐?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러 온 자가 너 하나 밖에 없느냐?”
그러나 주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정 그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감사했기 때문에 그의 구원이 온전한 구원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병은 나았다가도 또 병들 수 있습니다. 암에 걸렸다가 나았는데 다음에 또 암에 걸리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병은 또 옵니다. 그러나 한번 영혼이 구원받으면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무엇이 더 귀합니까?
육신의 치료도 감사하지만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더 감사한 것입니다. 그는 감사했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구원받는 축복을 누린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에는 치료의 능력도 있습니다.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텐리 텐’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회사를 세우고 아주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1976년 갑자기 병이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척추암 3기였습니다.
당시 의료기술로는 이 척추암이라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약도 없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죽었습니다. 산송장입니다. 그래서 몇 달 후에 ‘죽었으려니’ 했더니 웬걸 자리를 툭툭 털고 이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회복되었냐고 물었더니 다른 건 없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살아온 날을 감사하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병 주신 것에 감사하고, 죽어도 감사하고, 살아도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하나님 앞에 감사를 올려드렸답니다.
그랬더니 암세포가 날마다 줄어들고 새로운 신선한 세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는 삶 속에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져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치료 요법 중에 ‘땡큐테라피’(thank-you therapy)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 베이크’라는 분이 감사요법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그는 여기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감사의 요법은 완벽한 치료제다. 여기에는 부작용이 없다. 돈도 들지 않는다. 식전, 식후 따지지 않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감사요법입니다.
감사치료입니다.
그것이 어떤 질병이든, 사업의 문제든, 내적인 문제든 하나님 앞에 감사요법으로 치료받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능력인 것입니다. 감사는 위대한 기적의 출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문제는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진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라는 여류 소설가가 있는데 크리스천입니다.
이분이 쓴 수필집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은혜에 익숙한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저를 인도해주세요.”
무슨 이야기일까요?
그녀는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한 청년을 만나게 되어서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 청년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 청년과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와 같은 병든 자에게 청년이 결혼을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리 봐도 고맙고 저리 봐도 고맙고, 너무 감사하고, 눈물이 나고, 자기 남편만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살다보니 별로 고맙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저 그랬습니다.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신경질도 내고, 화도 내고, 미워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죄인 가운데 나를 구원하신 사랑,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여깁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은혜에 너무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을 들어도 기쁨이 없습니다. 기도를 해도 감격이 없습니다.
뭔가 짜릿한 것을 바라지만 그런 것은 늘 없습니다.
그러니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시큰둥해집니다.
들어오고 나가도 그저 그렇습니다. 은혜에 익숙해진 삶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예배의 타성에 젖으면 열정과 감격을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은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 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가족에게 불평하고, 교회에 와서 불평하고, 정치인들에게 불평하고 늘 불평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는 것, 습관에 빠지는 것, 타성에 젖어드는 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목사도 그렇습니다.
목사로서 내가 여기 강단에 설 수 있다는 것,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격이 없으면 삯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오늘도 빨리 끝내야지. 빨리 끝내고 가서 놀아야지. 골프나 치고, 테니스나 치고, 등산이나 가고 그래야지. 빨리 주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할렐루야!’
‘아이고, 월요일이 왔네. 어서 놀러가야지.’ 이런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교인은 몇 명 안 되고 월급은 주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타성에 젖는 것,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질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용서하고 들으십시오.
인터넷에 보니 ‘남편을 팝니다.’ 이런 광고가 있더라고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996년 3월 세화예식장에서 구입하였고, 구청에 정품등록은 이미 마쳤습니다. 당시는 신기해서 많이 사용했지만 그 이후로는 처박아 두었기 때문에 사용횟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품질상태는 구입당시 A급인줄 착각하고 구입했습니다.
외관은 아직 쓸 만합니다. 마음이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잔소리가 심해 사용 시 만족감은 떨어집니다. 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입니다. 외형 및 디자인은 구입 당시 최상품이었습니다. 기럭지는 186cm라 박박 우기나 사실 182cm정도로 사료됩니다.
전체적 외관은 터프하나 재롱도 잘 부립니다. 무게는 구입 초 70kg 정도 되었으나 최근에는 엄청나게 무거워졌습니다. 한사코 체중계를 거부해서 정확한 무게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끼던 물건인데 유지비도 많이 들고 성격장애가 와서 급하게 매매합니다. 구입하시면 덤으로 각 유흥주점의 멤버십 카드와 아끼는 스팀 청소기, 유한락스 1박스, 걸레 1박스, 행주 1박스를 무료로 드립니다.
누가 웃으라고 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남편이 소중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냉장고 하나 산 것처럼 여긴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익숙해지면 가정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 이놈의 가정, 내가 여기 아니면 못사는 줄 알아.’
아닙니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가정을 잃어버려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남편을 잃어버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내를 잃어버려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자녀의 소중함, 교회의 소중함, 건강의 소중함, 이것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가장 늙기 쉽고 황폐해지기 쉽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이 황폐해지고 감사를 상실해버리면 불평이 오고, 원망이 오고, 짜증이 오고, 미움이 오고, 저주가 오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이 마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 늘 기뻐하는 마음, 늘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감사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를 생각하시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크고 풍성한 감사를 담고 서로 감사하며 찬양하며 주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