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갓재에 있는 백두대간 표시석에서(문경 산들모임에 감사)....... 12 : 29 : 06
백 두 대 간 남한구간 중간지점
[해발 756.7m 북위 36° 49’ 동경 128° 15’]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차갓재
백두대간이 용트림하며 힘차게 뻗어가는 이곳은 일천육백여리 대간길 중간에 자리한 지점이다.
넉넉하고 온후한 마음의 산사람들이여 ! 이곳 산 정기 얻어 즐거운 산행되시길
[뒷면]
통일이여 ! 통일이여 ! 민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 철조망이 걷히고
막혔던 혈관을 뚫고 끓는 피가 맑게 흐르는 날
대간길 마루금에 흩날리는 풋풋한 풀꽃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
물안개 피는 북녘땅 상대령에서 다시 한번 힘찬 발걸음 내딛는 니 모습이 보고 싶다.
2005년 7월 15일 문경 산들모임
안생달의 와인 창고앞에 주차후 東盧주재 개인택시(T.054-552-7891)를 이용하여.... 10 :37 : 21
안생달- 동로시내-벌재-명전2리 - 명전1리(2차선)가는 도중에 차갓길 입구 교량에서 하차 후 오른다...
차갓길 2→160
교량을 건너면 그늘진 1차선 차갓길 2-160 이 시작된다..
입구에... 전신주, 작은 스피커 달린 기둥, 통신탑, 화장실이 있다.
[현수막] 공사명 : 문경시 동로면 명전1, 2리 삼상화사업(가공배전선로)
■ 발주처 : 한국전력공사 단양지사 ■감리사 : (주)가온감리단 ■ 시공사 : (주)홍우전업사
교량에서 본 명전1리(건학) 가는 길이 개울 따라 이어진다....
차갓길을 오르는 우측에 바위들이 압도한다...
거늘진 좁은 산길을 포장하여 걷기는 괜찮았다.
그늘이 없어지며 너른 분지가 전개되고...
첫 철탑에 경고문이 있다...
(노란판) 154,000볼트 위험 올라가지 맙시다. 한국전력
(하얀판) 154kV 단양 T/L NO.58 점촌-단양 :좌 문경-단양 :우 A2 - 30m
松崗님이 가르키는 곳의 철탑과 고압선이 넘어가는 곳은 나무를 잘라 골이져 있어(생달 방향)
차갓재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11 : 02 : 35
첫번째 집에는 빈터에 판넬건물을 신축 중이다...
첫번째 집을 지나 오르다가 뒤돌아 보니 암봉의 풍경이 좋았다...
두번째 주택으로 우측은 빈집이고 왼쪽에 장독대가 깨끗한 주택이 있다...
세번째 집 입구의 한마리 개가 짖으니 주변의 4마리의 개가 동시에 합창을 하여 시끄러웠다.
주민을 만나서 담소하니 개들이 조용하다...
주민은 명전초등학교를 다닌 차갓마을이 고향인 팬션사업을 하는 분 같았다... 11 : 11 : 20
팬션이 이층으로 깨끗하고 주변을 잘 가꾸어 놓았다....
차량 주차한 곳으로 직진하니 개울이 나오고 풀이 수북한 너른 산길이 시작된다... 11 : 15 : 05
붉은 리본이 나무에 매어 있어 리본을 따라 가면 된다....
[리본 내용]
세상에 빛을 이웃에 사랑을 산 불 조 심
☎ 철탑주변 산불고장신고 (주간) 630-3351 630-3352 (야간) 630-3366 630-3367
한전 신영주전력소
두번째 만난 철탑..... 여기서 붉은 리본이 산 아래로 있어 약간 당황한 뒤 대각선으로 질러 가니 길이 나왔다.
[철탑 경고문]
(노란판) 154,000볼트 위험 올라가지 맙시다. 한국전력
(하얀판) 154kV 단양 T/L NO.60 점촌-단양 : 좌 문경-단양 : 우 A2 - 30m
철탑에서 대각선으로 松崗님이 먼저 앞서서 길을 찾았다...
會長님은 산길 옆의 산마를 발견했다... 11 : 52 : 13
산마의 크기가 헨드폰 길이 정도 된다.
길 옆의 개머루 잎이 하얀색으로 눈에 띄었다...
붉은 리본을 따라 오르니 얼굴에 땀이 맺힌다....
차갓재의 능선을 다 올라 온것 같다... 12 : 25 : 47
松崗님은 먼저 와서 쉬고 있고, 풀 숲에 표석(백두대간 남한중간지점 표시석)이 있어 반가웠다...
드디어 차갓재를 올라 기쁜 마음이 가득했다.......(110분 걸림) 12 : 26 : 13
황장산 가는 대간길 방향에서... 12 : 29 : 40
대미산 가는 대간길 방향에서.... 12 : 30 : 08
생달리로 내려 가는 길... 12 : 32 : 43
낙엽송과 느릅나무가 한 몸이 되어 살아간다... 12 : 34 : 40
會長님과 松崗님이 산나물을 채취한다... 12 : 37 : 28
낙엽송 숲이 짙은 그늘로 다니기에 좋았다......
숲 사이로 좁은 길이 잘 보여 내려 오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내려 올때 낙차가 크서 약간 힘들었는데, 올려다 보니 받침돌이 하나 필요한 곳이다... 12 : 57 : 43
숲 속을 빠져 나오니 뾰족한 산봉우리가 두 개 보이고,
너른 풀밭에 가슴이 탁 터인다.... 12 : 59 : 31
포장된 농로와 건물이 보여 안생달에 다 온것 같다....
뒤돌아 보니 암봉이 멋져서 배경으로 찰깍..... 13 : 02 : 15
농로 포장길을 내려와 차도와 합류하니 좌측으로 와인동굴 CAVE 가는 안내표시가 있다....
와인창고(주인이 도로 변 보다 자기 창고 앞에 주차를 권함) 앞에 주차..... 13 : 05 : 01
3명의 탐방객이 와인동굴쪽에서 앞서가며 내려간다.... (차갓재에서 81분 걸림)
점심 식사를 위해 길가의 "여우목 Valley 펜션, 캠핑장" 개울로 내려 갔다.
시원한 개울에서 점심을 먹고 얼굴도 닦았다.... 13 : 19 : 59
연주패옥 명당의 舞松臺에서... 13 : 57 : 54
보 호 수
품 격 연나무 고유번호 11-26-7-1 지정일자 1982. 10. 26
품 종 소나무 수 령 300년 소재지 :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965
연주패옥의 정기를 받으며....
조선의 명당(明堂) “연주패옥(連珠佩玉)”과 “말 무덤(馬塚)”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965
우리나라 등줄을 타고 흘러 내려온 산줄기는 문경지방에 무수한 명산(名山)으로 잉태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이곳은 전국 명산 묘터 중 옥관자(玉貫子) 서말, 금관자(金貫子) 서말이 나온다는 연주패옥(連珠佩玉) 명당(明堂)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예로부터 무송대(舞松臺) 또는 말무덤이라 부르는 이곳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1598)을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귀화한 명지관(明地官) 두사충(杜思忠 ?~?)이 조선조의 문신(文臣)인 약포(藥圃) 정탁(鄭琢)대감에게 큰 은혜를 입게 되어 그 보답으로 정대감의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있을 때 미리잡아 둔 묏자리)를 이 일대에 잡아두고 그 위치를 구종(驅從)에게 알려 놓았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연주패옥형(連珠佩玉形) 명당으로서 자손이 아주 귀하게 되는 곳이라 하였다.
얼마 후 정대감의 아들과 그 위치를 아는 구종이 묏자리를 찾아 이곳에 와서 연주패옥 명당을 가리키는 순간 말이 구종을 차서 죽게 하니 화가 난 대감의 아들이 말을 죽이고 이곳에 묻었는데 그 후로 연주패옥 명당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일대에는 명당을 찾으려는 지관(地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백두대간(白頭大幹) 명산(名山)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황장산(1,077m), 옥녀봉(475m), 경재봉(384m)이 있어 그 형세를 가히 짐작케 한다.
문 경 시 장
舞松臺에서 멋진 소나무의 정기를 받으며 ....
적성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 공원 14 : 25 : 28
좌로부터 1. 태 극 기
2. 건 립 기(순국위령비, 적성전투전승비 재 건립)-울타리에 가려 안보임
3. 殉 國 慰 靈 碑(1971.4)
4. 赤城里戰鬪 戰 勝 碑(1971.4)
5. 적성리 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 (중앙의 조형물 ) (2001.6.25)
6. 건립기(중앙의 조형물 앞)
2. 건 립 기 (순국위령비, 적성전투전승비 재 건립)
이 비는 1971년도 동로면민의 정성과 육군 제36사단장 손장래장군(참전당시 한국특별공격대중대장)의 도움으로 노은리 156-3(동로초등학교 옆)번지에 세워졌던 것을 1980년도 군비 일백만원으로 적성리 산2(국궁장 옆)번지로 이전하였으며 6.25동란 50주년을 맞이하여 나라와 고향을 지키다가 장렬히 산화하신 순국영령과 참전용사들의 애국충정과 향토방위의 높은 뜻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고자 市費 오천만원과 面民의 정성으로 재건립 하였다.
비의 제원 : 문경석 높이 : 5.7M
비의 상징 : 상단 : 순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두손으로 높이 받드는 모습
중단 : 검은 테두리는 순국영령들 추모하는 이미지 상징
하단 : 천주봉과 황장산 자락에 구름이 걸려있는 웅장한 모습
2001. 6. 25
순국위령비· 적성리전투전승비 재건립 추진위원장 하 정 국
면 장 최 돈 기 시 의 원 이 두 영
[뒷면]
특공대원 명단
특공대장 1대 : 강명수 2대 : 임환기
대 원 권영식 권순만 권순정 구제목 김부춘 김상모 김우영 김재영 김진봉 박경래
박승환 박영래 배병옥 손병제 송재성 양진갑 여일현 이강백 이강달 이기용
이재우 이정록 이수흠 이승우 이양호 이찬배 이홍우 장기찬 장사구 장환덕
정흥복 지종성 조윤섭 최순영 최종호 홍사옥 황병덕
순직자 명단
강명수 강덕수 김윤식 김동한 김사룡 김을룡 김자현 김창식
김정기 김정의 김정태 김태진 민재홍 박종호 박기화 박노익
손병룡 손효원 손일성 이윤재 이양배 이강백 정한연 최명록
3. 殉 國 慰 靈 碑
해방 이후 우리 겨레와 이 고장을 수호하다가 많은 청년이 붉은 도배들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 또는 순국하였으니 특히 六二五를 전후한 어지러운 시기에이 고장에서 벌어진 각 전투 중 1951년 1월13일부터 15일까지의 동로로 남하를 기도하든 적 사단 규모의 대병력과 대적하여 우리 젊은이들은 군과 경찰을 도와 일기당천의 용맹으로 크게 용전분투하여 대성과를 거두었으니 이 어찌 장하지 않으리. 황정산등을 전투장으로 이 고장을 간성으로 지켜주시다가 순국하신 거룩한 넋이시여 고히 잠드시라.
大韓靑年團 東魯面團 戰歿勇士 名單
姜明秀 姜德秀 金潤植 金東漢 金事龍 金泰鎭 金子鉉 金昌植 金乙龍 閔在洪 朴宗浩 朴基華 朴魯益
孫逸晟 孫秉龍 孫斅遠 李潤宰 李陽培 李康伯 鄭漢連 崔命祿 ※ 병(秉) 효(斅) 강(康) 록(祿)
後援 靑友會 聞慶郡支部 會長 白頭山 副會長 權順吉, 南東喆
戰傷者 李昇雨 金重培 張大福 金正兌 金正義 金正基
殉國碑 및 戰勝碑 建立推進委員會
當時 大韓靑年團長 推進委員長 李 圭 燮 副會長 趙建奎 當時特攻隊長 林煥琦
警察署長 崔錫采 支署主任 姜聖奎 支署巡警 趙相五
4. 赤城里戰鬪 戰 勝 碑
조국수호와 자유를 위하여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니 용전의 부대는 특별공격대대로서(미제十군단 배속 대대장 裵東傑소령 중대장 孫章來대위 동 許泰運대위 소대장 鄭昶和소위 李相現소위등) 一九五一년 정월 十三일부터 十五일까지 북괴제十사단을 격파하여 확인 사살 1057명, 적 부상 900명, 무기 노획 다수의 전과를 올렸도다.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용감히 싸운 이들 부대 전원의 공훈과 적성리 주민의 일치단결된 애국충정은 이 고장 강산과 더불어 청사에 길이 빛나리. ※ 걸(傑), 창(昶)
殉國碑 및 戰勝碑 建立推進委員會 顧問 金鐘鎬 (在京聞慶君民會長)
委員長 李圭燮(靑友會面會長)
顧問 李東寧(民議院) 金錫柱(警察署長) 蔡元植(辯護士)
李昌宰(東魯面長) 李泳和(郡守) 金起泰(東魯支署長)
西紀 壹仟九百七拾壹年 四月 日 立
6. 건 립 기(5번 건립기)
1951년 1월13일부터 1월15일까지 동로면 적성리 전투에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 제10사단 1개 연대 병력 3,000명을 상대로 미 제10군단 예하 한국군 특수임무대대(대대장 소령 배동걸) 병력 300명과 대한청년단 동로면 특공대원 42명 및 경찰관 16명등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치열한 전추 끝에 적 1개 연대 병력을 섬멸시킨 전사에 길이 빛나는 대 승리를 기념하고 나라와 고향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하신 순국영령과 참전용사들의 애국충정의 뜻을 기리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적성리 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를 시민의 뜻을 모아 세우다.
2001년 6월 25일
문 경 시 장
※ 조형물제작 : 옴니 스페이스환경조형연구소장 작가 오용환
※ 2번, 6번 건립기는 중복(주체:동로면민/주체: 문경시장)으로 세웠다.
義士 李東下先生 記念碑
1856년 10월 4일 동로면 명전리(鳴田里)에서 태어나니 본 이름은 정래(淨來)요 字는 경천(景天)이라. 代代로 명망 높은 인물을 배출한 廣州이씨 廣城君 극감(克堪)의 후손이요. 선비인 秉一의 아들로서 뒤에 三從叔 秉夔에게 出系하였다. 총명하고 곧은 성품과 자질을 어릴 때부터 출중하여 모든 이의 촉망을 받았으며 글을 익혀 벼슬에 나아가니 참봉이라. 때에 간악한 무리가 국정을 농단하여 도적에게 나라를 팔고 벼슬에 눈이 멀었던 세월에, 초야에서 떨쳐 일어나 적과 싸우다가 나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雲岡이강년計義鎭의 참모장이요. 軍資長이며 항일결사 民團組合의 創始者인 선생이시다.
선비의 한 조각 붉은 마음이 기우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붓 대신 칼을 잡아 의로운 깃발을 높이 세우니, 때는 1896년 1월 聾巖장터였다. 그날부터 12년을 강원 충청 경상 경기의 20개 군 산하를 누비면서 무수한 적의 무리를 무찔렀으니 운강의진 빛나는 전과들은 선생의 주도면밀한 설복비계에 있었다. 1908년 6월4일은 동지를 규합하여 만주 땅 간도로 망명 그 곳에서 항일 武裝抗爭을 하다가 군자금 조성의 사명을 띠고 1914년 9월에 고향으로 잠입, 과거의 의병전우와 동지를 모아 민단조합을 창시하고 활약타가 1916년 일경에게 잡히어 청주감옥에 수감당하니 뼈가 부서지는 고문에도 오직 한마디 “백성 된 도리를 했다“는 대답이 전부였으니,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으로 항거한지 17일 만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므로 적들은 부득이 석방하였다. 들것에 실려 고향으로 오는 길에 옛집을 바라보는 소구리재에서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한 한을 안은 채 죽으니 마침내 조국은 광복을 찾았내. 죽고 삶을 오직 나라위해 받쳤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부끄럼 없도다.
이 한 조각 돌이야 비바람에 깍일지라도 임의 장하신 자취는 영원하리라.
서기 1989년 월 일
※ 종숙(從叔: 아버지의 사촌형제 : 堂叔), 삼종숙(아버지의 팔촌 형제 : 三堂叔),
병기(秉夔), 출계(出系 : 양자로 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
※ 위치 : 적성리 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 공원 오른쪽
적성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 참배 후.... 14 : 31 : 59
적성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에서 바라 본 천주산의 위용.....
적성전투 전승비 및 순국 위령비 공원의 위치는 "동로국궁장" 옆.....
수고하셨습니다.... 14 : 37 : 25
첫댓글 흐린 날씨에 차갓재를 넘기 위해 먼저 안생달에 주차 후 동로택시를 타고, 벌재를 넘어 명전 1리가는(2차선) 도중에 하차하여, 차갓재(1차선)길 표시있는 왼쪽 다리를 건너 천천히 오르면 주택 4집을 지나서, 철탑 고압선이 지나는 곳은 나무를 깍아서 차갓재가 멀리 보인다. 그늘 속의 길에는 붉은 띠에 산불조심(세상에 빛을 이웃에 사랑을) 리본이 매어있어 길은 무난했다. 고개까지는 완만하게 오르고, 고개마루에 차갓재 표시석은 없고 산들모임에서 세운 백두대간 남한중간지점석이 있다. 재에서 왼쪽은 황정산, 오른쪽은 대미산가는 대간 길이다. 생달쪽은 경사가 있어도 내리막이라 쉽게 내려왔다. 귀가길에 연주패옥과 적성리전승비를 둘러보고 알찬 하루를 보내어 함께한 친구들 감사합니다.
큰 일을 하셨구료.漢江水系(鳴田里)에서 출발하여 白頭大幹을 넘어 洛東江水系(生達里)에 도착하는 옛길은 십수년전만 해도 동로지방인들이 忠淸道로 가는 쉬운 길이였는데,벌재로 도로가 개설되고부턴 잊혀진 길이되어 옛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는 이 떄에 그 길을 踏査했으니 정말 수고했오.지금까지 山岳人들은 늘재~靑華산 가는 길에 있는 '정국기원단'을 大幹의 中間地點으로 알고 있었는데 몇 해전에 山林廳에서 南韓區間 中間地點이 '차갓재'부근이라고 宣言하여 이곳이 각광을 받고 있다.상세한 조사는 이 뿐만이 아니라 '연주패옥','동로전승지기념탑'등 走馬看山격으로 지나칠 소중한 近代史의 흔적들도 자세한 조사와 소개에 敬意를 표합니다.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