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불교신문, 김문갑 기고 https://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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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짓의 역사
만약 요순선양은 거짓말이고, 오히려 잔인한 권력쟁탈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나? 요순 선양을 거짓이라고 본 학자들은 이미 전국시대(戰國時代)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순자(荀子)이다. 순자는 “요순이 선양하였다는 말은 실로 거짓말이다. 이는 천박한 자가 전하는 말이며, 고루한 자들의 주장일 뿐이다.”4)라고 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순(舜)은 요(堯)를 핍박하였고, 우(禹)는 순을 핍박하였으며, 탕(湯)은 걸(桀)을 내쫓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토벌했다. 이 네 명의 왕들은 신하의 몸으로 그들의 임금을 시해한 것인데, 세상은 오히려 이들을 기린다. 네 왕의 실상을 살펴보면 실로 탐욕스런 사람들이요, 그들의 행동은 폭력적인 전쟁이었다. 그들은 제멋대로 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위대하고 밝은 군주라고 칭송한다. 그 이름이 드날리고 그 위엄이 천하에 떨치니 세상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5)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 요순우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탐욕스럽고 난폭한 폭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공자와 맹자인가? 아니면 순자와 한비자인가? 유교 경전이며 요순 선양의 강력한 근거자료인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보면, 순임금이 “공공(共工)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驩兜)는 숭산으로 내쫓고, 삼묘(三苗)는 삼위로 몰아내고, 곤(鯀)은 우산에서 죽였다. 이 네 명을 벌하자 천하가 복종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은 요임금을 도와 태평시대를 만든 요임금의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만약 요순 선양이 사실이라면, 굳이 요임금 시대를 대표하는 신하 네 명을 죽이거나 유배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의 이 기록은 순이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279년 하남성(河南省) 급현(汲縣)에 있는 위(魏)나라 양왕(襄王, 재위 BC 334〜BC 319)의 무덤에서 상당한 죽서(竹書)가 발굴되었다. 죽서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책을 말한다. 위양왕의 무덤에서 나온 책들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에 묻혔기 때문에 분서갱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죽서 중에 기년체 역사서 한 권이 있어서, 이를 《죽서기년(竹書紀年)》이라 한다. 출토된 지명을 따서 《급총기년(汲塚紀年)》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에 “옛날에 요의 덕(德)이 쇠하자 순에 의해 갇히게 되었다. 순이 요를 감금하고 요의 아들 단주를 막아 아버지와 만날 수 없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요임금이 늙고 힘이 약해지자 요임금의 신하로 있던 순이 군주를 감금하고 그의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의 기록이 상당 부분에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상당한 역사성이 긍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몇 가지를 추론해 보자. 먼저 《죽서기년》은 처음 발견 당시에는 매우 중시되었으나 수차례의 정변을 겪으며 유실되고 흩어졌다. 그렇게 유실된 것들을 모아 정리하고, 또 다시 흩어지길 반복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죽서기년은 송(宋)대에 유실된 것을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 부분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유실을 반복하였을까? 적어도 누군가는 이 책의 내용을 싫어하였고, 유실을 방조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중국처럼 큰 나라에서 복원이 난제일 정도의 유실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지배권력의 영향력이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송(北宋)시대의 유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을 평정하고 다시 세운 통일제국 송나라는 이른바 사대부라고 하는 지식인계급을 폭넓게 등용하며 학문과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북방민족, 특히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게 남송(南宋)이다. 이런 시기에 이른바 오랑캐의 핍박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사대부 지식인들에 의해 중국 전통의 유교사상이 재조명되며 새롭게 형성된 것이 바로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이민족의 종교인 불교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다. 북송의 성리학에 더욱 강력하고 교조적인 중화의식이 결합한 것이 남송의 주자학(朱子學)이다. 이들 송대의 사대부들에게 《죽서기년》은 금서(禁書)와 다를 게 없는 책이었다고 보아도 크게 잘못된 추리는 아닐 것이다.
3. 교화(敎化), 거짓과 진실 사이
“절제(sophrosynē), 용기(andreia), 자유로움(eleutheriotēs), 고매함(megaloprepeia) 및 이와 같은 부류인 모든 것”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신화나 설화 작가들이 지은 이야기들은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 하고…… 오늘날 그들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것은 버려야만” 한다.…… 거짓은 나라와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통치자들에게만 허용한다.6)
지난 호에 실린 졸고 중의 마지막 부분으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교육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체는 도덕적이며 고결한 것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빼고 어떤 것은 더하며, 진실이 아닌 거짓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순과 선양에 얽힌 이야기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플라톤의 교육이념이 멀리 극동의 중국과 조선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었는가. 현재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요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교육의 힘과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상상조차 힘들다. 요순은 실로 수천 년 동안 엄청난 사람들의 의식을 완벽하게 지배한 성인이었다. 이른바 교화(敎化)에 의해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다시 순자와 한비자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공맹 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정착된 이래 당연히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또한 주목해야할 점은 이들의 철학은 매우 유물론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유물론적이라는 말은 사실적이라거나 혹은 자연법칙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이들은 하늘과도 같은 어떤 인격적인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자는 말한다.
“하늘(자연)에는 법칙이 있으니 요순(堯舜)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걸주(桀紂)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7)
사실을 사실대로 보면 요순시대에도 홍수와 가뭄이 극심했으니, 하늘이 특별히 이 성군들에게 천명(天命)을 내렸다고 할 근거는 없다. 또한 폭군의 대명사인 걸왕이나 주왕 때에도 태양은 여전히 떠올랐고, 때에 맞춰 비가 내렸다. 그러니 천명이니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이다. 이들은 사실을 말했고, 비판받았다.
정의(正義)가 사라진 도시 고담. 미치광이 악당 조커에 맞서 배트맨은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조커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담시의 영웅 하비 덴트의 추락을 보게 된다. 젊은 검사 하비 덴트는 악당과 싸우는 영웅에서 형사 두 명을 포함한 다섯 명의 살인자로 전락하고 만다. 영웅과 악당, 선과 악의 두 얼굴, 투 페이스(Two face)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앞에 두고 배트맨은 말한다.
“사람들이 하비 덴트가 무엇을 했는지를 결코 알게 해서는 안 되오. 조커가 이기게 할 수는 없소. 고담은 영웅이 있어야 하오.…… 왜냐하면 때로는 진실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오. 때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법이오.”
하비 덴트의 추악한 얼굴은 가려지고 영웅적인 얼굴이 높이 걸렸다.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영웅이 만들어졌다.
교화란 결국 거짓을 참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반복하고 반복하면 사람들은 믿게 된다. 증자(曾子)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효도와 덕행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런 증자의 어머니에게 한 사람이 달려와 말했다. “증삼(曾參, 증자의 이름)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베틀 위에서 베를 짜던 증자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태연히 말하였다. “내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 잠시 후에 또 한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였다. 어머니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 말했다.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자 증자의 어머니는 베틀 북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도망갔다. 세 사람이 말을 하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거짓말의 효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사람은 히틀러의 선전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였다. 그는 독일의 각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고는 연일 떠들어댔다. 히틀러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이고, 독일 국민은 얼마나 위대한 국민인지. 그리고 유태인은 왜 절멸시켜야하고, 독일은 왜 전쟁을 하여야하는지. 이런 괴벨스가 말했다.
“99개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이 적절히 배합되면 100% 거짓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엔 모두가 믿게 된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교육이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그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슬픈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