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이사장 워크샵으로 방문했던 사찰이다.올때마다 원숙함을 느끼는건 뭘까?
경북 포항시 청하면 내연산(內延山),보경사.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불국사의 말사.
조선 후기 산수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던 겸재 정선이 내연산을 그린 3층 폭포인 삼용추(三龍湫)가 있어 유명한 곳이다. 금강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내연산은 100대 명산으로 안 內(들다. 들이다), 끌 延(끌어들이다. 이끌다)의 내연산은 안으로 들어 갈수록 끌려든다는 의미가 있다.
보경사는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 법사가603년(진평왕 25년) 창건한 사찰로 천년고찰이나 건립 역사가 명확하지는 않다.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의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지명과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 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寶鏡寺)라 하였다.
723년(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 위로 공중에 층층이 쌓여 있는 나머지 26개의 하늘나라는 인간이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인간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지막 하늘인 도리천을 지나는 것은 곧 해탈을 뜻한다.
사찰에서 가장 마지막 문을 해탈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여문,(眞如門), 자하문(紫霞門), 안양문(安養門)이라고도 부른다. 이 문을 들어서면 이제 부처님 나라, 불국정토이다. 진리를 상징하는 문으로 사찰로 들어가는 산문(山門) 중 마지막 문이며,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보경사는 일반 사찰의 삼문 순서인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 순서와 달리 해탈문 다음에 사천왕문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로 들어가는 두번째 문으로서 천왕문 또는 사천왕문이라고도 한다. 천왕문은 佛法을 수호하는 외호신(호법신)으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의 인도종교에서 숭앙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불전사물이 안치되어 있는 범종각 - 불음(佛音)을 전하는 불전사물(佛前四物), 즉 목어, 운판, 법고, 범종을 안치해 놓은 건물로 단층의 건물에는 '범종각(梵鐘閣)'이라는 편액을, 2층(중층)으로 된 건물에는 '범종루(梵鐘樓)라는 편액이 주로 걸린다. 범종루는 허공계를 상징하고, 하늘의 천인들이 들려주는 주악소리, 즉 범천의 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이므로 단층의 건물보다는 중층으로 된 루(樓)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경사에서 가장 으뜸 건물인 적광전(보물 제1868호). 이 건물은 사명대사가 1588년에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에 의하면 603년에 창건, 1214년(고려 고종 원년)에 원진국사가 중창, 1677년(숙종 3년)에 삼창한 불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적광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와 조선 중기(후기)의 건축양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선 주초석과 고맥이돌은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 건물에는 대적광전, 대광명전, 적광전, 비로전 등의 편액이 걸리는데 보경사에는 적광전(寂光殿)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내부에는 고려 전기의 조각양식을 띤 유형문화재 제514호 소조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수보살입상과 보현보살입상이 시립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고 머리가 작고, 상체는 길며 다리의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으나 밋밋하면서도 날씬한 모습이다. 머리는 나발이 뚜렷하게 표현되었으며, 높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육계의 정상 계주(髻珠)는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 건물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법화신앙에서는 대웅전을 ‘지혜를 실어 나르는 배’ 또는 ‘중생을 고통 없이 극락세계로 건너 가게 해주는 배’로 비유하는데, 이것이 곧 반야용선이다. 대웅전의 어간 좌우 기둥 위에는 대개 바깥으로는 용의 머리 부분을, 내부(혹은 건물 뒷부분)에는 용의 꼬리 부분을 조각해 놓는다. 이때 용두(龍頭)는 뱃머리가 되고, 용의 꼬리(龍尾)는 배의 선미(船尾)가 된다. 이렇게 한 것은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 건물이 중생들을 배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해 가는 반야용선임을 상징한다.
명부전 부처님 입멸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일체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咐囑)받은 지장보살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시왕을 함께 봉안한 법당으로 명부전 또는 시왕전이라고 한다.
명부전에 모셔진 열 분의 시왕들 - 원래 지옥의 왕은 염라대왕 한 분이였으나 중국을 거쳐오면서 도교의 영향을 받아 열명의 시왕을 봉안하게 되었다. 도교에서 명부는 중생들이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지은 공덕과 죄업을 심판 받고 육도윤회의 길을 가는 곳으로 누구나 반드시 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보살과 시왕을 통틀어서 신앙으로 삼는다. 그러나 〈지장경〉은 사실 위경(僞經)이므로 지장보살도 그 근거가 없는 것이다.
보경사 .오어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가장 큰 사찰이다. 그리고 천왕문 우측으로는 오래된 탱자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는데, 이 탱자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경사의 중요문화재로는 적광전, 원진국사비, 부도, 오층석탑, 탱자나무 외에 조선시대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