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와 시차時差 때문에 생기는 진기한 일들
낙동강을 가기 위해 대전행 버스를 탔고,
대전 터미널에서 내려 목포에서 온 이동심씨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며
배낭을 메고 다시 승차 터미널로 가다가 보니 어딘가 허전하다.
‘아차! 갈아입을 옷이 든 가방을 두고 왔구나, 버스가 떠났으면 어쩌지’하고
혼잣말을 하며 하차장에 가니 내가 타고 온 버스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떠나기 직전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버스 문이 열려서 기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어서 찾아가시란다.
여덟 번 째 낙동강 답사를 마무리 지은 현풍의 박진교에서 내려
아침 낙동강을 한 컷 찍었는데, 사진이 안 찍혔다.
아침이라서 그런가, 하고 서너 번을 눌렀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고 화면을 보자 ‘밧데리를 교환해 주십시오?“
이태리에서 돌아와 밧데리를 교환하지 않고 돌아왔는데,
대용품을 안가지고 왔으니
이를 어쩐다, 어디 그뿐인가, 손수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산수유를 보고 오미자라고 하지 않나, 홍의장군 곽재우 선생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의 근심 우憂자를 보고 어리석을 우愚자라고 읽지를 않나,
내가 얼마 전에 지은 한심이라는 호가 제대로 들어맞는 것인가.
다른 빨래 들이 밀려 있어서 늦게야 빨래를 하고 널 던 중,
어제 입었던 바지가 제법 묵직했다.
왜 그럴까? 어제 다 소지품을 비웠는데,
주머니를 뒤지자 나오는 지갑, 아뿔싸 이건 또 어떻게 하지,
나에게 유일한 국가자격증인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 그리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카드가 물기 머금은 채 꽂혀 있고,
내 비상금이 물기에 접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넣어 가지고 다니는 명함이 몇 장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그때 불현 듯 카드 생각이 났다. 세탁기에 돌린 카드가 그대로 작동할까?
빨래를 널다가 아직도 물기 머금은 카드와 현금 5천원을 들고
허겁지겁 편의점에 가서 카드가 물에 들어가면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란다. 요구르트를 산 뒤 카드를 넣었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
피렌체의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려고 수건을 달라고 하자 민박집이라서 수건을 각자 가져오라고 했단다.
내가 바빠서 못 본 것일까?
그래서 여기저기 뒤지다가 보니 서랍 속에 수건이 여남은 장
정갈하게 개켜져 있다. 네 장을 가지고 와서
왕기석명창에게 두 장을 주고 내가 두 장을 아침까지 썼다.
그 다음 날 다시 수건이 필요해서 그 서랍을 열고 수건을 꺼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내가 집은 것은 수건이 아닌 걸레고
위 칸에 있는 것이 수건이란다.
아하, 우리 둘이 사용했던 것은 수건이 아니고 걸레였고,
우리 두 사람은 수건이 아닌 걸레로 온몸을 닦고, 머리를 감았구나.
내가 그 얘기를 그날 하지 않고 돌아오는 날 아침에
왕기석 명창하게 하자, 눈을 부라리며,
“형님 때문에, 내가 걸레로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았단 말입니까?”
항의했고,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일행들이 배를 움켜 주고 웃었다.
하지만 걸레면 어떻고, 수건이면 어떤가,
우리 속담에 “똥을 누고 그 똥을 머리에 이고 간다.‘고 하지 않는가,
살다가 보면 이 세상에 비일비재한 일이 어디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7일 간의 간격에서 빚어진 ‘시차時差 때문 만일까?
내가 그런 여러 얘기를 하자 우리 땅 도반들이
“선생님 우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이 겪었던 일이예요,
선생님이 늦어서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서도 그러한 일이 이제 비일비재 일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나는 세월이 가고, 그 세월 속에서 빚어지는 모든 일을
운명애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일 때문에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에 수도사라는 절이 있다.
원래는 그 산 너머에 있던 것을 두 번씩 옮겨서 위치한 절이 바로 그 수도사다.
그곳이 바로 원효스님이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하룻밤을 머물렀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그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면서 감미롭다고 여겼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메스꺼움에 구토를 하다가 홀연히 모든 이치는 마음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한글학회가 발행한 <한국지명총람>에 실린 글이다. 시차가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의 기행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여러 가지 일화 들, 여행이 주는 참 배움이고, 깨달음이다. 느닷없이, 별안간, 문득, 불쑥 일어나는, 그 기적 같은 일들이 나를 부르는 여행,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한가? 그래서 또 떠나고 떠나는 것은 아닐까?
문득 환청처럼 들리는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베네치아의 뱃노래>가 곤돌라와 함께 흔들리는데,
2018년 9월 18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