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뇌물
임헌영
“선물은 바위도 부셔버린다”라고 세르반테스가 익살스럽게 빈정거린 건 어떤 선의라도 뇌물성 낌새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그래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심술이 끈적거린다. 아니, 오히려 내숭 떠는 새침데기를 혐오하며 차라리 진솔해지기를 바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바위처럼 굳은 철석같은 마음도 녹여낼 수 있다는 건 요샛말로 대가성 뇌물인 셈인데, 어디 바위뿐이랴, 다이아몬드도 녹여낼 터이다. 노골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미성微誠’이나 ‘촌지(寸志, 혹은 寸心. 寸意로도 씀)’란 말 자체도 어찌 보면 이런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수사법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어쩌랴,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감쪽같이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는 ‘촌심’으로 오묘한 심정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선물에 웃고 울며, 쇠붙이 마음을 녹이기도 하지만, 용광로 같은 뜨거운 쇳물 사랑조차도 선물 한번 잘못하여 쇄빙선碎氷船으로도 돌파할 수 없는 빙하처럼 얼어붙게 만드는 요지경 세태를.
얼마나 세상이 각박해졌으면 ‘선물’이란 어휘풀이조차도 실속 있게 변하겠는가. 한글학회 『큰 사전』은 “남에게 선사로 주는 물건”(이 한심한 풀이라니! 그래서 ‘선사’를 찾아보면 ‘남에게 선물을 줌’이라 하니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인가)이라던 게, 국어국문학회 감수 『우리말 대사전』(‘큰’ 대신 ‘대’란 한자로 오히려 퇴보. 큰 거 좋아하는 데서는 똑같다)에서는 “남에게 물품을 선사함, 또는 그 물품”이라 하여 뭔가 마뜩찮은 풀이만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이렇게밖에 풀이 못 하나 아쉬운 판인데, 연세대 언어정보개발연구원 『한국어사전』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려고, 또는 축하하거나 기념하느라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물건”이라고 좀 구체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명언 그대로 그 목적이 명시되어 있어 막연히 내 마음입니다 하고 주거나 받던 인정을 그린 앞의 사전들과는 사뭇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결국 선물은 넓은 의미에서 ‘뇌물’적일 수도 있겠는데 사전들은 ‘뇌물’은 “사사 이익을 얻기 위하여 권력자에게 가만히 주는, 정당하지 못한 돈이나 물건”(『큰 사전』), “사리를 얻기 위하여 남에게 몰래 주는 부정한 물건이나 돈”(『우리말 대사전』), “공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법을 어기고 자기를 이롭게 해주도록 주는 금품”(『한국어사전』)으로 풀이해 점점 둘 사이의 경계가 황성 옛터처럼 허물어져 가도록 유도한다.
딴엔 그렇다. 세계사 최대의 선물은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의 건강을 위해 선사했다는 두 알의 진주를 와인(혹은 식초)에 넣어 녹인 것인데, 액수나 수법의 교묘함은 상대의 건강을 빙자했지만 실은 자신의 왕권 유지를 노린 분명한 뇌물이 아닌가. 더구나 대가성에서 그녀는 버젓이 왕위를 지켰으니 응당 뇌물로 불러 마땅하거늘 굳이 선물로 호칭하는 연유는 엄연한 유부남 유부녀인 이들의 관계를 불륜으로 보지 않고 로맨스로 봐주려는 관용 탓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뇌물죄란 권세가 없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죄명일까.
역사상 두 번째 위대한 선물 목록은 인도 아그라의 황홀한 타지마할 궁이다. 어머니가 힌두교도였으나 자신은 철저한 무슬림이었던 샤 자한 왕은 둘째 왕비 뭄타즈 마할을 너무 사랑하여 14명의 자녀를 출산(이건 정말 생산이다)케 했는데, 39세로 죽자 그녀처럼 아름다운 묘지를 22년이나 걸려 건축한 명물이니 가히 세계적인 선물이라 이를 만하다. 그곳을 찾는 여인들은 다들 뭄타즈 마할을 부러워하지만 무자비한 정복자에다 백성의 고혈을 지나치게 빨아댔던 샤 자한 왕이 결국 아들에게 유폐당해 왕권을 빼앗겼다는 비참한 사실을 상기하면 지나친 선물이 독극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침탈당한 것도 지나친 선물이 한몫하지 않았던가. 청일전쟁에서 다롄大连이 일본에 함락당한 날(1894.11.7)은 바로 서태후의 회갑 잔치로, 그녀는 경전慶典비용으로 천만 냥을 거둬들였는데, 북양北洋해군 1년 예산이 고작 150만 냥이라 포탄이 3발밖에 없어 패전, 일본은 청국 눈치를 안 보고도 한반도를 침탈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런 판이니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목적보다 규모에 있다고 할 밖에 없다. 아무리 선물이라도 지나치면 뇌물로 간주해야 될 판인데, 그건 법률이 정할 문제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귀한 것일수록 좋을 수도 있겠다는 다소 내로남불식 아집도 든다. 마음이 어쩌니 저쩌니 입바른 말을 해대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 타령보다야 보이는 선물이 더 반가운 걸 감히 부인할 용기가 없는 건 미처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내 영혼의 타락 때문일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선물의 차원에서 웃고 우는 인생살이에 자족하는 게 행복일 듯싶다. 공짜를 바라면 이마가 까진다는데, 전혀 까지지 않는 내 이마는 어쩌면 아예 선물 같은 건 바라지 말라는 경고일까, 아니면 평소에 널리 베풀지 못한 내 옹졸함을 탓하는 것일까.
임헌영
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수필집 『눈동자와 입술』, 대담집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대담 유성호), 기행집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yim1941@hanmail.net
출처: 한국산문 7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