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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분들 보면서 우리 인사 나눌까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이번 한 주간 얼마나 나라 안팎으로 다양한 소식들 때문에 분주하고 또 마음 졸이셨습니까?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다양한 불안함이 너무 많이 우리를 옥죄이는 시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코로나라고 하는 바이러스로부터의 또 다양한 질병으로부터의 불안, 늘 건강에 대한 염려증을 달고 살아가게 만들죠. 또 근래에는 전쟁 경제적인 것 또 기후적인 것 정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근래 몇 주간 정치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럽고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죠. 이런 전반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러한 정신 건강을 설문한 내용을 보니까 우리나라 한국 사람 10명 중에 7명이 지난 1년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감을 느끼는 정신 건강에 문제를 겪어봤다. 경험해 봤다고 하는 사람이 10명 중에 7명이래요.
그러면 이거는 거의 대부분 지금 뭔가 우리가 어떠한 요소로부터 불안을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의 수치들과 비교해 봐도 이게 그냥 일시적인 거야라고 말하기에는 점점 수치가 안 좋아지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요즘 여러분들은 혹시 무엇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고 계시나요? 여러분 우리는 보통 불안한 어떤 나에게 요소가 다가왔을 때 그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요. 불안한 상황이 다가오면 오히려 공격성을 띠는 분들도 계세요. 자기가 뭔가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 처하면 버럭 화를 내고 오히려 공격해버립니다. 그러면 그게 해결되는 줄 알고 또 어떤 분들은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처한 그 불안을 직면하지 않고 그냥 다른 것 특별히 중독의 문제를 가지고 거기에 빠져가지고 잊어버리려고 해요. 그것이 술이 될 수도 있고 마약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뭐 온갖 미디어에 또 도박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그런 행동들을 통해서 자기가 지금 처한 불안을 잊어버리려고 도피하는 그런 경향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불안함을 이겨내고 계시나요? 오늘 본문 속에서 이제 오늘 본문 내용만 가지고 하는 건 아니고 앞쪽에 이제 27장부터 29장까지의 전반적인 내용 속에서 이 다윗과 사울 이야기를 통해서 한번 우리의 신앙적인 우리의 모습,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 불안적인 요소 상황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살아가야 될까라고 하는 것을 좀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다윗은요. 불안함이 연속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사울이 계속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니까요. 여러 번 위기를 겨우겨우 벗어나고 살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불안함 속에서 이 바울이 택한 방법은 도피였습니다. 이 도피를 좀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기만적인 도피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한마디로 그냥 다윗이라고 하는 자기의 존재를 익명의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대중 속에 파묻혀서 다른 사람도 속이고 나도 속이고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기만적인 도피를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에게 계속 쫓김을 당했던 다윗이 27장에서 결국 블레셋이라고 하는 나라로 망명을 갑니다. 그 이유가 바로 불안 때문이에요. 27장 1절 말씀을 한번 살펴봅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나를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지금 다윗은 사울에게 도망다니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때그때 보호하시고 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지속적인 사울의 그 공세 속에서 그 삶의 환경들 속에서 이 다윗의 마음에 불안함이 쑥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이렇게 도망자로서 늘 이런 불안한 삶을 살 바에 차라리 적국 그 당시에 블레셋은 완전히 대적입니다. 그 적국에 내가 망명해서 그 안에서 내가 안정된 삶을 살겠다라고 결단을 한 거예요. 다윗의 불안정한 삶이 불안을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 불안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구조적인 형태를 불안정이라고 표현하는데 여러 가지 건강적인 문제, 또 우리 요즘 정치적인 문제 여러 가지 삶의 환경이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불안정한 상태에서 느끼는 내 심리적인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보세요.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후일에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언젠가는 내가 사울의 손에 잡혀 죽을 것이다. 지금 여러 가지 불안정한 그 삶의 요소 가운데 다윗의 마음에 불안함이 찾아온 거예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다윗의 지금 전 이야기를 알잖아요. 얼마나 죽음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기적같이 구해주셨는데 그 은혜를 이 불안정한 삶의 자리에서 불안함으로 이게 마음속에서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 불안은요. 대상이 실제하지 않아도 그 불안정한 삶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쑥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난 죽을 거야. 마치 확정적으로 자기의 인생의 결론을 내버립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이 다윗이 불안한 그런 상황 속에서 불안이 딱 마음속에 들어오니까 결국에는 모든 상황이 다 차단되고 결국 나의 인생은 그렇게 될 거라고 판단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차라리 떠나버리자 블레셋 정말 대적인데 원수 같은 곳인데 그래서 자신을 따르던 600명과 함께 블레셋 아기스 왕에게 가게 됩니다. 그곳에 가서 망명을 받아들이게 되고 아기스 왕과 신임을 받게 되어서 1년 4개월 정도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윗이라고 하는 인물을 참 좋아하잖아요. 전반적인 다윗의 삶의 모습들은 참 우리가 본받을 게 많아요. 근데 이 장면에서 다윗의 결정과 행동이 이해가 되시나요? 어쩌면 이 장면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흑역사적인 장면입니다. 지우고 싶은 역사예요. 근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어요. 다윗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그렇게 칭찬받았던 다윗도 이런 연약한 사람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가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믿음이 아주 좋아서 그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믿음의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그도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명의 인물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본문 앞쪽에 28장에 보면 사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무엘 상은 약간 역사적인 시대순이 약간 이렇게 섞여 있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오히려 29장 28장보다 앞쪽에 자리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거는 이제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다 보면 지금 이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장면이 그려져 있구나라는 걸 볼 수 있는데, 28장에는 사울의 불안함을 다루고 있어요.
28장에 블레셋 군대가 집결하여 가지고 이스라엘로 쳐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길보아산이라는 곳에서 이제 두 군대가 진을 치고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 블레셋 군대의 위세가 너무 강하니까 사울이 두려운 마음이 쑥 들어왔습니다. 28장 5절과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울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여러분 사울이 지금 두려워하는 대상은 눈앞에 있는 블레셋이라고 하는 군대지만 더 지금 사울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냐면 바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거예요. 그 당시에 하나님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응답하시는 그러한 방법이 여기 나오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꿈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었고요. 두 번째는 우림이라고 하는 것으로 또 세 번째는 예언자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꿈은 지금 사울이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황이니까 꿈으로 지금 응답받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울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제사장의 에봇에 있는 뭔가를 분별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왜 울림으로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까? 그전에 사울이 노베에 있는 제사장 85명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분별해 줄 수 있는 제사장들을 죽여버렸어요. 이미 하나님의 그 응답할 통로를 없애버린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와가지고 상황이 급박하니까 지금에서야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면서 그 응답이 없다고 침묵하신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
응답이 없는 적막한 하나님의 침묵이 이 사울의 마음의 불안을 더 가중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궁지에 몰린 사울은 뭘 택하나요? 이 불안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엔돌의 무당 무속인을 찾아가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이끌어갔었던 사울 왕이 하나님이 침묵하시니까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무당을 찾아가서도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고 정말 주저앉고 맙니다.
여러분 아니 어떻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아무리 무너졌어도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싸웠던 그 왕이 지금 이 마지막에 무당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이해가 되십니까? 불안함이 그 내면 속의 깊은 불안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여러분 사실 지금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요 침묵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울이라고 하는 인물이 돌이키기를 원하셨어요? 40년이라고 하는 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왕위를 지켜주셨잖아요. 기다려주신 겁니다. 여러분 지금 두 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우리가 잠깐 나눴지만 다윗도 그렇고 사울도 그렇고 환경 속에서 불안함을 딱 갖게 되니까 그 상황 속에서 도피하고 그 불안함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 둘 다 불안을 대처하는 방식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적으로 불안한 환경 가운데 지금 처한 상황입니다. 어제 이제 탄핵이 가결되어서 앞으로 이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 우리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겠지만 또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몰라요. 솔직히 몇 주간의 상황도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그런 상황 아닙니까? 아마 과거에 계엄을 직접 경험하는 우리 성도들 중에는요. 이게 트라우마처럼 지금 굉장히 마음이 막 이렇게 힘든 분들도 분명히 계실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어쩌면 사울이나 다윗처럼 뭔가 우리의 삶의 불안정한 삶의 환경 속에서 불안함이 우리를 짓누를 수 있는 그런 똑같은 상황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블레셋으로 망명간 다윗 그 나름대로의 해결책은요. 오히려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더 악화되는 단계로 들어가 버립니다.
오늘 본문의 앞쪽에 보면 1절에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이제 군대를 동원한 거예요. 그래서 모든 군대가 압에게 모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어디에 있어요? 블레셋에 지금 망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군인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미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나니까 당연히 그 블레셋의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만약에 다윗이 블레셋 군인으로 그 전쟁을 치른다면 그 전쟁 중에 사울을 죽인다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이미 약속받았지만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번듯하게 설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지금 진퇴양난입니다. 그 블레셋 군과 함께 지금 전쟁에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핑계를 대고 안 나가면 이 사람들한테 오해받기 딱 좋잖아요. 상황이 자기 나름대로는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블레셋이라고 하는 진영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지금 더 큰 불안함이 더 큰 위험이 이 다윗에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27장에 이 다윗이 불안한 상황 속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린 결과가 자초한 큰 위기가 바로 이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사울처럼 무당을 찾아가는 것, 또 다윗처럼 그냥 내가 볼 때 이 상황을 벗어나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도피하는 것.
여러분 그렇게 우리의 삶에 순간적으로 내 마음에 내 생각대로 뭔가를 결정하고 판단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히려 그게 더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더 큰 불안으로 우리를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도 늘 불안정한 삶의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 상황 속에 우리는 뭔가를 결정해야 될 때가 있어요. 분명히. 그런데 여러분 그 결정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결정을 할 텐데 더 행복해지기를 이 불안의 요소가 제거되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뭔가를 선택할 텐데 이 다윗처럼 이 600명이라고 하는 사람 그리고 나의 불안정한 그 인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 나름대로 선택한 방법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여러분 우리가 손가락질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지 한번 나 자신을 곰곰이 살펴보십시오. 아니 어떻게 다윗이 저런 선택을 할 수가 있어? 그래도 너무 했다. 나라면 저렇게 안 했을 텐데 근데 여러분 솔직하게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가 뭔가를 선택할 때요. 순간적으로 내 이 불안정한 삶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요. 순간적으로 그냥 그 일을 택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신앙의 길이든 아니든 별로 분별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잘못된 더 큰 일들을 마주하는 경우들이 있는 겁니다. 불안하다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선택하는 그 선택이 오히려 이런 더 큰 위기를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 상황에서 이제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정말 너무나도 큰 위기 속에 딜레마에 빠진 이 다윗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에요. 그 바로 앞에 3절에 보면 블레셋의 지휘관들이 아기스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광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의 헤로되 그가 망령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전쟁을 막 나가려고 하는데 블레셋 방백들을 이렇게 보니까 다윗이 있는 거예요. 근데 이 다윗이라는 존재는요. 블레셋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존재입니다. 사울은 천천히요. 다윗은 만만이라 외쳤던 그 정도로 다윗이 엄청난 전쟁의 성과를 이룬 그 전쟁 중에는 이 블레셋을 싸우고 이긴 그 전쟁도 있거든요. 과거의 상처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물론 지금 망명 와가지고 망명 와서 지금 오랜 기간 왕에게 신뢰는 받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중요한 전쟁에서 만약에 제가 같이 가다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탁 돌려가지고 싸운다면 앞에서는 사울이 뒤에서는 다윗이 같이 합공을 하면 자기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 방백들의 이 말이요. 그들의 불안함 속에서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건 다윗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아무리 불안정하다고 아무리 불안하다고 너 지금 여기 들어와서 뭐 하고 있니? 하나님의 백성 여기서도 아기스가 표현하지 않습니까? 사울의 신하 다윗, 이스라엘의 장군 다윗 그 사람이 지금 이스라엘의 적군 속에 지금 있는 거예요. 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지금도 믿음의 사람 너 지금 너 어디에 있는 거니라고 묻는 그 질문으로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믿음이 없는 블레셋 사람들의 그 대화 속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다윗에게 하고 있는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믿는 너희들 뭐 하고 있니?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너희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나님 붙들고 살아간다고 하는 너희들 뭐 하고 있니?
저와 여러분들에게 지금 질문을 하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불안함 속에서 거짓된 안정감을 붙드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너질 우상은요. 잠시 잠깐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 같고 내 문제의 해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지만 여러분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겁니다.
지금 이 불안한 환경 속에서 여러분 뭘 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의 민족이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우리 뭐 하고 있냐고요?
한번 우리의 지금 모습을 이 다윗과 사울의 모습을 통해서 좀 점검했으면 좋겠어요. 다윗은 불안정한 삶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선택한 그 상황 속에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스파이로 의심 받아서 죽게 될 것이고 전쟁에 나가면 그 사랑하는 이스라엘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존재들이 이 상황을 반대합니다. 아기스 왕은 끝까지 다윗을 믿어주죠. 야 내가 이거는 신뢰하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 이제 우리 사람이야라고 왕이 이야기하는데도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그래서 결국 다윗이 이 전쟁에 출전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이 연약하고 실수하고 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그런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방법 중에 하나예요.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너와 함께 온 내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 밝거든 곧 떠나라.
이제 전쟁터에 지금 와서 지쳐 있는데 이 상황에서 야 너네 돌아가 안 되겠어 방백들이 너무 불안해 하니까 니네 괜히 여기서 오해받지 말고 그냥 돌아가 있어. 우리가 전쟁할게 다윗에게 있어서는 이건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전적인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대림절기에 우리가 묵상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우리 한번 따라해 볼까요?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우리는 믿잖아요. 그쵸 지금 여러 가지 우리의 환경 속에서 우리가 마치 혼자 있는 것 같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금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다윗에게 베풀어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이미 예비한 은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불안함 속에서도요.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상치도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상상치도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또 뭐 여러 가지 상황적으로도 그런데 여러분 원래 소망은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외형 돈, 권력 인간이 만든 제도 이건요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우리에게 진짜 소망이 될 수가 없어요. 로마서 8장 말씀을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장 24절 25절입니다. 시작
우리는 소망이 사랑이 아니지
아멘 네 진짜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소망의 대상이 하나님이시잖아요. 어쩌면 지금 나라 또 여러 가지 환경 상황적으로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이 시대가 우리가 오히려 그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러한 때임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때가 아닌 이때도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 이때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언제 하실 거예요? 이제 탄핵 통과됐으니까 다 끝난 것 같이 보이십니까? 아니요. 여러분들이 지지하는 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완전히 행복한 나라로 탈바꿈 될까요? 아니요. 솔직히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인들 몇 명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변화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불안한 가운데 있을 때 정말 내가 예상치 못한 그 상황으로 계속 흘러갈 때 오히려 그때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하심을 더 기대하고 붙들 수 있는 소망의 때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기도하는 장면이 이렇게 나오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근데 여러분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해야 될지도 모르는 아니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이 상황 속에서 도대체 뭘 기도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러한 때에도 우리는 말씀을 통해 기도해야 됨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시편 13편에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때가 있어요.
나의 영원히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까
다윗에게 있어서 너무 이런 궁핍하고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들의 요소가 참 종일토록 마음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럴 때 3절에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데 내가 사망에 잠을 잘까 하오며
불안함 속에 지금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때 내 눈을 밝혀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어쩌면 사울과 다윗이 정말 지금 이 불안함을 대처하는 게 있어서 둘 다 미숙하고 좀 불신앙적인 요소들이 있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그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가 늘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불안하고 답답하다 보면 참 기도가 안 나올 때가 있어요. 여러분 요즘 기도가 좀 어떻게 잘 되고 계시나요? 요즘 약간 우리 또 기도의 위기들이 조금 보입니다. 갑자기 요즘 기도를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막 이러면서 또 이제 공석들이 막 생기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여러분 지금 교회에 나와서 새벽 예배 드리는 분들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우리를 지금 나를 보자고요. 나를 요즘 이 연말에 맨날 뉴스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는 이때에 지금 나는 과연 기도하고 있나 하나님 의지하며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나 우리가 어찌 기도할 바 모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바로 로마서 8장 27절과 2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아멘 우리가 연약해서 정말 이렇게 해야 될지 저렇게 해야 될지, 또 기도가 차마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요.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드리기만 하면 바로 이 말씀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되는지 마땅히 알 바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도우시는 성령의 그 간고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불안정하고 깨어진 삶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이 불완전함을 깨기 위해서 오신 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대림의 절기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깨워지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더욱더 바라보기를 원해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느니라 뭐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침묵한다고 느껴지십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늘 여러분들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나라의 민족을 붙드시고 지금 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주도하심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다윗처럼 우리의 눈을 열어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더욱더 마주하게 하시고 그 주님을 의지함으로 오히려 이 다윗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정말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게 하시고 다시금 일어서게 하셨던 하나님의 그 은혜처럼 이 나라의 민족 가운데 솔직히 우리가 볼 때 이것이 답이다 저것이 답이다 말하는 그 답이 답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막 올라가서 막 단상에서 막 외치더라고요. 우리도 아는 걸 왜 모르십니까라고 하면서 막 외쳐요. 근데 여러분 이런 상황 속에서 임마누엘의 신앙을 우리가 먼저 회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나라의 이 민족, 정말 세계적인 유례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이 나라의 민족이 지금 우상숭배, 교만함 그리고 교회와 신앙인들을 핍박하는 그 핍박함 속에 완전히 깨어지고 무너지는 이 시대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이건 몇몇 사람 지도자들의 문제로 끝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이런 지도자들이 최고의 지도자까지 되는 거예요.
누가 이 사람들 뽑았어 하면서 손가락질만 하실 건가요? 우리의 불안함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아무리 캄캄한 길을 걸어도요. 그리고 정말 무섭게 생긴 그런 길을 걸어도요. 엄마 아빠 손을 딱 잡고 가는 아이는요. 겁내지 않아요. 그렇죠 엄마 아빠도 솔직히 무서운데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기만 하면 두려울 게 없잖아요.
여러분 하물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데 우리가 이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의 지금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또 관계적인 문제, 다양한 신앙적인 문제, 그 문제 속에서 여러분들 지금 붙잡고 계신 그 손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떠한 불안함의 요소가 찾아와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림절기 기간 이제 거의 이제 막바지까지 오고 있는데요. 여러분 불안정하고 불안한 삶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가득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