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대한 헌시
이삭빛
생의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가라앉고
고요히 하루의 빗장이 걸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저무는 슬픔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라는 세월과 사랑은 이렇게 이별하면서
비로소 깊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무가 겨울 숲을 살리기 위하여
제 몸의 잎사귀들을 미련 없이 떨구어내듯
사랑은 아껴두었다가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숨결까지 탈탈 털어 그대 발치에 쏟고도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강물 위에 그대 이름 적어 봅니다
내가 야위어야 그대라는 달이 가슴에 크게 차오르고
내가 어두워져야 당신이라는 별이 빛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흐르는 물결에 나를 맡기겠습니다
집착의 밧줄을 놓는 아픔이 칼날처럼 날카로워도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살리는 마지막 축복이라면
나는 웃으며 이 생의 거울을 덮겠습니다
보내는 것은 끝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기적을 꽃피우는 정성입니다
나라는 세월을 다 건너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나의 저묾은 소멸이 아니라 은총의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 밤 별들이 낮은 강물에 내려와 몸을 씻고 있습니다
나를 지워 당신을 살게 하는 이 고요가
얼어붙은 세상의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할 것입니다
[시평] 비움으로 빚어낸 인연, 저무는 빛의 서사
시평 윤정시인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무는 것 앞에서 슬픔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여기, 저무는 노을을 보며 소멸이 아닌 ‘깊어짐’을 노래하고, 이별의 문턱에서 ‘축복’을 건네는 한 시인의 숭고한 목소리가 있다.
이삭빛 시인의 <세월에 대한 헌시>는 나를 지워 당신을 살리는 ‘비움의 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점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죽음마저 사랑의 한 과정으로 껴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영롱한 헌신으로 치환해낸 이 시는 우리 시대에 잊혀간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첫째, 이 시는 삶의 황혼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고결한 정신적 높이를 보여준다.
시인은 생의 저녁에 들려오는 ‘빗장 소리’를 종말의 신호가 아닌, 사랑이 성숙해지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수용한다.
'나라는 세월과 사랑은 이렇게 이별하면서 비로소 깊어지는 것'
이라는 통찰은, 자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타자라는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인연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는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명언처럼, 개인의 세월을 넘어 영원이라는 방향을 향해가는 사랑의 의지를 보여준다.
둘째, 시 속에서 드러나는 ‘비움의 미학’은 종교적 숭고함에 닿아 있다. 나무가 숲을 위해 잎을 떨구듯, 자신의 마지막 숨결까지 탈탈 털어 내어주는 사랑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현대인의 사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을 희생하여 인을 이루듯, 시인은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가난한 마음'을 통해 사랑의 절대 가치를 증명한다. 나를 지워 당신을 살리는 이 역설적 헌신은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드리는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다.
셋째, 화자가 선택한 ‘강물’과 ‘달’의 비유는 자아 소멸을 통한 타자의 완성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내가 야위어야 그대라는 달이 가슴에 크게 차오른다.'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이다. 이는 마치 ‘촛불이 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것’과 같은 자기부정의 미학이다. 내가 어두워져야 상대가 별처럼 빛날 수 있다는 믿음은, 소유욕이라는 집착의 칼날을 견디고 일궈낸 영혼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넷째, 이별을 ‘당신이라는 기적을 꽃피우는 정성’으로 정의한 대목은 슬픔을 은총으로 치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시인은 보내는 행위를 단절이 아닌, 상대를 온전케 하는 마지막 축복으로 바라본다. 이는 '이별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방법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저무는 것이 소멸이 아닌 은총이 될 때, 인간의 유한한 삶은 비로소 인연이라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다섯째, 결말부에서 별들이 낮은 강물에 내려와 몸을 씻는 장면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사랑의 정화 의식을 상징이다. '나를 지워 당신을 살게 하는 고요'는 얼어붙은 세상의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강력한 생명력의 원천이다.. 이 시는 비움이 곧 채움이며, 저묾이 곧 새로운 빛의 시작임을 일깨워준다. 시인의 고결한 기도는 상처받은 이들의 가슴에 영롱한 위로의 별빛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