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웅수조(漁翁垂釣)와 동백정(冬柏亭) 영신당(靈神堂) 할머니
오늘 모양수필문학(인문학글짓기) 회원들과 같이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 동백정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로 했다. 좌장은 여행에 관한 글을 써오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발표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동호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동호의 과거는,
‘늙은 어부(신선)가 서해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형국의 어옹수조’와 ‘동백정, ’영신당 할머니‘에 관한 전설과 과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창에서 동호에 가려면 해리면 왕촌리와 심원면 궁산리 사이 팔형치를 거쳐야 하는데, 이때 왕촌리 왕거 뒷산이 바로 조시산(鳥矢山)이다. 조시산은 해리면 금평리와 동호리, 서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鳥矢山은 새조(鳥) 자와 화살시(矢) 자로 되어있다. 이는 조시산이 새의 형국이란 뜻이다. 조시산의 새를 활로 겨냥하고 있는 마을이름이 심원면궁산(弓山:활뫼)이다.
그런데 금평리와 동호리에서 조시산을 바라보면 그 형국(形局)이 마치 늙은 어부가 서해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형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조시산 북쪽의 지명이 낚시와 낚싯대 등 낚시에 필요한 도구들의 명칭으로 되어 있다.
조시산 바로 밑에 금평리 월산마을의 뒤에 화시봉(火祡峰)이란 작은 산이 있다. 동호는 겨울 동자니까 늙은 어부는 겨울 낚시를 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화시봉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낚시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금평이 월산 마을에서부터 동호해수욕장과 만나는 능선을 하나리등이라 하는데 이는 낚싯대를 뜻하며, 하나리등이 끝나는 곳에서 ‘영신당 할미’ 사당까지가 낚싯줄, 사당을 빙 돌아 마을 앞까지가 낚싯바늘이다. 그리고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는 끝이 지금 우리와 같이 있는 박현규 전군의회의장님 댁이라 한다. 그리고 동호 앞바다 대섬(외죽도) 뒤에 있는 섬이 막대찌(박주대)고, 대섬이 고기를 담아 바다에 담가놓은 대바구니다.
그래서 동호 사람들은 낚시에 고기가 물려 나오듯 가끔 공짜 돈이 생긴다고 웃음소리를 한다. 그 예로 원전 피해보상금 등을 들고 있다.
옛날에는 구동호 해변가 일대에 넓은 동백 숲이 있었단다. 동백은 사철 푸른 나무이고, 아름다운 꽃이 피기 때문에 사시사철 동호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무장현감이 동호에 나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바람에 주민들은 온갖 부담을 다 져야 했다. 그뿐 아니라 온갖 행패를 심하게 하여 주민들은 갖은 괴로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하나리등에 원님이 오는가 망보는 곳 망대를 두고 망을 보다가 원님이 나타났다 하면 어디론가 피해버리고 말았는데, 망보는 곳을 ‘망재’라고 부른다.
이렇듯 아름다운 동호의 동백 숲에 동백정이 있어 중앙에서 사람이 오면 의래 동호에 와서 접대함이 예사였고, 무장현감 등 아전들도 동호에 와서 즐기며 백성들을 못살게 굴기 때문에 주민들은 동백 숲 때문이라며 동백나무를 베어버리고 동백정도 부셔버렸다 한다.
사라진 동백정(冬柏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해리면 서북간에 동호항이 있고 포구의 북쪽으로 불쑥 내민 곶(串)이 있는데 이 산등성이 남향으로 조망이 좋은 자리에 동백정이 있었다,
동백정은 그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36권 무장조(茂長絛)에 보면 "동백정은 무장현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져 있으며, 3면이 모두 물인데 그 뒤에 동백숲이 푸르게 우거져 뻗치기를 무릇 몇 리나 되는지 이는 호남에서 빼어나게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표기되어있다.
조선조 초기의 유학자 김종직(金宗直)이 일찍이 이 곳에 들려 읊은 “동백정”의 찬시를 소개 한다.
동백정 찬시
//자라 머리에 수많은 나무 찬란히 붉은데/술잔 들고 숲 사이에 함께 흉금을 트네,/한 조각 아(牙)에 비취세 놀라고/몇 가락 쇠 젓대 소리에 고기와 용(龍)이 춤추네,/누른 띠밭 질펀한 곳에 섬이 겹겹일세,/지금 성대(聖代)라서 변방이 고요하니/서로 관장(官長)들이 잠시 높이 앉았다 가는 것도 무방하리//牙어금니 아, 대장기 아, 관아 아. 비취새(푸를 취翠(물총새 취)
동백정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중 “세종신록지리지”의 “무장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구나 “김종직”의 시 내용에서 동백숲이 무성하게 뼏쳐 있을 풍치를 이루려면 “고려조”까지 거슬러 올라 7백년을 헤아리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동호의 지명은 일설에 의하면 “동백정‘과 줄포만을 가득 채운 만수의 바닷물을 “호수”로 비겨 연상해낸 절승을 뜻해 “동백”과 “호수”의 풍치를 상징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그 아름 다움을 짐작할 만 하다.
그러나 관아(官衙)의 폐해(弊害)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베어버린 것을, 어느 해 해일에 파묻히고 뭉개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영신당(靈神堂) 할머니
영신당은 구동호 서북쪽 바다를 향하여 자라목 모형의 쭉 내민 곶(串)에 위치한다. 동호항이 있는 구동호 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철륭제(당산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기 전, 부정 없는 당주를 뽑아 목욕재계하고 근신하며 제사를 준비하게 한다. 제사는 질굿을 치며, 당산나무와 당산 선돌에 미역을 감는다. 음력 2월 1일에는 영신당제와 수륙제(임자 없는 고혼(孤魂)을 위한 제사를 말하며, 용왕제라고도 한다)를 드린다. 이곳 영신당은 고창에서 유일한 해신당(당할머니이며, 바다여신을 모시는 당)이며, 당신도(堂神圖)에는 당할머니와 며느리 둘, 딸 하나가 그려져 있다. 현재는 군사지역 안에 있어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군 초소를 지나 가야한다. 수륙제는 바다에서 죽은 임자 없는 고독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는 제사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바다에서 헌식(물밥을 바다에 뿌림)을 한다. 영신당제는 원래 영등할머니의 생일인 음력 2월 20일에 했다고 한다. 지금도 걸궁과 질굿을 하며 수륙제를 지내고, 영신당 할미에게 제사를 지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까지 이와 같은 아름다운 풍습이 전래되고 있어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