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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3대 권능 / 성경 벌레
1,성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2,성도는 편안함을 누린다.
3,성도는 말씀을 당당히 외친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사람의 모델을 이스라엘왕인 여호람을 통하여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들 어떤 사람이 타락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교회밖에서 세상과 더불어 방탕하게 살아 가는 사람들을 말하기 쉽습니다.
물론 틀리는 말은 아닙니다.
아담 이래로 주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하면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가 별유천지인 천국 에서 살고 있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 가고 있기에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습성중엔 남을 잘 닮는 성질이 있읍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는 것을 봅니다.
특히 좋은 것 보다는 못된 것을 더 빨리 닮는 것을 봅니다.
어린 아이들을 키워보시면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욕지꺼리부터 배웁니다.
물론 자기가 무었을 지꺼리는지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안배워도 되는 것들부터 배우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번씩이나 이사를 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일입니다.
참으로 아이 어른 할것 없이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타락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성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31절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여호람 왕이 이런 말을 하게된 배경은 이스라엘의 한 성읍인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 포위가 되어서 성읍 전체가 기근으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어야 할만큼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적군들의 포위망을 뚤고 도망을 가자니 적군에게 잡히여 개죽음을 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당장 먹을 양식이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노기가 충천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잡아 목을쳐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람이 엘리사를 잡아 죽일려고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원인이 엘리사에게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호람의 부왕 아합 왕시대에도 삼년 반의 심한 기근이 있었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기근도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기도를 했기 때문에 일어 난 기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람은 아합왕 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러 나선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여호람 왕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 타락을 하게 되면 원래부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보다 더 악하게 되는 경우의 한 본보기가 됩니다.
우리네 고사나 사극을 보면 나라에 심한 기근이나 재난이 일어나 백성들이 도탄에 허덕일 때면 나라의 왕은 그 모든 원인이 자기 자신이 부덕해서 생겨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맑에 갠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다는 말이 "짐이 부덕함이야" " '"
자기의 부덕함을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은 닫자곧자로 엘리사에게 이 모든 원인을 다 덮어 씨우고는 엘리사를 잡아 죽이겠다고 찾아 나선 것입니다.
사실 여호람 왕은 누구 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겨야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잘 받들어야할 사람입니다.
전날에 아람 왕 벤하닷이 글을 써서 여호람 왕에게 보내었을 때 일입니다
그 때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인 여호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내용인즉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을 편지와 함께 보내니 깨끝하게 고쳐서 돌려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사연입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나라 보다 월등히 강한 나라였다면 감히 이런 무레한 편지를 보내지도 못했을텐데 나라 형편이 그렇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얕잡아 보고 보고 이런 무레한 짓을 했으니 이스라엘왕 여호람은 입었던 옷을 찢그면서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기가 데려다가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목욕을 시킴으로 깨끝하게해서 아람 나라로 돌려 보내어 준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 번은 아람 왕이 많은 군대를 보내어 도단을 포위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하여 사마리아 한 곳으로 군대를 몰아 넣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이 사실을 친히 목격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신가한 것을 보게된 여호람 왕은 6;21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내가 나아가 치리이까?"
한때는 은혜를 입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왕이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왕을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도와 주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이 단 한번이라도 엘리사에게 감사하다는 정표가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지고 찾아 보아도 사례의 흔적은 고사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본성인 것입니다.
감사는 안하더라도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배운망덕이라더니 감히 엘리사의 목을 치려고 군사를 동원해서 엘리사를 잡으로 사람을 보내 다니요..........
참으로 무서운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2절에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그 때 엘리사가 앉아 있음을 대조적으로 말합니다.
그와 함게 있는 장로들도 함께 앉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목을 가지러 사람이 달려 오고 있는데도 앉아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겐 조금도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왜야하면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7년 대 환난시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엘리사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은 조금도 두려울게 없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성도는 평안함을 누린다.
이세벨과 아합 왕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군사를 동원했던 일을 지금까지 제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현재의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일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아합이 왕으로 있을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합 왕 편에는 바알 선지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있었습니다
또 온 백성이 다 아합의 편이었습니다.
그 때 엘리야 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도전장을 내었습니다.
850대 1의 대결을 갈멜산에서 여호와 앞에서 하자고 했었습니다.
그 때 이 850대 1의 대결에서 누가 지고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승리하고 바알의 모든 거짓 선지자는 그곳에서 목을 쳐 죽였던 것입니다.
그 850명의 피가 강을 이루어 골짜기를 적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 여호람 왕은 회개하지 않은자의 말로를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의 말로를 누구 보다도 똑똑히 지켜 본 사람이 바로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입니다.
아버지 아합이 실패하고 전능자 하나님께서 승리한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호람 왕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지금 하나님의 사람의 목을 치겠다고 군사를 동원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몇가지 여호람 왕의 잘못을 보았습니다.
여호람왕의 삐뚜러진 마음을 보았습니다.
여호람 왕은 이 대 기근의 원인을 할 수 있는대로 자굅가 아닌 타인에게서 찾을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 먹은 죄를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뱀에게 돌리려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엄청난 기근에 시달리게 된 것은 아직 까지도 이세벨과 아합왕 때의 우상들을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왕 여호람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여호람의 죄악 때문입니다.
기근의 원인은 전적으로 여호람 왕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니 무서운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이렇게 무서운 사람으로 되기가 쉽습니다.
게16;8-9절에"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을 태우니 사람 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계16;10-11절에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을 훼방만하지 회개는 아니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등장하는 여호람 왕은 나중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모형 같은 느낌이 듭니다.
32절을 다시 봅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 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냐 하고"
32절을 보니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 목을 치려고 군사를 보내었것만 엘리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목을 치려는 자가 문 앞에 이르렀겄만 엘리사의 마음은 편안으로 가득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여호람 왕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왕이면서도 그 마음에 평안이 없고 엘리사는 도망다녀야하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그의 마음엔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평안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3,성도는 말씀을 당당히 외친다.
33절입니다.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여호람은 지금 여호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은 지금 하나님의 사람을 비웃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로 왕이 하나님과 엘리사를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누군가가 왕에게 이번의 재앙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니 왕께서 회개해야 한다고 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향하여 내가 너를 죽일터이니 네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하는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듯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라는 말은 이 기근이 여호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엘리사를 죽이면 여호람의 뜻대로 이 기근이 해결됩니까?
참으로 한심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기를 핍박하는 여호람을 향하여 무어라고 말 하고 있습니까?
7;1절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사는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여호람을 향해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고 있읍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에 하나님께서이미 오래 전에 버린 사람 같을지라도 우리는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말씀 전하기를 게을리 해서도 않되고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전도를 안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만약에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가정을 한다면 지금 우리들의 마음과 이스라엘 왕인 여호람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까?
만약에 우리들이 예수를 믿지 못했다면 어저면 여호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착해서 예수 믿게 된 것이 나닙니다.
우리가 잘나서 예수 먼저 믿게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떤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어 예수 믿게된 것 아닙니다.
우리들도 다 여호람과 같은 사람들 즉 다 타락의 길로 사망의 길로 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쯤 예수 만나지 못했다면 여호람 보다 더 힘차게 음침한 길을 달리고 있었을 사람들입니다.
나 같은 것이 예수 믿게된 것 신기하지도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예수 믿게 되고 또 내가 내 가정을 책임진 기도의 사람 된 것 참으로 고맙지 않습니까?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전해야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7;1절을 다시 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슴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7;1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믿으십시요 그러면 내 일 이맘 때면 하나님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당신의 집 문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왕하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엘리사의 말을 헛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편이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편이십니다.
전도를 하시다가 여러번 실패했더라도 또 전하십시요.
엘리사처럼 당당하게 믿음을 가지고 전하십시요.
엘리사와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여러분을 도우실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기도의 대상들이 다 구원의 길로 나아 오도록 힘써 기도하면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전하십시요.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충만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