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동시집-04
씀쓰름새가 사는 마을
송창우 저 | 브로콜리숲 | 2024년 04월 27일
책소개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그야말로 독자의 몫!
그림을 넣지 않음으로써 오롯이 동시에 마음을 모을 수 있게 한
‘그림 없는 동시집’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동시 먹는 달팽이』 제1회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창우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
오랜 머뭇거림의 시간과 유순한 말들이
드디어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송창우의 시는 달팽이가 오랫동안 메마름을 견뎌낸 뒤
맞이한 이슬 한 톨에 고개를 내밀 듯 그렇게 조심스럽다.
느린 리듬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뜨끔한 지점에
도달하게 돼 아린 마음이 금세 번진다.
책의 맨 앞자리 「씁쓰름새가 사는 마을」에서 시작한 여정은
책의 말미에 자리한 산문 「바비다구기다 나라 버비다도니다 나라」로 귀결되는데
여린 감성 뒤에 숨겨진 단단함을 만져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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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창우
《동시 먹는 달팽이》 제1회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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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털
송창우
낙엽 뒹구는 마당
백구가 털갈이한다
감나무 아래
바람에 날리는 털 털 털......
작은 새 한 마리
털
털
털
바삐 물어간다
하얀 솜이불에
올겨울 그 집,
참 포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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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창우
별님 바라보며
한 글자
달님 바라보며
한 글자
낮에 놀다간 찬바람에
한 글자
새벽이슬에 눈물 바람으로
또 한 글자
시들시들 떨어지면서도
점자처럼 꼭꼭 눌러쓴
꽃 속에 여문 까만
꽃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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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마리
송창우
꽃마리는 줄기 하나에
꽃을 줄줄이 말아 놓았어요
눈물 한 방울에
꽃 한 송이 내놓고
웃음 한 조각에
또 한 송이 내놓고
줄기 하나에
딱 한 송이 매달린
참꽃마리는
한 송이 꽃으로
눈물도 웃음도
모두 대신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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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송창우
굴뚝은
겨울을 기다렸어요
하얀 연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기를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외로운 날들을
기다렸지요
이제는
춥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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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송창우
물을 많이 받아놓으면 발전소다
태양을 뜨겁게 받으면 발전소다
바람을 세게 받으면 발전소다
상처를 많이 받으면 발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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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송창우
비가 오면
네 손을 잡아주마
바람이 불어도
놓지 않으마
눈이 와도
네 손을 잡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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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송창우
푸른부전나비가
노란 괭이밥꽃에 앉는다
작고 여윈
마른 풀잎에 앉다가
종지나물에 앉다가
돌멩이 위에 앉는다
내가 늘 밟고 다니는 것에
입맞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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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하느님
송창우
꽃 필 때 보세요
여기를 보세요
꽃 질 때도 보세요
여기를 보세요
잎 떨어질 때도
여기를 보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살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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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송창우 시인이 책에 남긴 헌사
“꽃잎을
온데간데없이 떠나보낸
꽃과 나무에게
꽃과 나무와
하느님과 짝하며 지내는
온 세상의 꽃풀소에게……”
송창우 시에는 하느님이 많이 등장하신다. 딱히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닌데 하느님을 자주 등장시키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내놓은 송창우의 언어는 유순하다. 유순하므로 쓰러지지 않는다. 바람을 쓰다듬는 풀처럼 바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일어선다. 쉼 없이 흔들리면서 일어선다는 것은 세상에 쉽게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마음 씀이다.
“아침부터 “씁쓰름씁쓰름” 울어대는 씁쓰름새가 있었어. 울어대는 소리조차 씁쓰름이라니……. 마을 사람들은 씁쓰름하게 울어대는 씁쓰름새를 없앨 궁리만 하고 있”는 총을 쏘아대는 어른들과 그 어른들에 덩달아 돌팔매를 던지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허리가 접혀진 마을 할머니”는 바로 현자의 현현일 것이다. “씁쓰름새가 마을에서 떠나면 씁쓰름한 일만 일어날 거야.”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반전. “그날부터 농사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마을을 위해서, 아니 씁쓰름새를 위해서 정성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창우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 『씁쓰름새가 사는 마을』이 바로 이 동시집의 세계이다. 순한 말들이 달팽이 고개 내밀 듯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반전을 거듭, 아프고 아리고 또한 뜨끔하기도 한 마을의 삶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편집자 개인의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가네코 미스즈’의 작품들을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든다. 시어가 가닿은 마음에 가보면 엇비슷한 결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울, 님 3개의 부로 나누어진 편집은 하느님이 호명되고 호출되는 이유를 알게 해 줄 것이고 마지막에 자리한 「바비다구기다 나라 버비다도니다 나라」의 해학으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림 없는 동시집을 내는 일로
동시의 자리가 조금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어른의 손에서 아이들의 손으로 전해진다면
아이의 가슴에서 어른들의 가슴으로 이어진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습니다.” - 편집자 주
시인의 말
하느님은 외로웠습니다
할 수 없이
하느님 마음 닮은 친구를 만들었어요
꽃 하느님
풀 하느님
소 하느님
그러고 나서 하느님 모습을 닮은 친구를 만들었지요.
서령이 하느님
재경이 하느님
꽃풀소 하느님……
그래서
룰루랄라 하느님이 되었어요
그래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시는 하느님이 되었지요
우리 서로가 하나 될 때까지,
우리 서로가 하느님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