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일만성철용 | 날짜 : 09-03-09 17:27 조회 : 1878 |
| | | '워낭소리' 이야기 Photo 에세이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라서인가. '워낭'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워낭이란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또는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뜻하는 말이다. 200 만 명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독립영화라는 '워낭소리' 영화를 보고 왔더니 그 워낭소리가 계속 내 귀를 울리기에 다시 한 번 극장을 다녀왔다. 한 번은 구경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은 그 사진을 찍고 대사를 녹음하기 위해서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 두메산골 하눌 마을에는 30 가구가 살고 있다. 그 중 80세의 최원균 할아버지와 79세의 이삼순 할머니가 외딴 언덕 밑에 울타리도 문도 없는 초라한 집에서 늙은 소 한 마리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할머니는 16살에 가난한 농사군 최 할아버지에게 시집와서 9남매를 낳아 출가시키고 노후룰 단 둘이서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최 노인은 젊었을 때 침을 잘못 맞아서 왼 다리를 잘못 쓰는 장애자가 되었다. 그래서 발을 질질 끌며 농사를 짓는다. 할아버지의 재산목록 제1호인 늙은 소는 무릎이 아파 잘 걷지를 못한다. 15년까지 산다는 소의 평균수명을 넘어서 40세나 장수하며 사는 소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40년이나 장수를 하며 할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때로는 자가용 역할도 하다가 죽는 인간과 소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독립영화란 상업영화와 대가 되는 말로 작자가 돈을 대서 혼자서 집필하고 편집하고 촬영하는 영화를 말한다. 이 영화의 이충렬 감독의 애초의 목표는 방송용으로 기획 제작 하려는것이었으나 방송 3사에서 퇴자를 맞고 스트디오느림보를 통하여 영화로 재탄생하여 전국에서 겨우 7개의 극장에서 한가한 아침 나절의 영화로 2009년 1월 15일에 개봉한 영화다. 처음에는 2009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수상작의 진가를 아무도 몰랐다. 이런 독립영화는 관객이 5~6만이면 성공이라는데 '워낭소리'는 3주만에 광고도 아닌 입소문을 타고 10만 관객을 넘어서더니 3개월도 안 되어서 관객 200만을 넘는 대박을 터트리며 독립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요즈음은 전국에서 상영 극장만도 200여 개가 되는 모양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여자 주인공인 이삼순(70세) 노파의 넉두리는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풀어 가고 있다. 어찌 보면 푸념이요, 잔소리요, 원망 같아서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비하면 수다꾼 같지만, 우리들의 옛날을 오늘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여서 심금을 울리는 내레이션이 되고 있다. 최 노인은재산목록 제1호인 이 늙은 소와 함께 30년을 함께 농사일하면서 이 강촌에서 5남 4녀를 대학까지 공부 시키고 출가 시켰다. 두 분다 한글도 모르면서도 그 중 52세의 장남은 봉화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키울 정도로 교육열이 강했다. 그렇게 최 노인은 80살을 소는 40살을 먹으며같이 늙었다. 둘은 일 복과 장수 복을 갖고 태어났나 보다. "만날 만날, 날만 새면 들에 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끌려가고-." 걷기 힘들어 하는 소를 보며 하는 할머니가 하는 푸념이다. 최 노인의 이 마흔 살 늙은 소는 농사일도 도와주지만 발이 아픈 최 노인네에게는 자가용 같은 운송 수단이 되어 마차를 끌어 주기도 하고, 땔감 같은 짐을 날라주기도 한다. 최 노인은 또 기계 농사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옛날 할아버지들처럼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써레질을 한다. 저 뒤에 할아버지보다 아주 젊은이가 농기구를 가지고 논을 매고 있는데도 말이다. 최 노인은 이 소중한 소에게 소 사료 대신 쇠꼴이나 여물과 쇠죽을 직접 끓여 먹인다. "소 사료를 먹이면 소 새끼 잘 안 돼. 그걸 알아야 돼-" "보이소! 농약 치소." 할머니는 영감이 안쓰러워서 농약치기를 권장하지만 영감님은 무기농을 고집한다. 행여나 늙은 소가 농약 묻은 꼴을 먹을 까봐 주둥이에 부리망을 씌우고 농사지으러 간다. 워낭소리 영화 전편에 걸쳐서 가장 소중한 소도구는 옛날 우리들의 늙으신 아버지가 애용하던 추억의 고물 레디오다. 그것이 고장 난 것을 보고, "두드려 보소." 할머니가 또 참견한다. 그리곤 탁 `치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의 독백이 시작된다.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 나도 다 됐네. 하하하 하하하." 여기서 중고 레디오의 고장은 소의 죽음을 눈치 안채게 넌지시 슬쩍 보여 주는 복선(伏線)이기도 하다. 이 라디오는 관객에게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지만 저작권을 염려해서인지 그 노래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래서 엉뚱하게 교통방송이 나오는 등으로 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그런 소도구 중에 또 하나가 헌 고무신과 지팡이다. 고무신은 농촌의 고달픈 생활과 가난을, 지팡이는 늙고 병든 것을 상징하는 소도구다. "아이 아파!" "그리 아파 우예꼬?" 최 노인은 다리 장애를 무릅쓰고 힘든 일을 하러 나가니 다리가 아프고, 늙었으니 온 몸이 욱신욱신 쑤시는데 요즈음은 머리까지 아프다.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와 함께 큰 맘 먹고 늙은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병원을 가는데 궂은비가 오고 있다. 읍내에는 맞추어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데모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대모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픈 할아버지 눈에는 남의 일 같다. 의사는 그 연세에는 농사일이 무리이니 쉬라 한다. 쉬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렀다. 이제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영정 사진이라도 하나 박아두자는 생각에서다. 간 김에 할망구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 보이소, 웃어! 웃어! " 할망구가 웃으라 하지만 아픈 사람이 웃음이 나겠는가.
기다리던 자식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차를 몰고 왔다. 와서는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버지의 소를 팔아 버리자는 것이다. "아 "아버지, 소를 팔아야 되겠어요. 소가 있으면 자꾸 일하시고 자꾸 아파하시니 우리들이 더 신경이 쓰여서요. " 자식들의 성화와 할망구의 잔소리에 못 이겨 최 노인은 장날에 소시장에 가기로 하였다. 할머니는 마지막 보는 소가 안쓰러워서 정성껏 쇠죽을 쑤었다. 그러나 소도 이별을 아는지 통 먹으려 하지 않는다. "야, 곱빼기로 했는데 왜 안 먹니? 얼른 얼른 많이 먹고 가. 너나 나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너는 주인 잘못 만나고, 나는 영감 잘 못 만나서-. 자식들의 등쌀에 밀려 소를 팔러 갔으나 너무 늙어 60만원이니 100만원이니 헐값이 아니면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500만원! 500만원! " 하다가 결국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막걸리 한 잔 먹고 가려고 주막에 들렸다. " 전에 말야. 장에 왔다가 술 한 잔 먹고 마차를 타고 가다 자부렸어. 깨고 보니 집이라. 그 위험한 길을 이 놈의 소가 차를 비켜서 왔던기라. 그런 소를 어떻게 헐값으로 팔겠는가." 대신 새끼 밴 젊은 암소 한 놈을 사왔다. 농사짓던 소가 아니라서 이놈은 빈둥빈둥 놀면서 먹기만 잘 했다. 그러다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할망구는 그게 못 마땅하였다. "수송아지를 낳아야 할낀데, 그래야 더 비쌀낀데 저 놈의 소 무얼 잘했다고 빈둥빈둥 놀며 먹기만 잘하는구나." 외양간이 하나라서 한 구유에 먹이를 주면 젊은 소가 완력으로 밀어 내어 최 노인을 노하게도 하였다. 여기서 젊은 소의 등장은 문학적 기교의 대조법을 구사한 것이다. 최 노인의 발과 늙은 소의 무릎. 늙은 소와 젊은 소, 최 노인의 소를 이용한 재래식 농사와 젊은이의 기계농사. "보소 농양치소.", "농약 치다 소 묵고 죽으라고." 하는 등등 . 소가 일어나지 못해 하여 수의사를 불러보았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최 노인은 급히 코뚜레를 낫으로 끊어 준다. 30년 전에 자기 손으로 한 코뚜레였다. 지금 죽어 가는 이 고마운 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늙은 소는 그 큰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니 그 눈을 다시 감지를 못하였다. 소가 죽어 버린 것이다. "좋은 데로 가거라. 우리 가거든 같이 가도 될 텐데." 할아버지의 한탄에 할망구가 쌓인 땔나무에 눈을 주며 눈시울을 닦는다. " 소가 아파하면서도 이 걸해 놓고 갔어, 불 때고 살라고. 영감과 할미 불 때고 살라고 나무 땔감을 저리 많이 해놓고 죽었잖아요." 이듬해 봄이오니 밭 가운데 묻은 소 무덤에도 풀이 돋아나고 늙은 소의 발자국이 깊이 패어 있었다. 최 노인의 마음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가버린 소의 추억처럼.' |
| 임병식 | 09-03-09 22:44 | | 일만선생님, 좋은 글과 그림 기가 막힙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소의 코투레에 워낭을 다는데, 웃녘에서는 목에다 메달더군요. 그리고 부르는 이름도 여기서는 풍경이라고 하지요. 그 소가 쓰러져 눈을 감는 모습을 정진철 선생님이 올려준 영상을 보고 콧등이 찡했습니다.코뚜레를 낫으로 자르는 모습이 여간 가슴아프지 않군요. 총회날 좋은 사진 많이 부탁드립니다. | |
| | 이덕영 | 09-03-10 12:12 | | 영화를 몇번씩 보시고 써주신글을 통해 일만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을 느껴봅니다. 생명있는 모든 것들의 깊은 인연 얼마나 소중한가요.마지막 코뚜레를 끊어주는 최노인의 깊은 마음에 자유인의 향기를 흠향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워낭소리" 보고 싶었던 마음을 떨쳐버립니다.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09-03-15 23:24 | | 일만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지않아도 친구가 '워낭소리' 영화 보러가자고 했는데... 선생님이 올리신 글을 보니 영화 한 편 잘 봤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도 글도 실감나게 엮어놓으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
| | 이기숙 | 09-03-18 02:08 | | 그 열정 누가 말립니까..... 이렇게 멋지게 소개를 하시다니..... 저도 영화를 보았지만 정말 감동이었어요. 다시 이글로 장면 장면을 그려봅니다. 감사드리며 수고 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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