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의 상징,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1) 1만원권 지폐의 앞면
지폐의 배경 속 숨은그림찾기
1만원 권 지폐의 앞면에는 세종대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이 그려져 있다. 한국조폐공사에서 세종대왕을 모델로 선정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성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다. 특히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지폐제작자는 초상화 뒤에 ‘뿌리 깊은 나무...’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를 적어 넣음으로써 문자를 쓸 수 있게 된 후손들의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글 밑에 해와 달이 들어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2-1)전 채용신, <고종황제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색, 137×70cm, 원광대학교박물관
2-2)필자미상, <고종황제 초상>, 대한제국, 비단에 색, 162.5×100cm, 국립고궁박물관
‘일월오봉도’는 어진 뒤에 배경으로 그려 왕의 권위와 존엄성을 상징한다.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고종황제어진>이다. 옥좌에 앉은 고종 황제 뒤로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다. 왕이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그린 어진의 배경에 장막을 드리운 경우도 있지만, ‘일월오봉도’를 그리는 것이 상례이다. 일월오봉도는 오직 어진 뒤에만 그릴 뿐 황태자의 초상화인 예진(睿眞) 뒤에는 설치하지 않는다. 1만원권 지폐의 배경에 ‘일월오봉도’를 그려넣은 것은 옛그림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3-1)경복궁의 근정전

(3-2)근정전의 사정전
왕이 계시는 곳은 어디나 일월오봉도를
‘일월오봉도’는 어진의 배경으로만 그린 것이 아니다. 왕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에는 항상 그 배경으로 그렸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덕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 경희궁의 숭정전 등 궁궐의 정전(正殿)에는 왕의 어좌가 놓인 당가(唐家:닷집)에 일월오봉도를 설치하여 왕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냈다. 왕이 궁궐을 떠나 행궁이나 들판에 임시로 거처하는 장소는 물론이고 왕이 참석하는 국가 차원의 연회장에도 일월오봉도를 배치했다. 연회장면을 그린 그림에는 왕이 계시는 자리에 왕을 그리지 않고 일월오봉도를 대신해서 그렸다. 헌종 때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연회장면을 그린 <무신년진찬도>를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왕이 앉아 있어야 할 어좌(御座)에는 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대전에 있는 대신들은 빈 의자를 향해 엎드려 절하고 있다. 빈 의자로 그려진 어좌에는 실제로 왕이 앉아 있는데 그림에는 그리지 않고 대신 일월오봉도를 그려 왕이 앉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밖에도 일월오봉도는 왕이 붕어(崩御:돌아가심)하셨을 때 관을 모시는 빈전(殯殿)과 신위(神位)를 모시는 혼전(魂殿), 그리고 어진을 모시는 진전(眞殿)에도 드리워 마치 생존시의 왕을 모시듯 대했다. 전주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 어진>의 뒷배경에 일월오봉도가 설치된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4-1)<무신년진찬도>,1848년, 비단에 색, 136.1×47.6cm, 국립중앙박물관

4-2)<무신년진찬도> 세부

5-1) <일월오봉도> 앞에 봉안된 경기전의 태조어진

5-2) 태조어진 뒤 4첩 <일월오봉도>, 종이에 색, 247×333cm, 전주 경기전
일월오봉도는 오직 조선만의 특징
일월오봉도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소나무, 폭포와 파도가 그려져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일월도(日月圖)’,‘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오봉산병(五峯山屛)’‘오봉병(五峯屛)’등이 있다. 영조 년간 이전에는 해와 달을 그려 넣은 대신 금속으로 해와 달을 만든 거울인 일월경(日月鏡)을 부착하였다.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조선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우리 문화다. 그러나 일월오봉도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 지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 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림 속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전부 담겨 있어 인간을 대표하는 왕이 있어야 천지인이 조화를 이룬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 왕은 하늘의 이치(해와 달)를 본받아 동서남북중앙(오봉)의 방위가 지닌 인의예지신의 덕을 닦아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교훈적인 의미의 해석도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의미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서 형성된 한국의 토착적인 문화와 음양오행론이 더해 가장 이상적인 왕의 덕목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월오봉도는 국왕을 상징하는 장식화인만큼 구도와 양식적인 특징이 매우 뚜렷하다. 그림은 다섯 봉우리 중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해는 반드시 오른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떠 있고, 달은 왼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떠 있다. 창호나 장지문으로 쓰일 때는 해와 달이 빠지고 ‘오봉도’만으로 그려진 경우도 있다. 폭포는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하여 한 두번 꺾인 후 흰 파도가 물결치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봉우리 밑에는 비늘모양으로 도안화된 파도가 출렁이는데 중간 중간에 흰 물거품이 그려져 있다. 물결 양쪽으로는 각각 소나무 두 그루씩이 마주 보듯 서 있는데 소나무 색깔은 적갈색이고 잎사귀는 녹색인데 군데군데 이끼가 표현되어 있다. 물론 나무의 색깔이나 배치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왕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뒤따라다녔던 일월오봉도는 왕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장소에 따라 병풍이나 액자, 창호 등 여러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림의 크기는 8폭 병풍 같은 크큰 그림에서 벽의 한 면을 겨우 메울 정도로 작은 그림까지 다양하다. 왕의 모습이 없어도 일월오봉도만 있으면 왕이 계신 것이나 다름없었듯이 현재 여러 점의 일월오봉도는 여전히 그 화려한 모습으로 왕을 대신하여 그 권위와 위엄을 대변하고 있다.

6)<일월오봉도>, 19세기, 병풍, 비단에 색, 149.3×325.8cm, 국립고궁박물관

7)<일월오봉도>, 19세기, 액자, 종이에 색, 149×126.7cm, 국립고궁박물관

(8)<일월오봉도> 창호, 비단에 색, 147.8×232.6cm, 국립고궁박물관

9)<오봉도>창호, 비단에 색, 142.8×229.9, 국립고궁박물관
*참고문헌
-박정혜 외, "조선 궁궐의 그림",(돌베개,2012)
-이성미, "어진의궤와 미술사".(소와당, 2012)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형과 영의 예술",돌베개,2009)
-국립고궁박물관, "궁궐의 장식그림",(2009)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향연과 의례",(2009)
-국립춘천박물관, "태평성대를 꿈꾸며",(2004)
*이 글은 "국가브랜드위원회"(http://www.koreabrand.net/net/kr/book.do?kbmtSeq=2755)에 실렸습니다.
첫댓글 ㅎㅎ 우리 나라 가사는 일월광에 사천왕이 있으니 왕중왕이요 성중성이 걸치시는 삼품회상이 나타나있다 하겠군요 조수를 알리는 가사 쪽마다 홀로 독립된게 아니라 통문이 있어 하나로 연결되니 바로 무변법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나툰것이 될것입니다 일월오봉산도 누가 잘 그리시는지 훌륭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그저 무심히 꺼내 쓰기만 했었는데...^^* 무진당님의 글을 읽고
'일월오봉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새로운 앎의 기쁨에 충만해서
'일월오봉도'에 관한 자료사진과 귀한 글을 깊이
고맙습니다
손으로 일월오봉도를 따라 그려 봅니다...ㅋㅋㅋ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