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중에 오래 오래 살면서 그 귀한 존재감을 떨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조상님들은 10가지 대상을 선별하여 존귀함의 표상으로 삼으셨다.
그 열 가지는 영광과 귀함의 대명사였다.
그게 바로 '십장생'이다.
생자필멸이 세상의 이치다.
예외는 없었다.
특히 짧은 생을 살다 떠나는 인간의 유한성이 못내 허허롭고 슬펐다.
그래서 자고로 선현들은 그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마음 속으로 불로장생의 대상들을 귀히 여기셨다.
십장생은 그런 비원이 담긴 고귀함의 표상이었다.
해, 구름, 산, 학, 사슴, 소나무, 바위, 물, 불로초, 거북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영원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장수에 대한 희구를 넘어 부러움과 예찬으로 승화될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애착했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런 희원을 편편이 품고 있었다.
대한민국 울트라 레이스의 최고 명품 대회인 '청남대 100K 울트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청호반'을 한바퀴 휘감아 도는 맛은 과연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림같은 호숫가의 한적함과 몽환적인 아름다움.
팍팍한 '피반령' 고갯길의 고단함.
70-80K 에 찾아오는 극한의 고통과 힘겨움.
사람이 희박한 시골동네와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주는 안온함까지 그 대회는 태생적으로 우월함을 잉태하고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고통, 환희, 감동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대회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청남대 울트라 100K'가 최고의 명품대회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십장생 마케팅' 때문이었다.
이 대회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대개 10년 동안은 중단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완주기념 선물로 제공되는 '십장생'은 10가지가 순차적으로 이어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어린애들 이빨처럼 군데군데 빠져 있다면 십장생의 의미와 가치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長生'은 단어 그대로 지속성이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매년 순금 1돈짜리 십장생을 100K 완주 선물로 받았다.
순금 1돈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순금 자체에 대한 욕심보다는 10년 간 십장생을 차근차근 엮어보고 싶다는 도전욕구가 꿈틀거렸다.
실행해 보고 싶었다.
결단이 섰다면 우직한 실천뿐이었다.
절대로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첫대회인 2003년, 100K를 완주하고 나서 순금 1돈짜리 '해(1)'를 받았다.
2004년도엔 '산(2)'을, 2005년도엔 '소나무(3)'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해마다 구름(4), 학(5), 사슴(6), 물(7), 거북이(8), 바위(9)를 완주기념 선물로 받았다.
드디어 2012년 10회 때, 마지막인 '불로초(10)'를 받아서 '청남대 울트라 십장생'을 완성했다.
행복했다.
감격스러웠다.
남들에겐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동안의 숱한 훈련, 고통, 환희, 땀으로 얼룩진 감동의 결정체였다.
순금으로 만든 십장생 심볼을 완주자들이 공짜로 받는 건 아니었다.
대회 참가비 5만원과 십장생 제작비용을 주자가 별도로 부담했다.
매해 금 시세에 맞는 소정금액을 참가자들이 조직위에 납부했다.
10년 전엔 한 돈에 5-6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근자엔 23만원을 호가했다.
그래도 기분좋게 값을 지불했다.
돈으로 울트라 100K의 의미와 가치를 살 순 없었다.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의 결실이었다.
때로는 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온몸으로 써내려갔던 10년 간의 육필 원고들이 내 혈관을 타고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그 진솔한 서사들을 나만의 서고(書庫)에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쌓아두고 있었다.
기껍고 흔쾌한 마음으로 도전했으며 순간 순간 채록했던 감흥의 편린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다.
10년 만에 완성한 십장생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서사였고 소재였다.
그리고 내 인생의 포트폴리오에서 또 한번의 획을 그었던 강력한 임팩트였다.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고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 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땀과 고통의 질곡들이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세월 만큼의 시간 동안 점철된 다음에야 비로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의미있는 인생의 강줄기였다.
나에겐 그랬다.
사색과 고행을 통해 내 삶의 좌표들을 명징하게 찾고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한번 결단한 삶의 좌표에 대해선 흔들림 없이 반듯한 발자국을 찍어가고 싶었다.
육신의 다양한 변주와 옹골진 도전도, 그에 따른 다채로운 아웃풋도 생의 요체는 아닐 터였다.
일관된 영혼과 하심.
이것이 내 삶에 온전하게 스며들어 죽는 날까지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되기를 기도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여로를 마치고 귀천하는 날까지 미력하지만 더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엮어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런 마음의 수행과 영혼의 다짐.
그 훈련의 일환이 바로 '울트라 레이스'였다.
생명과 건강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트레일에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매일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이 내 삶의 진정한 '새 날'이며 동시에 '마지막 날'임을 고백하면서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힘찬 하루를 시작해 보자.
브라보.
2012년 4월 19일.
새벽에 큐티를 마치고,
완성된 십장생을 생각하며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