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라
로고스서원의 희망의 인문학 이야기 66
일시 : 2019년 7월 19일
장소 : 새빛센터
1.
들어가니 잘 생긴 녀석이 눈에 확 들어온다. 노랑색으로 염색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약간 귀염성이 있어 보이는 친구다. 17살이란다. 고정욱작가의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읽고 글을 썼는데, 제목이 “어머 우리 재석이가 사라져버렸네”다. 처음 쓰는 글이라는데, 한페이지를 빡빡하게 채웠다. 한 호흡이 길긴 해도, 전체 내용을 잘 요약했고, 자기만의 생각과 언어로 요약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첫 날이라 맨 마지막에 발표했다. 박수를 뜨겁게 쳐주었다.
2.
첫 번째는 ‘훈’이의 글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글을 썼다. 제목은 ‘선택의 용기’이다.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하더니 중요한 포인트를 탁 집어서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네 말대로 너는 많이 바뀌었고, 퇴소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바뀐 삶을 살렴. 속으로 살짝 기도한다.
다음은 ‘허’다. 재석이란 비슷한 덩치와 화끈한 성격의 친구다. 독후감으로 다음과 같은 멋진 문장을 남겼다. “이 나이 때엔 싸움 잘하면 권력 있고 잘 나가는 것처럼 어깨가 막 펴진다.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철이 들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먹이 때로는 지는 법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지금 이 시대엔 싸움이 아니라 머리, 또는 돈, 권력, 인맥이 최고인 것 같다.”
‘주먹이 때로는 지는 법’이라는 문장을 놓고 잠시 토론을 벌였다. 때로 지는 법이냐? 항상 지는 법이냐?
한 둘은 잠시 쪽에, 대다수는 항상이라고 했다. 그래, 그래. 주먹으로 문제 해결하지 마라. ‘우’의 말마따나 ‘말’로 대화하고 싸우고 이겨야지. 그치?
‘찬’이다. 조금 늦게 왔다. 문장은 깔끔하다. 요약의 맨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재석이는 점차 성실한 아이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건 자기 이야기다. 많이 변했다.
‘명’이는 아이들이 대개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처음 부분을 디테일하게 요약하다가 나중에는 서둘러 마치거나, 일부분을 너무 부각시키고 다른 중요한 내용은 건너 띄곤 한다. 허나, ‘명’이는 전체 스토리 중 어느 일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골고루 포함시켰다. 느낀 점이 없어서 다소 아쉽지만, 요약을 잘 한 것만으로도 좋다, 좋아.
‘우’는 다음 주에 퇴소한다. 1년 정도 만났다.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얼굴의 여드름도 많이 줄었다. 크면 모델하고 싶다는 녀석인데,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자신에게 와 닿았던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했고, 지금 보다 예전에는 훨씬 심했을 것 같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준’이다. 준이는 자서전 3번째 이야기를 썼다. 실은 저번에 썼던 글이 간략해서 서너 부분을 짚어주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쓰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학교는 자주 빠지고 형들이랑 어울려 놀러 다니기는 했지만 그리 문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형들의 전화를 받고 가기 싫은 곳을 마지 못해 따라갔다가 자신도 폭력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제 딴에는 별 일 아니다 싶었는데, 맞은 아이가 코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래서 위탁에 갔다고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다. 후회와 반성의 말과 함께 최근에 노력하고 있단다. 주변 아이들도 맞장구쳐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형들을 안 만나고 학교도 잘 다녔다면 내가 어떤 생활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땠을까, 라고 물었더니, 공부는 잘 못해도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며 놀았을 거란다. 이런 데 안 오고 말이다.
3.
‘훈’이는 1년 1개월을 여기에 있었다. ‘우’도 비슷하다. 둘 다 정든 친구다. 다음 주 월요일 경에 퇴소란다. 가슴이 괜히 시큰하다. 마지막에 기념으로 사진 찍고, 안아주었다. “잘 살아라, 여기 다시 오지 마라, 그리고 꼭 보자, 밥 살게.” 내 레퍼토리다.
퇴소 소감을 글로 쓰라고 했다. ‘훈’이가 쓴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목사님을 만나서 평생 읽지도 않은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게 되었습니다.”
‘우’는 “1년 동안 함께 목사님을 만나며 값진 배움을 하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 뵐게용.”
그래, 내가 더 즐거웠고 고마웠지. 읽은 것이 그 사람이라고 한단다. 읽은 대로, 글쓴 대로 잘 살아라. 벌써 보고 싶다. 잘 가렴^^
4.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맛나게 먹고 두 녀석과 기념 사진 찍고 돌아왔다. 이따금 사진 보며 너희 생각하고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