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해(百里奚)는 춘추시대 우(虞)나라 사람으로서 자(字)를 정백(井伯)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두(杜)씨와 혼인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능히 천하를 다스릴 만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집이 늘 가난했다.
그러던 중 어느 때 그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에게 큰 뜻이 있는 줄은 나도 압니다. 또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능력도 있으니 어서 집을 떠나세요. 집안은 제가 어떻게든 건사해 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축이라고는 닭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는데 두씨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닭을 잡아 마지막 남은 좁쌀로 밥을 지어 떠나는 남편을 대접했다. 이때 땔나무조차 없어서 문빗장을 뽑아 요리를 해야 했다.
눈물로 지은 밥을 배부르게 먹은 다음 백리해는 아내와 작별하였다.
두씨가 아들을 안고 남편에게 말했다.
“후일 귀하게 되셨을 때 저를 잊지 마셔요.”
집을 떠난 백리해는 먼저 제나라 양공(襄公)을 찾아갔다. 그러나 양공이 그를 등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진 것 없는 그는 문전걸식(門前乞食)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백리해가 집을 떠난 지 어언 10년이 흘러 그의 나이도 마흔이 되었다. 그 무렵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걸식하는 백리해를 보고는, “당신은 걸인이 아니오.” 하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의 이름은 건숙(蹇叔)이었다. 건숙이 백리해에게 이야기를 시켜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건숙이 탄식하였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당신이 이렇게도 곤궁하니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인가!” 뜻이 통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형제의 의를 맺었는데 건숙이 1년 연상이어서 형이 되었다.
가난하기는 건숙 또한 백리해보다 별로 나을게 없었으므로 백리해는 소를 먹여 반찬값을 보탰다. 그러는 동안 그들이 살고 있는 제나라에서는 공자(公子) 무지(無知)가 양공을 죽이고 새 임금이 되어 널리 인재를 구하였다. 백리해가 그에 응하려 하자 건숙이 그를 말렸다.
“무지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백리해는 어쩔 수 없이 벼슬살기를 포기하고 주저앉고 말았는데 과연 얼마 안 있어 무지가 망하였다.
다시 얼마 뒤에 백리해는 주왕(周王)의 아들 퇴(頹)가 소를 좋아하여 소를 치는 자를 우대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백리해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 전숙과 작별한 다음 낙양(洛陽)으로 퇴를 찾아갔다.
백리해가 퇴를 만나 소 기르는 법을 말하자 퇴는 그를 가신으로 삼고 싶어 하였다. 그때 마침 건숙도 낙양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함께 퇴를 만나게 되었는데,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 건숙이 또다시 백리해를 제지하였다.
“퇴는 뜻은 크나 재주가 없소. 또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니 반드시 실패할거요.”
이래서 이번에도 퇴의 가신이 되기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퇴가 망하였다.
그는 이제 아내나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건숙과 함께 고국인 우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향에 가보니 아내 두씨와 두 아들은 가난에 시달리던 끝에 어디론지 떠나버리고 없었다. 백리해는 처자도 건사하지 못하고 출세도 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비감에 젖었다.
우 나라에는 건숙의 옛 친구인 궁지기(宮之奇)가 살고 있었다. 건숙이 궁지기를 만나 백리해의 재능을 말하자 그는 우공에게 백리해를 천거하였고, 마침내 백리해는 처음으로 중대부(中大夫)가 되어 벼슬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건숙이 또다시 백리해를 제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우공을 보니 역시 유망한 주인은 되지 못하오.”
두 번이나 건숙의 충고를 받아들인 백리해였지만 이때만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도 아시다시피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려 왔소. 그래서 물고기가 잠시 접시의 물에나마 몸을 적시듯이 우공에게 기대려는 것이니 너무 탓하지 마오.”
“가난 때문에 벼슬을 살겠다는데 내가 말릴 수는 없소. 나는 이곳을 떠나고자 하니 다른 날 나를 만나려면 송나라 명록촌(鳴鹿村)으로 오시도록 하오.”
건숙과 백리해는 곧 헤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공이 나라를 잃음으로써 건숙의 예측은 또 한 번 적중하였다. 그 뒤 백리해는 진나라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했는데 미관말직이었다. 그러던 중 진(晉)나라의 공주 백희(伯姬)가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백희는 출가하면서 자기와 함께 시집의 나라에서 살게 될 관원을 뽑게 되었다. 진나라에서는 백희의 추종관으로 백리해를 선택하였다. 백리해는 처음에는 백희를 따라 진나라를 향해 떠났지만 도중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큰 재주를 가지고도 남의 추종관 노릇이나 하게 되다니 치욕이 막심하도다!” 그는 곧 도망쳐 건숙이 있는 송나라로 향했지만 도중에 초나라를 지나다가 백성들에게 첩자로 오인되어 붙들렸다. 백리해가 해명하자 그들이 물었다. “너는 무엇을 잘하느냐?” “소를 잘 치오.”
그는 곧 소치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인도되었다. 과연 그가 치는 소는 매일매일 살이 올랐다. 소 주인이 이 사실을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은 백리해를 불러 소치는 법을 물었다. 백리해는 청산유수로 대답하였고, 초왕은 백리해를 가상하게 여겨 그를 궁궐의 말지기에 임명하였다.
한편 진나라 목공은 백희의 일행 명단에 있는 백리해가 보이지 않자 이를 괴이하게 여겨 공자 칩(公子蟄)에게 물어보았다.
칩이 아뢰었다.
“도중에 도망 쳤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가 있으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일세의 현인입니다.”
“그를 얻어 쓸 방법이 없겠는가?”
“그의 처자가 지금 초나라에 있다고 하니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면 될 것입니다.”
목공이 초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백리해가 초왕의 말지기로 일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목공은 공손지(公孫枝)에게 물었다.
“백리해가 초왕의 말지기로 일하고 있는데 폐백을 보내어 청하면 초나라에서 허락하겠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초왕이 그를 말지기로 쓰는 것은 그에게 경세(經世)의 대재(大才)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군께서 폐백을 보내시면 초왕은 그의 유덕함을 알게 마련인데 그를 주군께 보낼 리가 있겠습니까? 혼인행차 중에 도망한 자라고 하면서 그를 보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말이 옳소.”
목공은 곧 사신을 시켜 남방에서 귀히 여기는 양가죽 다섯 장을 초왕에게 선물로 보내고 말하였다.
“백리해란 자가 도망하여 귀국에 있사온데 그를 벌주고자 하오니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초왕은 말지기 한 사람 때문에 진나라와의 의를 상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백리해를 수레에 가두어 진나라 사신에게 넘겼는데, 이 때문에 백리해는 훗날 양가죽 다섯 장에 초대된 인물이라는 뜻에서 ‘오고대부(五羖大夫)’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백리해가 잡혀갈 때 초나라 사람들은 진나라로 가면 그가 처형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울며 작별하였다. 그러나 백리해는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진군은 뜻이 큰 분이라고 한다. 그런 분이 도망간 종에 불과한 나를 초나라까지 사람을 보내어 잡아가겠는가? 그분은 나를 등용하시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길에는 내 앞에 부귀가 기다린다. 무엇 때문에 울겠는가?”
백리해가 진나라 국경에 도착하자 목공은 교외까지 사신을 보내어 맞았다.
목공이 먼저 물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소?”
“칠십이옵니다.”
목공이 탄식하였다.
“아깝구려. 너무 늙었소그려!”
그러자 백리해가 말하였다.
“신을 시켜 나는 새를 잡거나 달리는 짐승을 얽으라 하신다면 물론 신은 늙었습니다. 그러나 신으로 하여금 나라 일을 꾀하라고 하신다면 오히려 젊다고 해야 합니다. 옛날 태공망 여상은 나이 팔십에 문왕을 따라가 마침내 주나라를 일으켰습니다. 신은 여상에 비하면 오히려 십년이나 젊습니다.”
목공이 그 뜻을 장하게 여겨 자세를 고쳐 잡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계책을 물었는데 그 대답이 분명하고 깊었다. 목공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정백을 얻은 것은 제 환공이 중부를 얻은 것과 같도다!” 하고 찬탄하였다.
이로부터 목공은 사흘 동안 백리해와 국가의 대소사에 대해 의견을 들었는데 그 뜻이 모두 일치하였으므로 목공은 그를 상경(上卿)으로 삼아 국사를 맡기려 하였다.
백리해가 사양하며 말하였다.
“신의 재주는 건숙만 못합니다. 그는 신에 비해 열배의 재주를 가졌으니 주공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시려면 그를 부르십시오. 신은 그를 보좌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나는 그대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건숙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소.”
“그의 유능함을 아는 사람은 오직 신이 있을 뿐입니다. 어찌 세상 사람들이 그의 지혜로움을 알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제나라에서 무지를 섬기려 할 때 건숙이 만류하여 나라를 떠난 적이 있는데 과연 머지않아 무지는 그의 예측대로 멸망하였습니다. 또 신이 주나라 왕자 퇴를 섬기려 할 때도 건숙은 신을 만류하였고 퇴 또한 그의 예측대로 머지않아 멸망하였습니다. 신이 우공을 섬기려 할 때에도 건숙은 저를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가난에 지친 나머지 그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우공에게 벼슬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공도 또한 그의 예측대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신은 건숙의 권고를 두 번 들어 환난을 면했고, 한 번 듣지 않아 죽을 뻔 했으니 그가 저보다 월등 지혜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송나라 명록촌에 있을 것이니 속히 부르십시오.”
목공은 공자 칩을 시켜 상인으로 가장하여 건숙을 찾아가게 하였다. 공자 칩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건숙을 찾아가니 건숙은 아들과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건숙은 목공의 청을 거절하였다.
“만일 진군께서 현자를 쓰고자 하신다면 정백 한 사람이면 족하오.”
공자 칩이 말하였다.
“만약 선생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정백 또한 혼자서는 일을 맡지 앓겠다고 하시니 이것이 큰일입니다.”
건숙은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이윽고 대답하였다.
“정백은 큰 재주를 품고서도 써본 일이 없소. 그러다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어진 임금을 만났으니 내가 부득불 그를 도와주지 않을 수 없소. 나는 한 번 갔다가 곧 돌아와 밭갈이를 하며 살도록 하겠소.”
건숙은 칩을 따라 진나라에 가서 목공을 만났다. 목공은 건숙과도 여러 날 정사를 토론 한 끝에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두 노인은 참으로 백성들의 어른이로다!”
이때의 진나라의 재상은 공손지로서, 그는 말을 먹이는 백리해를 알아보고 인재라며 목공에게 추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목공이 백리해와 건숙을 만나보고 기뻐하는 것을 보더니 축하의 표시로 기러기 한 마리를 가져와 목공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임금께서 좋은 재상감을 얻었으므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공손지는 재상 자리를 백리해에게 양보하겠다며 사직하여 말하였다.
“우리 진나라는 편벽한 곳에 있는데다가 백성들은 어리석고 무지 합니다. 그동안에는 마땅한 인재가 없어 제가 백관의 우두머리에 있었지만 이제 두 노인이 왔으므로 제가 사임하는 것이 옳습니다.”
목공은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에 봉하여 국사를 총괄케 하였고, 공손지를 그 아래의 직위에 임명하였다. 그 뒤로 백리해가 진나라에 끼친 공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백리해는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겸허하고 질박한 마음가짐으로 백성들을 잘 보호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한편 백리해를 떠나보낸 그의 아내 두씨는 길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흉년이 들어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중 진나라에 들어가 빨래를 하며 연명하였다. 두씨는 자기 남편이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편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궁에서 세탁부를 구한다는 것을 알고 자원하여 궁에 들어갔다. 비록 몸은 늙었으나 그녀는 부지런히 일하여 궁중 사람들로부터 큰 신임을 얻었다.
어느 날 백리해가 궁내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는 당상에 앉아 당하에서 악인(樂人)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때 두씨가 궁중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음악을 좀 아는데 저곳으로 나아가 흥을 돋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인이 그녀를 인도하자 악사장이 물었다.
“노파는 어떤 음악을 배웠는가?”
“거문고도 타고 노래도 부릅니다.”
악사장이 한 곡을 청하였다. 그러자 두씨가 거문고를 탄주하였는데 그 소리가 자못 청아하였다. 악사들이 한결같이 탄복하며 말하였다.
“우리의 재주로는 노파에 미치지 못합니다.”
악사들은 다투어 노래도 한번 불러 보라고 권하였다. 그러자 두씨가 말하였다.
“저는 오랫동안 노래를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상에 오르면 혹 부를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재상께 말씀드려서 당상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악사장이 노파의 사유를 백리해에게 말하자 백리해가 허락하였다. 이에 두씨는 당의 왼편에 올라가 고개를 숙이고 서서 음성을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백리해 오양피(五羊皮)여!
서로 작별할 때 암탉을 삶고 양념을 찧고 문지방을 때어 밥을 끓였었소.
오늘날 부귀공명을 얻더니 나를 잊었소그려.
백리해 오양피여!
아버지는 고량진미를 먹지만 아들은 굶주리고,
지아비는 비단을 덮지만 지어미는 빨래를 하는가!
슬프다, 부귀로 나를 잊었는가?
백리해 오양피여!
당신은 가고 나는 울었소. 오늘날 당신은 앉았고 나는 섰으니,
슬프다, 부귀로 나를 잊었는가?
백리해가 노래를 뜯고 깜짝 놀라 살펴보니 아내가 분명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였고, 백리해는 곧 사람을 시켜 아들을 불러들였다. 실로 40년 만의 만남이었다.
목공은 백리해가 가족과 만났다는 것을 알고 좁쌀 천 종(鐘)과 금백 한 수레를 선물로 보내는 한편 백리해의 아들 백리시(百里視)를 장군에 임명하였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