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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날 영면한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의 빈소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조의금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설명에도 한 20대 학생이 "꼭 받아 달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돌려주려는 상주와 학생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학생은 상주의 손을 뿌리치고 냅다 도망을 쳤다. 봉투를 열어 보니 돈이 아닌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세운 해동과학문화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었다. 장학금 덕분에 공학도가 됐고, 고마운 마음을 일찍 전하지 못해 애통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업인들의 장례식장은 으레 비즈니스맨들로 북적거린다. 평소의 인맥뿐만 아니라 '사람은 가도 비즈니스는 계속 된다'는 세상 이치 때문이기도 하다. 거래처 사람들을 맞느라 상주 못지않게 바쁜 회사 직원들을 보면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김 회장의 빈소는 달랐다. 기업인이나 회사 직원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와 종교 기관, 각종 복지 시설에서 온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90대 노 회장님의 장례식에 머리가 하얗게 센 교수님과 20대 젊은이들이 나란히 절을 올렸고, 수사(修士)들은 장애인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꽃을 바쳤다.
고인은 지금까지 국내 대학과 복지 시설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은 사방팔방으로 쪼개져 고(苦)학생의 장학금이, 공대의 실험 기기가, 노인 보호 시설의 휠체어가 됐다. 두 달 전에는 서울대에 AI(인공지능) 연구에 써달라며 500억원을 내기도 했다. 쇠약해진 몸으로 "한국 전자 산업이 한계에 달했고, 돌파구가 필요하다"며 나라 걱정을 하다 내린 용단(勇斷)이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기업인을 악인(惡人)으로 묘사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실제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와중에 몇몇 기업인이 기부를 많이 한 선인(善人)으로 그려진다고 기업인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6·25 이후 잿더미가 된 서울 거리에서 사업보국(事業報國)을 다짐했다는 김 회장처럼 맨땅에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돌려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업인들이다. 이들의 공(功)이 과(過)에 가려 결코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조문객 중에는 일본 기업인들도 여럿 있었다. 1968년 대덕전자가 인쇄회로기판(PCB) 공장을 지을 때 기술과 장비를 제공해 준 이들이라고 한다. 김 회장은 당시 수차례 일본을 찾아가 읍소한 끝에 이들의 도움을 얻어냈다. 이 중 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은 기업가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한·일 관계도 좋지 않은데 일본과의 인연이 부각됐다가 훌륭한 분의 이름에 누(累)를 끼칠까 두렵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5/20190415029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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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일 하시구 가셨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노블리스오블리제를ㅇ소리없이실천하시는 분...
우리사회는 이렇게 따스한분들로 가득하기를..
부디..
영면하시옵길
이처럼 존경할만한 기업인이 계셔서 훈훈함을 느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일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