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수필월례회 발표물〉
수필에 관한 생각
전상준
수필이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라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것보다 김열규 교수가 “수필은 벼룩시장을 닮았다. 얼핏 보아 하찮은 것 같은 물건들, 그냥 놓쳐 버리던 우리 마음에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을 일들, 그러나 우리들의 생활 속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굴러다니기에 신통스러움이 없으면서도 생활의 때가 낀 것들, 그래서 이미 우리 자신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수필은 이러한 것을 얘기한 것이다. 그래서 수필은 그러한 물건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수필은 그 사소한 것, 그 미미한 것에 대한 애정이다. 생활의 때가 낀 물건이나 일을 두고서 하는 얘기, 깊이 인간화된 물건과 일에 대한 인간적인 얘기, 이러한 얘기일 때 수필은 더없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래서 수필은 가장 손때 묻은 글이 된다. 생활 속에 푹 절여져서 익은 글, 생활에 김치처럼 익은 글, 그게 수필이다.” 한 것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여러 해 전이다. 〈라면 끓이기와 수필 쓰기〉란 글을 발표한 일이 있다. 그 작품에서 내가 라면을 끓이면 왜 냄새처럼 맛이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내가 쓴 수필 작품 수준이 라면 끓이는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 맛이 왜 냄새처럼 맛깔스럽지 못할까. 거기에는 재료 준비에서부터 만드는 과정이 생략됐다. 내 손으로 한 일은 겨우 라면을 익히는 과정뿐이다. 배가 고프니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겠다는 단순 논리만 있을 뿐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사랑이 없다. 맛이나 영양에 대한 책임까지도 업신여긴 결과다. 수필 쓰기가 라면 조리하는 수준에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음식과 글은 서로 통한다. 사람들은 남이 만든 음식을 먹고 몸에 영향을 취하며, 남이 쓴 글을 읽으며 정신적인 성장을 한다. 내 수필도 독자가 행복하고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작품 내용 요약이다.
내 수필은 약점이 참 많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못 하고 있다. 인간 존중의 존엄성을 외친 부분도 없다. 내 작은 삶의 울타리 속에 맴돌고 있는 이야기로는 부족함이 많다. 대부분이 이기적인 내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보다 태풍이 몰아치는 여름 하늘도 바라볼 힘을 길러야겠다. 수필은 곧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고 내 삶의 모습이다. 앞으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바라볼 생각이다. 독자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수필을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