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일 성령치유집회
-오늘의 말씀-
예수로 사는 신앙
12/17토(土)롬 6:4-14 / 갈 2:20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십자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십자가 체험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깨달은 우리가 복음을 살려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기독교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에 눈이 떠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용서 받은 것입니다. 복음을 바로 알 때 변화가 됩니다. 복음을 모르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거듭나게 됩니다.
‘내가 죽었다’ 그런데 아직 내게는 버려지지 못한 것들(미움, 시기, 질투, 음란, 정욕 등)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생명이 거듭난 생명입니다. 거듭난 생명은 예수 생명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크다’ 그렇다고 은혜 받기 위해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만큼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에 내 죽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현재 완료형입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못 박히실 때, 예수와 함께 못 박혔습니다. 주님과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예수가 사십니다. 내가 죽는 체험이 있을 때 복음이 살아납니다(예수가 죽을 때 나도 죽었습니다). 주님이 한 것이 내게 미치기 때문에 복음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미 못 박혔지만 나의 옛 사람(세상, 돈,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나의 육신(탐심, 정욕)은 몸이 있는 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육신이 있는 한 시기, 질투, 정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이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 다닙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8-20)
육신(죄)은 그대로 있는데 종노릇하는 나(옛 사람)는 죽었습니다. 이미 죽었지만 관리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세력은 보혈로 이기지 못합니다. 나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나쁜 습관’은 과감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육신이 있는 한 죄의 성분은 계속 있습니다. 예수 성분이 커질 때 변화됩니다. 옛 사람이 죽었다는 확신이 약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나타나는 범위가 커질 때만 승리하게 됩니다.
육신과 세상은 마귀의 무대입니다. 육신의 특성은 교만입니다. 또한 옛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주인 된 삶입니다. 자신이 주인 된 삶은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 6:9).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나의 옛 사람이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할 때 나도 부활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죽을 수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롬 6:8)
예수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예수 생명을 받으면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살아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여긴다’는 것은 ‘계산하다’ ‘간주하다’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죄와 끊어진 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나는 죽었고 내 속에 사시는 분은 예수입니다. 육신이 살아 있어도 옛 사람이 죽으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면 예수가 내 안에서 사십니다. 음란, 혈기는 주님이 주인이 되면 떠나갑니다.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산 자입니다.
-행동요령-
우리의 몸을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의의 무기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몸을 예배, 기도, 전도, 봉사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과 관계된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율법 아래 살지 말고,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이 가장 안정된 삶입니다.
And...
예수로 사는 신앙은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종의 위치에 서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만 주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지켜야 할 자세입니다. 2000년 전 주님이 죽을 때 나(자아)도 죽었고,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죽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을 때 날마다 나를 통해 주님이 사십니다.
자신의 실수를 쿨 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합리화 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실수를 떠넘깁니다. 눈물이 나올 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 때 그 상황을 주님께 고백하면 주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너 이미 죽었잖아, 그러니 이 상황에서 반응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렴, 너의 억울한 상황을 내가 다 알고 있잖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상황을 아신다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울한 상황 속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온전히 죽고, 내려놓기 원하십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아직 세상이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심어 놓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축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비밀, 신앙의 깊이는 절대 고난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잠시 사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삶이 훨씬 값진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축복을 받았다면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재능이 많은 것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재능이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절망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소망의 선물이 기다린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이 땅으로 파송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면 사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자녀가 성공하기를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명을 찾아가는 삶은 열려진 길로 가게 됩니다. 내가 만든 길을 열어가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사명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면 주님으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사는 삶은 날마다 나를 비우고 주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