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신명기 12:5절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11절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21절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신명기 14:23~24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신명기 16:2절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6절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26: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골라 주신 곳”이란 표현이 구약에 여러 번 나옵니다. 너무 많이 나오는 말(특히 신명기에)이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말씀입니다. 꼭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아무개가 어느 장소에 자기의 이름을 두다”라는 표현이 우리말에는 없습니다. ‘이름이 나다’라고 하면 그것은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름을 날리다’라고 하면 명성을 얻을 것을 일컬음입니다. ‘이름을 남기다’라는 것은 이름이 후세까지 전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붙다’라고 하면 그것은 예를 들어, 합격자 명단에 들어간 것, 혹은 대자보에 이름이 나붙는 것을 말합니다. ‘이름을 짓다’라는 것은 이름을 붙이거나 만드는 것입니다. ‘이름을 팔다’라는 것은 이름이나 명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이름을 두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산 고적을 찾다 보면 그곳을 방문했던 이들이 커다란 바위 위에 자기들의 이름을 어지럽게 남긴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어떤 곳에 ‘두신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어떤 곳에 자기의 이름을 새겨 두거나 이름을 써 두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름을 두다’라는 히브리어 ‘르샤켄 슈모 삼’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이름을 거기에 살게 하다’입니다. 표현을 달리하여 ‘라숨 엣슈모 샴 르쉬크노’라고 하면 ‘그 이름이 거기에 살도록 그의 이름을 그곳에 두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장소를 택하시고 거기에 그의 이름을 거주하게 하신다는 생각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이름’은 거의 같은 기능으로 쓰이는 예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은 곧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의 현존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곧 하나님 자기의 이름이 거기서 거주하도록 택하신 곳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몸소 거기 살고 계시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을 뜻합니다. 우리 쪽에서 하나님의 두실 곳은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예배처소’를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에는 하나님이 자기 이름과 함께 동반되는 어떤 요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이름은 공허한 명칭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 이름이 머무르는 곳에는 무엇인가 실제적인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어느 개인이나 민족에게 두실 경우, 하나님은 그곳에 자기 자신을 제공하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심으로써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을 그들의 것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자신의 이름을 자기 아내에게 부여하는 남편은 그녀에게 자기 자신까지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도 여호와의 이름과 여호와 자신은 서로 교차하면서 사용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일은 결코 작은 특권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특권 중에서 최고의 특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과 혼인한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바쳐진 제단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창세기 28:21절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말했던 여호수아와 같은 자들입니다.
창세기 28:21절에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고 고백한 야곱처럼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요, 여호와께서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 15)으로 불리시듯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 말하자면 어떤 연합 혹은 암묵적인 계약이나 관계 등이 맺어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마치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요소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혼인하면, 그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새롭게 만드시며,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을 섬기는 데 구별되게 하시는데, 바로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여러분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실 때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성도를 가려 뽑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루살렘에 건설된 성전에 대한 언급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다른 곳보다도 그곳을 자기 이름을 두실 곳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당신을 교회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는 두 곳입니다. 이사야 57:15절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즉 ①가장 높은 하늘, 그리고 ②가장 겸손해진 미음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중심 자리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도 거하시며 어느 곳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지만 이 두 장소에서 하나님은 특별한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그 특별한 임재란 은혜와 위로가 풍성한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57:15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는 가리시지만, 이러한 자들에게 그 자신과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시고 그들의 마음에 기쁨과 위로가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란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택하신 곳’, ‘하나님을 섬기라고 택하신 곳’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