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에겐 ( )이 없다"
[창세기 24:10-27]
한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서울에서 공장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껏 기대했던 사업이 점점 기울더니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큰 병을 얻었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회개 기도를 시키시더랍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서 지었던
죄를 참회하며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간절히
서원기도를 드리셨다고 해요.
“하나님, 만일 저에게
건강과 물질의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을 위해
100개의 교회를 지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함을 보시고
기도 응답을 주십니다.
점차 건강이 회복되었고,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날로 성장했습니다.
이후엔 건실한 회사가 되었죠.
이렇듯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할 때가 많습니다.
평소에도 기도하긴 하지만 위기가 오고
어려움이 오면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죠.
그리고 더 간절해집니다.
저는 이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기도하는 것은 참된 행복이죠.
예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어떤 교회 앞을 지나갔습니다.
교회 옆에 어떤 문구가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낙심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도 기도가
꼭 필요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왜 기도해야 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아내도 천국에 갔기 때문에
아들 이삭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종을 불러서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자기 고향인 하란으로 가서 친척 중에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라는 거였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부탁을 했을까요?
먼 길을 가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허비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강도를 만날 수도 있죠.
나이 많은 아브라함 자신이
며느리도 보지 못하고 천국에 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주변에 괜찮은 사람 소개받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재력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기에 며느리감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을 하는 걸까요?
그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뤄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과 혼인하면
자신들의 신을 섬기도록 유혹해
하나님을 떠나게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런 결단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때론 그것 때문에 욕먹고 미련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결단을 기억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은 종은 길을 떠납니다.
그는 여러 명의 다른 종들과
낙타 열 마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약 900km 정도 됩니다.
일반 사람이 낙타와 함께 갈 때
하루에 약 30km 정도 걷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략 한 달은 쉼 없이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가는데 그냥 간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패물도 준비해서 갔습니다.
가면서 먹을 물과 양식도 갖고 갔죠.
드디어 그렇게 가고 싶었던 땅인
하란 밧단아람에 도착합니다.
때는 저녁노을이 막 지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햇살이 뜨겁기에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초저녁에
여인들이 우물 곁으로 나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저는 일단 숙소부터 알아봤을 것 같습니다.
해가 지면 잠잘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우물가에서 지체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종은 어땠나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순조로운 만남을 주옵소서.
누군가 나와서 물을 길 때 물을 달라고 할 텐데
저에게 물을 주고 제 낙타까지 물을 준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이삭의 아내인 줄 알겠습니다.”
그는 길고 길었던 여행의 피로를 풀기도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정말 책임감 있는 행동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이런 부탁을 아무한테나 했겠습니까?
당연히 믿을만하며 똑똑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잘하는 사람을 불렀겠죠.
역시 그는 아브라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충성된 종이 되길 바랍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칭찬받는 일꾼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실 제 이야기의 핵심은 이게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사건은 이제 등장합니다.
이 종의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성경에 따르면 심히 아름다웠다고 나왔습니다.
매력적인 여인이 우물가로 다가왔을 때
종은 달려갑니다.
그리곤 물을 좀 달라고 하죠.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주여 마시소서.”
아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여’라뇨.
그리곤 그 종에게 물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줍니다.
여러분, 낙타가 물을 얼마나 먹는지 아십니까?
낙타 한 마리가 15분 동안
약 113리터를 마신다고 합니다.
쉽게 100 리터라고 생각해도 10마리가 마셨으니
1,000 리터는 마셨을 겁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물은
깊이가 5미터 정도였습니다.
한번 물을 떠서 옮겨 붓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 주고.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했겠습니까?
지금이야 수도꼭지 틀어서
호스로 통에 담아주면 끝인데
그 땐 그렇지 않았죠.
그런데 이 여인은 쉬지 않고 호의를 베풉니다.
그만큼 외모와 인성 모두 훌륭했습니다.
낙타들이 모두 충분히 물을 마시고 나자
그 종이 그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딸입니까?”
“저 할아버지는 나홀이고
아버지는 브두엘입니다.”
‘나홀?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맞다! 우리 주인님의 형제!’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좀 전에 기도했던 대로
응답이 이뤄졌기 때문이죠.
종이 그토록 찾던 여인의 이름은 리브가입니다.
그녀는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이런 놀라운 역사가 있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 간에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응답이 와도
응답인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반면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이 왔을 때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셨다고 느낍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졌습니다.
우리 함께 본문 27절을 읽겠습니다.
창세기 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는 자는 그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 끝에서 만나 더 멋진 세상>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김광동(홍콩 총영사)외교 관료로서
38년 간 지낸 외교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1991년 벨기에에서 근무하던 중
한인 연합 부활절 집회에서
성령체험을 하였습니다.
그후 NGO 단체인
'더멋진세상'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로
사역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여기에 있는 작은 마을 블롬에 도착했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이미 군사 쿠데타와 내전으로
나라 곳곳에 폐허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곳의 비참함과 열악함은
다음과 같은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습니까?"
결국 더는 사역을 지속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곧바로 출국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 도지사인 코레이아가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 지역을
돌봐 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왔습니다.
당신이 바로 우리의 기도 응답입니다."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후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우물을 파게 되었고,
'마을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때는
기도하는 자만이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그 도지사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김광동 외교관이 떠날 때 말리지 않았을 겁니다.
"또 이렇게 떠나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기도하는 자는 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대로 응답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신 방법으로
이끌어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한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갈리리 호숫가 근처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15,000명은 되었죠.
예수님의 꿀송이 같은 말씀을 듣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서 밥 좀 먹으라고 하시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여기 사람이 몇인데 저희가 어떻게 먹입니까?"
그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걸 누구 코에 붙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우리가 리더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이건 우리가 먹고 나머지는
다들 시장에 가서 사 먹으라고 하자."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축사하셨다'는
헬라어 '유카리스테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단어는 '감사하셨다'는
의미를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직 기적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여기에 기도의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근심할 수 있습니다.
자녀로 인한 걱정, 재정 문제로 인한 근심,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에 평강을 주십니다.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믿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그저
“주세요. 못 살겠어요.”
만 있진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주실 것에
믿음으로 감사하는 기도가 넘치길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 삶에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개척한 지 3년 되었을 때
상가 건물을 떠나야 했습니다.
새로운 성전 건축 부지를 찾아서
교회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중에 돈이 2,000만 원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가지고는 땅만 파고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얼마 뒤 하나님께서는 지인을 통해
한 장로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제가 교회를 지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지어진 교회가
바로 우리 사랑제일교회입니다.
그때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
TK 건설의 회장이신 김수군 장로님이십니다.
이분은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던
그 장로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놀랍고 오묘한 섭리를 통해
이 교회를 짓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과정엔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의 기도가 있었죠.
담임목사님께서 쓰신
<사랑제일교회 기도이야기>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만드는
가장 좋은 습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남을 갖게 합니다.
지금 어떤 일로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 고민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게 만든다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반드시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겐 우연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