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0대 명산 도전
다섯번째 산은 감악산을 오르기로 한다.
처음 들은 산인데 우리집에서 하루동안 갔다올 수있는 산을 골라 이 산을 택했다.
네비를 찍어보니 70키로 라서
차를 몰고 가기로 한다.
두시간 거리이다.
평소 차를 잘 몰지 않지만
찾아보니 대중교통은 불편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이
차를 모는 불편함보다 크기 때문이다.
예쁜아가씨의 안내에 따라
아무 생각없이 가라는데로 간다.
이 기계가 생기고 나서 부터는 모든 운전자가 바보가 되었다.
두시간여만에 감악산에 도착한다.
들어가는 초입에 긴 출렁다리를 건넌다.
길이가 150미터로
국내에서는 최장이란다.
그렇지만 이 기록은 언젠가는 깨지겠지?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는것이니
이런데 꼭 이름을 남긴다.
자기가 이룬 업적이 자랑스러워서 일까?
국민을 섬기려는 공직자의 다짐일까?
아니면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인의 속셈일까?
紺岳山은 감색감자(紺)를 쓰는데 바위가
감색을 띄여 이런 이름을 붙였나 보다.
보통산에 있는 화강암은 흰색이나 회색빛을 띠는데
초입에 있는 비룡폭표인데 물이 말랐다.
물이 없는 폭포는 앙상하고 흉칙하다.
감악산은 파주 적성면과 양주 남면, 그리고 연천군 전곡읍에 걸쳐있다.
옛날에는 道나 郡을 가르는 경계선에는
산이나 강이 있어 자연적인 표시가 되었다.
등산 초입부에 범륜사란 사찰이 있었다.
부처가 굴리는 법륜을 다른말로 범륜이라고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설법하는것을
"법륜을 돌린다."라고도 한다.
취직, 결혼, 건강을 소원하는 곳이다.
노력은 안해도
여기서 빌기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 질까?
아님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이룬다면 굳이 여기서 소원을 빌 필요가 있을까?
감악산은 가평의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중의 하나란다.
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바위산인데
이 산의 계곡은 전부 돌로 이루어 졌고 능선은 훍으로 덮여 있었다.
중간 중간 숯을 만들었던 가마터가 보인다.
그 당시 여기서 나무를 해서 숯을 만들고 아래까지 지고가서 팔아 생계를 유지한 이 땅에 살다간 민초들의 배고팠던 현장이다.
저 정도면 정보를 넘어서 공해수준이다.
한발한발 앞으로 나간만큼만 길을 내주고 걸어온 만큼 지나온 거리가 쌓인다.
오직 가고자 하는 의지와 두 다리만 필요할 뿐 그 어떤 기적도 없다.
옮겨야 앞으로 나간다.
여기가 이북과 가까운 지역이라 등산로가 개방된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곳곳에 군 작전에 필요한 시설들이 보였다.
피해가자.
튕겨나온 총알 맞을라.
출발후 1시간 40분만에 정상에 다다른다.
여기는 감악산 정상이다.
그리고 블랙야크로부터 다섯번째 인증을 받는다.
이제 겨우 5%이니 95%가 남았다.
그러나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난 끝을 향해
끊임없이
쉼없이
기필코
나가리라.
정상에는 감악산비가 있는데 글자가 지워져 沒字碑라고도 한단다.
구전에 의하면 진흥왕비라고 한다는데
글씨가 없으니 증명할 수가 없다.
이럴 경우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 뒤에는 군 레이더 시설과 철조망이
가로 막는다.
여기는
남과 북도 아닌데
북으로 보니
저 어디쯤이 개성
송악산일 것이다.
우리 산하는 그대로이건만 여기다가 이념적인 잣대로 선을 긋고 총부리를 맞대고 있으니
언제쯤이면 마음놓고 저 산을 오를까?
남으로 신암 저수지가 보인다.
가을하늘이 너무 청명하고
날이 맑아 시계가 넓게 펼쳐진다.
山高水麗한 우리나라의
맨 얼굴이다.
아!
대한민국.
정상에서 약간 남으로 내려보니 임꺽정봉이 보인다.
파란하늘에 역광을 받으니 산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여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단다.
그 당시도 옳은 일하긴 어려웠나 보다.
여기까지 피해 왔으니
임꺽정봉에서 내려다 본 장군봉.
그리고 북의 산하들.
구름과 철새만 여기를 마음껏 오간다.
군데 군데 군 시설들이 보이는데
여기서 근무했던 병사들은 여기에 관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해도 없는 깜깜한 밤에 근무를 위해 여기를 오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려오는 길에 보리암 돌탑이라는 안내판이 있어 가보니 이런 석탑을 쌓아놓았다.
개인이 쌓은것 같은데 옆에는 사람이 살고있는듯한 거처가 보인다.
아마 여기에 살고있는 사람이 저 프로의 주인공인가 보다.
간이 주막을 차려놓고 음료수나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나도 가끔 종편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보는데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산이었다.
산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을 품어주는 아량이 있다.
다시 하산하여 출렁다리를 만난다.
아래를 내려보니 아찔하다.
아까 산에 오르기전에는 긴장상태로 만났다면
지금 하산길에는 편안함으로 만난다.
이와같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자기의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인다.
唯心論.
여기가 접전지역이라 그런가 충혼비가 있다.
고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신 분의 고귀한 희생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UN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인들을 기리는 추모공원도 근처에 있었다.
6.25전쟁때 여기 설마천변에서 중공군과 싸워 큰 전과를 올린 영국군을 기리는 추모공간이다.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지구의 반대편에서 달려와 싸워준 그들의 고귀한 희생덕분에 우리는지금을 즐긴다.
.
우리는 당신을 길이 기억하겠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조형물은
이 공원의 주인공인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의 상징 조각물이다.
이 조형물뒤에는 17면에 걸쳐 영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쟁중 사망한 글로스터 연대 대원 62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쟁중 중공군과 북한군 30만명이 밀고 내려 왔을때 그쪽 3개 사단 병력을 600여명의 글로스터 대대가 맞서 싸운 기념상이다.
사흘을 싸워 59명이 전사하고, 67명은 탈출하고 526명은 포로로 끌려갔으나 사흘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우리 국군과 UN군은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벌었단다.
감악산은 높이가 674미터의 높지 않은 산으로 오르내리는데 3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오가는데 4시간이 걸렸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듯 하지만 별로
올 기회가 없었던
이 곳을 찾은것은 감악산이 나한테 주는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불과 몇년전만해도 교통이 좋지를 않아서 접근하기 힘들었던 산이죠~
한발 한발 100산을 향해 내딛는 교수님의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니 의정부 회룡역 근처를 지나고 계시네요
교수님 제 생각인데요... 이왕 쓰는 산행기
산행날짜 출발시간, 하산시간, 산까지의 접근 교통방법, 교통비 이런 소소한것도 쓰면
이 산행기를 읽으면서 가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