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태즈먼에서 카약 타기

해류나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제 시간에 오려면 너무 멀리 가지 않는 편이 좋다.
가능하면 빨리 젓지 말고 천천히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허영만 화백이 초반에 너무 빨리 노를 젓는다 싶었는데,바다 한가운데 가서 힘이 다 빠져서 체력이 다 떨어졌다는 조난 신호를 보낸다.
“김태훈~ 우리 체력 다 떨어졌어!" “먼저 가서 견인차 보낼게요" 나 역시 시간이 갈수록 허리가 아파왔다. 어쨌든 육지로 돌아가야 하므로 목이 뻣뻣해지도록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에 반대 방향의 조류까지 겹쳐 우리 세 명은 거의 망가진 상태로 육지에 올랐다. 허영만 화백의 꿈 중 하나가 카약 여행이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을 접었다.
허영만 화백은 팔이 덜덜 떨려 한동안 그림도 못 그리겠단다.

넬슨으로돌아오다
넬슨의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1시간 정도 걸리는 케이블 베이에 도착했다.
케이블 베이 홀리데이파크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는데 허영만 화백이 왼쪽 샌들을 넬슨의 슈퍼마켓 주차장에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거금 9만5000원 주고 산 새 샌들이라며 무척이나 아까워했다.
함께 저녁을 준비한 후에 어제 산 와인을 따기 위해 허영만 화백의 스위스제 주머니칼의 와인 따개를 와인에 박고 힘껏 잡아당기는데, 끝 부분의 스크루가 코르크에 박힌 채 부러져 버렸다. 코르크와 와인 사이에 빈 공간이 거의 없어 코르크를 밀어 넣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옆 캠프의 키위 가족이 차에 있는 공구를 이용해 스크루를 뽑고 코르크 마개를 파서 겨우 열어주었다.
피곤한 밤이지만 소화도 시킬 겸 해변을 산책했다. 한적한 바닷가에 쏟아지는 별들과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듣고 허영만 화백은 영감이 떠올랐는지 비박을 하기 위해 침낭을 가지고 나간다.

제 16일 블레넘 와인 구입하기 좋은 곳
부지런한 허영만 화백,봉주 형님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허영만 화백이 잃어버린 신발이 너무 불쌍하다고,다시 가보자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던 길을 되밟아갔다.
그리고 어젯밤 주인처럼 비박을 했던 왼쪽 샌들은 무사히 주인 품으로 돌아왔다.
터널 대신 산등성이를 따라 낸 굽은 길을 다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직선도로의 지루함도 조급함도 없이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서고 싶은 곳에 서서 차를 마시고, 음식을 해 먹는 것은 이동 시간마저 즐겁게 만들어버린다.
숲의 맑은 공기가 차 안에 들어오고 도로가 숲의 건강한 모습을 해치지 않아 보는 눈도 즐겁다
산속에 있는 작은 휴게소에 들러 홍합 프리터 (홍합을 갈아 만든 부침개 같은
음식)와 산돼지 파이, 치킨 파이를 하나씩 입에 물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우리 일행이 서두르는 이유는 와인 마을 블레넘 (Bleheim)에 가기 위해서다. 5시면 슈퍼마켓과 주유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가 문을 닫기 때문에 와인 시음을 하려면 그전에 도착해야 한다.

몬타나 와이너리 와인 마을
블레넘의 몬타나(Monta na) 와이너리에 도착한 시간은 약 오후 3시.
국도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가운데에 대형 발효조가 보이고 그 옆으로 다부지게 지어진 건물이 보인다. 이 곳 블레넘의 와인은 기후와 토양이 포도의 성장에 이상적 이어서 최근 국제와인대회에서 줄줄이 상을 받고 있다. 뉴질랜드의 와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최근 들어 그 맛이나 품질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와인 하나 때문에 뉴질랜드를 관광하는 유럽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고, 뉴질랜드에서도 와인 전용 투어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입맛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지만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와인을 선택한다면 같은 가격에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뉴질랜드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수천 병의 와인 중에 오늘 저녁 메뉴와 맞는 와인 고르기를 순전히 확률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뉴질랜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와인 몇 가지를 정리해봤다.
화이트와인
샤도네이 (Chardonnay 프랑스어로는 샤르도네) NZ10~20달러
화이트 와인의 왕이라고 불린다. 복숭아향이 가미된 톡 튀는 맛이 입에 가득 차서 빈틈없이 메워주는 풍미가 그만이다. 화이트 와인은 촌스러워서 레드 와인만 마신다는 사람들(레드와이너)도 샤도네이는 몰래 마신다고 할 정도로 멋진 맛이다. 그중에 ‘몬타나 기스본 샤도네이 (Montana Gisbone Chardonnay) ’는 훌륭한 맛으로 정평이나 있다. 비린 냄새를 깨끗하게 씻어주기 때문에 생선회나 해산물 요리와 찰떡궁합.
• 소비농 블랑 (Sauvignon blanc) NZ15~30달러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멋진 와인. 하루 종일 업무에 지치고 난 후에 마시기 좋은 와인이다. 한식, 태국 음식이나 중국 요리와도 잘 조화를 이룬다. 눈을 감고 향으로만 와인을 고른다면 아마도 소비농 블랑이 최고로 선택되지 않을까? 얼핏 맡으면 나는 피망향이 대단히 매혹적이다.
• 게뷔르츠트라미너 (Gewürztraminer) NZ20달러 정도
하늘이 챙한 여름날 오후쯤이면 치즈와 함께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마시기 좋은 때다. 음식을 도와 맛을 살려주는 와인이라기보다는 독립적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 중 하나이다. 아무런 안주의 도
움 없이 깨끗하게 입 안에 퍼지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물러 투르고 (Müller Thurgau) NZ10-20달러
가장 편안한 맛의 포도주이다. 다른 화이트 와인에 비해 순하고 부드러운 맛과 자극이 적기 때문에 식전 에피타이저로 좋다.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 전에 한 잔 정도 시켜 입맛을 북돋우는 것도 좋다. 와인 초보가 시작하기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 리즐링 (Riesling) NZ10-30달러
독일이 원산지인 리즐링 와인을 뉴질랜드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라임의 신맛과 꿀, 살구향과 약간 짧은 맛은 리즐링 와인만의 깔끔함이다. 이 포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품종 중 하나로, 수분이 적고 당도가 매우 높아 아주 특별한 맛을 만든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은 리즐링 와인 그룹에 속한다. 리즐링 품종의 포도를 제때에 따지 않고 계속해서 두면 특별한 곰팡이가 생기는데, 이를 이용해서 발효를 시킨다고 한다. 물론 일반적인 리즐링 와인은 ‘제때’에 따서 발효시킨다.
• 세미용 (Semillon)
한때 호주나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거의 모든 포도밭을 덮었던 품종이다. 그만큼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하며, 무엇보다 수확 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생산량이 1% 이하이지만, 한때 번성했던 옛 와인의 맛을 뉴질랜드에서는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와인이라 명단에 넣어두었다. 다른 와인에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신맛이 튀지 않아 차례 음식과 잘 어울린다.
레드와인
• 카베르네 소비농 (Cabernet Sauvignon) NZ15-20달러
프랑스 메독 지방이 원산지인 카베르네 소비농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레드 와인일 듯하다. 춥지만 않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잘 자라는 튼튼한 체질인 카베르네의 복잡미묘한 맛에는 포도향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향이 숨어 있다. 고급과 아닌 것의 맛의 차가 매우 크다. 그래서 좀 안된 일이지만 서늘한 뉴질랜드 남섬보다는 북섬의 기스본(Gisborne) 쪽이 더 낫다는 평이 있다.
• 피노누아 (Pinot noir) NZ30-40달러
피노누아는 재배하기가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기후에 민감하고, 진닷물 같은 벌레에 최고로 인기가 좋고, 새들도 좋아하고 수확 시기도 예민하다. 하지만 ‘잘 기르고 발효하면’ 아주 맛있고 변화가 많은 와인이 만들어진다. 노력에 비해 비교적 쉽게 만들어지는 카베르네 소비농에 비하면 피노누아 품종은 기르기가 어렵고 변수가 많아 와이너리에서 가장 기피하는 와인 중 하나이다. 그결과 피노누아는 흔치 않은 포도주가 되어버렸지만, 결코 맛이 없어서 잘 안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뉴질랜드 여행 때 꼭 시음해보기 바란다. 권스타운 근처의 겁스턴 밸리 (Gibston Valley)의 피노누아는 품질이 워낙 좋아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차베르네 소비농 마시는 사람은 목 위로 생각하고, 피노누아 마시는 사람은 허리 아래로 생각한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 메를로 (Melot) NZ20-30달러
진한 색과 젊은 맛으로 정평이 나 있는 메를로는 약간 건조한 초콜릿이나 건포도향이 난다. 텁텁한 맛이 적어 처음 마시는 사람도 쉽게 접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점을 좋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약간 덜 익힌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고기가 좋은 뉴질랜드에서 꼭 마셔봐야 할 와인 중 하나로 추천한다. 가격대비 성능이 거의 최고인 와인이다.
.시라즈 (Shiraz) NZ 20-30달러
다른 나라에서는 시라(Syrah)라고 부르는데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유독 시라즈라고 부른다. 뉴질랜드 시라즈는 연한 색깔에 부드러운 맛이 강해 색이 진하고 강렬한 정통 시라즈의 향보다 다소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연히 시라즈 특유의 후추향, 탄내 등의 독특함은 그대로 살아 있다.
와인에 대한 책이 시중에 많지만 주로 프랑스나 칠레, 이탈리아 등에 한정되어 뉴질랜드 와인에 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뉴질랜드 와인은 저렴한 가격에 중고가 와인의 풍미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함이 있다. 허영만 화백은 몬타나 와이너리에서 선물용 고급 와인 4병과 그 와인을 우리 일행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총알받이용 와인 몇 병을 더 구매했다.
카이코우라(Kaikoura)로 가는 길은 기찻길과 평행하게 붙어 있는, 운전하기 좋은 직선도로다.
길 좌측으로 검은 자갈이 있는 넓은 해변이 보였다가, 노란 꽃이 잔뜩 피어 있는 강 하구가 나타나기도 하고 넓은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바닷가 벼랑이 보이기도 한다.
지루할 틈 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변화무쌍하게 캠퍼밴 창밖으로 펼쳐진다.
날씨가 좋은 데다가 캠퍼밴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자 차 내부의 커튼들이 펄럭거린다.
카이코우라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우리는 바닷가의 작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랍스터(뉴질랜드 명 크레이 피시)의 품질은 정말 고급이었다.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