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파도처럼 밀려오는 ‘씨’원함

[1989세상 누구도]

알말이를 곁들인 부산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시원함을 넘어선 ‘씨’원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양세욱 제공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파도처럼 밀려오는 ‘씨’원함
[아무튼, 주말]
[양세욱의 호모 코쿠엔스] 부산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양세욱 인제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입력 2023.10.14. 03:00
업데이트 2023.10.14. 16:19

잔치는 끝났다. 열흘 동안 이어진 세계인의 영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여행객들로 붐비던 부산도, 들썩이던 해운대도 빠르게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한국영화학회 회원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벗들과의 반가운 만남은 늦은 술자리로 이어지고, 다음 날 아침이면 쓰린 속을 달래줄 해장 음식을 찾아 나선다. 해운대 주변 맛집 탐방도 영화제의 즐거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음주량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우리 해장 문화도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역마다 고유한 해장 음식들이 즐비하다. 서울 선짓국, 양평 뼈다귀해장국, 괴산 올갱이탕, 서산 우럭젓국, 전주 콩나물국밥, 무안 연포탕, 하동 재첩국, 동해안의 곰치국, 제주도의 몸국과 갈치국도 해장 음식의 범주에 든다. 부산에도 물론 해장 음식은 차고 넘친다. 복국과 돼지국밥이 있고, 해물탕도 각양각색이다. 대구탕을 빠트릴 수 없다.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해운대기와집대구탕’ ‘아저씨대구탕’처럼 부산 시민과 여행객들의 고른 지지를 받는 대구탕 맛집이 해운대에 몰려 있다.

알말이를 곁들인 부산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시원함을 넘어선 ‘씨’원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양세욱 제공

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에서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구남로광장에는 ‘제1회 해운대 가을국화축제’가 한창이다. 엘시티가 들어선 뒤로 해운대 풍경은 일변했다. 해수욕장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해운대유람선이 출항하는 미포로 다가설수록 101층 마천루는 점점 비현실적인 크기로 다가온다.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미포 본점은 엘시티와 미포방파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해장을 갈망하는 식객들의 안식처답게 식당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인다. 한쪽 벽면에는 영화인, 연예인, 정치인들의 사인이 빼곡하다. 200명이 넘는 유명인들이 남기고 간 흔적만으로도 이곳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메뉴는 대구탕(1만3000원)과 찜(5만원), 알말이(8000원)가 전부다. 취향에 따라 곤이를 추가할 수 있다.

생선 뼈를 우려낸 뽀얀 국물에 들어앉은 말린 대구 살과 큼직한 무 한 조각, 대파가 대구탕 재료의 전부다. 이 간단한 재료들에서 먹어도 먹어도 내성이 생기기를 거부하는, 시원함에 다 담기 어려운 ‘씨’원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탕에 들어앉은 대구 살에는 크고 작은 뼈와 가시가 박혀 있다. 발라내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뼈와 가시에 붙은 살은 혀에 감기는 쫄깃한 식감을 안겨 준다. 얼큰한 맛을 원하면 다진 양념을 넣어도 좋지만, 개운한 국물이 흐려지는 건 감수해야 한다. 게맛살과 날치알, 깻잎이 들어간 알말이는 물론 반찬으로 내는 김치, 도라지진미무침, 콩나물, 깍두기도 대구탕과 잘 어울린다.

어부·극작가·요리사·제빵사를 경험한 미국 저널리스트 마크 쿨란스키는 역사 속 대구의 역할과 생태, 요리법 등 대구의 모든 것을 취재하고 고증해 이 논픽션을 썼다. 글감을 붙들고 7년을 쏟아붓는 집념, 깊이와 넓이로 독자를 압도한다.

대서양 대구의 역사를 다룬 미국 작가 마크 쿨란스키의 명저 ‘대구’의 부제는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다. 콜럼버스보다 수백 년이나 앞선 신대륙 발견에서 식민지 개발과 미국 독립, 남북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대구와 얽혀 있고, 지난 세기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 잦은 분쟁도 대구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입(口)이 큰(大) 생선을 뜻하는 한자 ‘夻(화)’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우리 한자다. 버릴 데가 없는 생선 대구는 우리 밥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조연이다. 대구전과 대구포, 대구회와 대구젓갈이 없는, 무엇보다 대구탕이 없는 우리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을 비롯해 전국 각지 대구탕 맛집들에는 사시사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거제와 진해를 비롯한 남해 일대에서 겨울 한철만 맛볼 수 있는 생대구탕과 회, 전, 탕으로 이루어지는 대구 코스 요리는 미식가들의 연중 의례가 되었다. 해마다 줄어드는 어획량에 비례해 치솟는 가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음식은 입으로 먹지만, 눈으로도 귀로도 코로도 먹는다. 너른 바다를 바라보고 갈매기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먹는 대구탕 한 그릇은 이런 공감각의 힘을 일깨워준다.


많이 본 뉴스
지면 끝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만 나이 통일’했지만 국민 3명 중 2명은 안 써… 한국 나이 왜 끈질긴가
“임신·낙태 발언 허위”... 박수홍 측, 형수 명예훼손 고소 예정


100자평5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libedu
2023.10.14 20:02:34
거창하게 부산국제영화제 운운하더니 뒤로 갈수록 술타령이네.. 뭐, 영화쟁이는 다 알콜 중독자란 이야기도 아니고.. 별 뻘글을 다 싣는걸 보니 조선이 기사거리가 많이 궁해졌구먼.

답글작성
11
7
바우네
2023.10.14 11:01:37
'취향에 따라 곤이를 추가할 수 있다'(?) 시중에서는 흔히 물고기 정액 덩어리를 '곤이'라고 한다. 물고기 배 속의 알은 '곤이(鯤 魚而)'이고, 흰 정액 덩어리는 '이리[어백魚白]'이다. 즉 '곤이를 추가'가 아니라 '이리를 추가'하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표준국어대사전>곤이(鯤 魚而)1.[명사]물고기 배 속의 알.

답글
1
8
4
more4more
2023.10.15 00:08:46
대구가 위대한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사기요 선동이다. 서로 대구를 잡아먹기 위해, 자원을 경쟁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행동한 위대한 인간이 있었다.

답글작성
4
3
참고인
2023.10.15 07:29:48
무우를 넣어 끓인 대구 지리가 속을 시원하게 하여 숙취에 좋긴 하지. 그런데 너무 거창하게 떠벌렸네. ㅎㅎ

답글작성
2
0
매킨토시
2023.10.15 08:32:17
대구탕... 해장으로 좋지요~ 제주에가면 골막국수라고 뼈육수 국수국물에 고추가루, 후추가루, 묵은지 풀어서 먹으면 해장으로 최고.

답글작성
0
0


많이 본 뉴스
1
숙박과 주거 ‘불쾌한 동거’, 엘시티서 엿보는 생숙 대란
2
지면 끝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3
“경의 표할만” “한국에 신세” 日, 이스라엘 파견 韓수송기에 박수보낸 이유
4
자국민 사망도 공개 꺼린다, 하마스 감싸는 中의 셈법은
5
주한 이스라엘 대사 “6주 내 하마스 전멸·무력화 가능”
6
인도 경제 규모, 4년 후 日·獨 뛰어넘고 10년 후엔 중국도 넘본다
7
‘만 나이 통일’했지만 국민 3명 중 2명은 안 써… 한국 나이 왜 끈질긴가
8
이스라엘이 암살하려 30년 쫓았다, 기습공격 주범 ‘손님’은 누구
9
“임신·낙태 발언 허위”... 박수홍 측, 형수 명예훼손 고소 예정
10
10조 기부해도 자기 이름 딴 건물 하나 없었다... 美부호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