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쯧쯧, 땅을 파봐라. 10원 한장이라도 나오나. "
어르신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땅을 팠더니 10원이 뭡니까, 무려 백억이 넘는 돈이 쏟아져 나오는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졌습니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40대 부부가 자기네집 뒤뜰을 산책하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땅 위로 툭 튀어나온
낡은 캔 때문이었지요 . 이끼를 털어내고 깡통 안을 살펴보니 금화로 가득 차 있었고 주위를 더 팠더니 다섯 개의 깡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1847년부터 1894년까지 주조된 금화 1,500여 개가 쏟아졌는데요. 부부는 익명을 요청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 새로운 골드러시를 찿아 금광부들이 몰려드는 것을 피하고 싶다. "
" 골드러시"는 1849년부터 1853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견된 금을 채취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든 사태를 일컫습니다.
" 물 반 고기 반 " 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이 시절에 캘리포니아 광산지대가 " 돌 반 금 반 " 이었던 모양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금이 발견된 것은 1848년입니다. 미국과 멕시코가 텍사스 국경선을 둘러싸고 싸우기를 2년,
마침내 강화조약이 체결되기 일주일 전에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근방에서 금이 발견됐습니다.
워낙 넒은 땅덩어리다보니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이 동부로 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1849년에 접어들어서야
미국 전역뿐 아니라 유럽과 중남미, 하와이,중국등 그야말로 세계 곳곳에서 생계를 팽개치고 "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는
꿈에 부풀어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는데 ,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금이 발견되면 왕의 것이었지만 신대륙 미국에서는 달랐습니다.
찿아내기만 하면 그곳이 어디든 얼마나 많든, 모두 찿아낸 사람의 것이었지요. 이처럼 184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골드러시는
세상을 황금열풍에 물들게 했을 뿐 아니라 한탕주의와 승자독식주의를 낳았으며 이런 정신이 사회 곳곳에 맹렬한 속도로 퍼졌습니다.
당시에 미국인들은 1849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사람들을 49년 조, 즉 "포티 나이너" 라고 불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포티 나이너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을 방랑하며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음악인들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됐고
나중에 몇권의 노래책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바로 ( 클레멘타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로 개사됐지만 원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 협곡에 들어가서 광석을 캐내는 광부. 아버지는 포티나이너이고 딸은 클레멘타인"
포티 나이너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자칫 " 아버지는 마흔아홉 살" 로 잘못 알 수 있는데요. 크레멘타인의 아버지는
1849년에 골드러시의 행렬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금을 캐러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
노래의 슬픈 가사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며 달려온 포터나이너 대부분은 끝없이 금을 찿아 광석을 캐느라 제대로 가족을 돌볼 수
없었고 끝내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광 주변의 숙박업소 주인들, 그리고 광부들에게 작업복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판 업자였지요. 그런데도 골드러시라는 희대의 광풍은 캘리포니아의 금광이 고갈되는 1851년부터 또 다른
신대륙 호주로까지 퍼졌습니다. 미국에서 골드러시를 이루는 데 일조했던 포티 나이너 중 한 사람이 호주에 가서 똑같은 지질을
찿아서 캤는데 금광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골드러시 때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금광이 집중된 호주 동남부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파사스트와 빅토리아 주의 파라라트를 향해서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양을 기르는 목축업자들이 위기를 맞았지요. 목장을 돌봐야 할 일손들이 금을 캐서 부자가 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속속 빠져나가고 말았으니까요. 목축업자들은 목장에 울타리를 치거나 개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메웠는데요.
문제는 1850년대 말, 골드러시의 열풍이 식은 후였습니다. 금을 찿으러 떠난 이들이 금을 찿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목장에
돌아왔지만 이미 그들은 필요치 않은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목장주들이 적은 인력으로 목장을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 곳곳에 실업자들이 넘쳐났고 여기서 나온 말이 "스웨그" 입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2013년 말에 올해의 키워드를 발표하면서 "가벼움, 여유와 멋, 약간의 허세와 치기를 겸비한 스웨그는
사회의 한 흐름" 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는데요. 원래는 호주 사투리로 " 어깨에 메는 모양으로 된 자루"를 뜻하며
"스웨그맨" 이라고 하면 동냥 자루를 메고 다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 되지요. 그리고 이 스웨그의 예칭이 "마틸다"입니다.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호주의 노래(왈칭 마틸다)에 나오는 마틸다가 바로 그 마틸다입니다.
여기에서 "왈칭"은 춤춘다는 뜻이 아니라 걷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이 노래는 마틸다와 춤추는 노래가 아니라
동냥자루를 메고 이리저리 떠돌며 일자리를 찿는 스웨그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 신대륙에서 벌어진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황금사냥 , 골드러시가 낳은 것은 한탕주의와 승자독식주의, 그리고 여기에서 밀려난 클레멘타인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첫댓글 근무 하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국민학교때 학교앞 하수도 블럭을 들어내고 흙을 퍼내서 파헤치다보면,
10원짜리부터 100원짜리까지 꽤 찾아내서 군것질 하고는 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