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일기
시월 셋째 금요일이다. 일찍 잠에 들었으니 일찍 잠을 깸은 당연하다. 새벽 두 시 눈이 뜨여 미적대다 세 시에 불을 켜고 텔레비전도 켰다. 뉴스를 자막과 함께 보다가 채널을 바꾸어 재방송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설거지와 세면을 끝내도 다섯 시가 안 되었다. 퇴근 후 창원으로 복귀할 가방을 챙겼다. 내용물은 반찬 비운 통이다.
다섯 시 반에 와실을 나서다가 골목이 너무 캄캄해 십 분 늦추어 다섯 시 사십 분에 나온다. 문 밖으로 나오니 어둠 속 시청 용역에서 나온 쓰레기수거 차량이 지나갔다. 내가 머무는 곳이 면 단위 시골이지만 원룸이 다수 들어선 동네라 아침마다 인부들이 다녀갔다. 나는 간밤에 비운 곡차 페트병을 분리 배출 장소에 두고 골목을 나섰다. 어둠이 사라지고 있는 때였다.
어제 아침까지 동녘하늘 눈썹보다 가늘어진 조각달이 부메랑처럼 걸려 있었는데 보이질 않았다. 음력으로 팔월 그믐으로 내일이 구월 초하루다. 아마 초이틀이나 초사흘부터 초저녁이면 서녘 하늘에 초승달이 걸리지 싶다. 한밤중은 바깥으로 나올 일 없어도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는 밤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있다. 도시 달보다 시골 달이 운치 있고 별빛도 더 반짝거렸다.
지난해 가을 퇴근 후 구영으로 나갔다. 구영은 거제 최북단으로 진해가 빤히 건너다보이는 데다. 거기는 비가 오던 어느 날 새벽에도 출근 전 버스투어로 둘러본 적 있다. 구영에서 해안선 포장도로를 따라 황포까지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니 밤하늘에 상현달이 걸려 가로등처럼 길을 비추어주었다. 황포는 마산에서 연장되는 5호선 국도가 해상구간으로 연결될 지점이다.
역시 지난해 늦가을 날이 저무는데 구조라로 가는 23번 시내버스를 탔다. 옥포를 지나 아주 대우조선소를 돌아 장승포에서 지세포로 나갔다. 구조라 종점을 앞둔 와현에서 내렸다. 고갯마루에서 해변 모래밭 숲에 내려서니 어둠이 깔렸다. 그날이 음력으로 구월 보름이었지 싶다.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운데 공곶이 서이말등대에서 솟아오른 초저녁 보름달이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겨울 들머리였다. 퇴근 후 산책 삼아 와실을 나섰다. 마을 안길을 지나 연사고개로 올랐다. 가끔 올라봐 지형이 익숙했다. 고개를 앞두고 산굽이를 돌고 산등선을 넘어 유계로 가기도 했다. 고개 너머 오비로 내려간 적도 있다. 그날은 석름봉을 넘어 소오비로 향했다. 초행길인데 골짜기로 내려서니 주변이 어두워져 돌부리가 발길에 채이고 무덤도 나타나 무서웠다.
해가 짧아진 작년 가을날 오후였다. 구영으로 가는 30번 시내버스를 탔다. 연초삼거리에서 하청과 장목을 지났다. 관포고개를 넘으니 대한해협이 드러났다. 간곡 몽돌해수욕장을 앞둔 해상 낚시공원이 조성된 궁농에 내렸다. 포구에서 망봉산 둘레길을 찾아 올랐다. 건너편 리조트와 거가대교 연육교 구간은 밝은 조명이 들어왔다. 초저녁인데 하늘도 바다도 깜깜하기만 했다.
작년 늦가을이었다. 학교에선 정기고사가 진행 중이라 오후 시간이 느긋했다. 칠천도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송포에서 내려 산책 교량 아치교가 놓인 무인도인 수야방도로 건너갔다. 야트막한 산마루에서 서편 전망대로 내려가니 진동만은 잔잔한 호수 같았다. 마침 건너편 고성 당동 방향으로 저녁놀이 물들 때였다. 장엄하고 황홀한 낙조는 한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다음 한 주는 정기고사다. 내리 닷새 오전에는 고사 감독을 하고 오후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길을 나서련다. 아무래도 산행보다 갯가로 산책을 나서지 싶다. 탁 트인 대한해협엔 대형 컨테이너운반선이나 작은 고기잡이배들이 점점이 떠 있고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부서질 테다. 가조도나 칠천도로 건너가 진동만 내해에서 낙조를 볼 틈도 만들어야겠다. 2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