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 왁자지껄하다. 저마다 보물찾기 지도를 손에 든 시민들이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9월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청계천 모전교부터 삼일교 사이에서 청계천 보물찾기 프로그램 ‘왕의 보물을 찾아라’가 진행되고 있다.
청계천에 숨겨진 12가지 보물을 찾는 ‘왕의 보물을 찾아라’ 프로그램 ⓒ이선미
“옛날 조선시대에 백성들을 아끼던 왕이 있었소. 왕의 소원은 오직 백성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네.”
청계천에 숨겨놓은 12가지 보물을 찾고 소원을 빌면 희망과 소원이 이루어진다! 앙증맞은 12가지 미니어처로 상징되는 보물 가운데는 ‘재물방석’, ‘승승장구’, ‘백세건강’, ‘사랑만땅’ 같은 소원들도 담겨 있었다. 이를 찾아 스마트폰으로 촬영 후 SNS에 해시태그 (#왕의보물을찾아라 #청계천보물찾기)를 달면, 추첨을 통해 기념 배지를 받을 수 있다.
이야기꾼 전기수가 보물찾기의 첫 주인공이었다. ⓒ이선미
청계광장에서 물가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벌써 첫 번째 보물이 보였다. 조선시대에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해주던 전기수였다. 오늘 청계천 이야기를 해줄 주인공이기도 했다.
장원급제를 꿈꾸며 먼 지방에서 올라온 선비가 청계천의 맑은 물결에 결의를 다져 과거시험을 잘 보고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어사화도 보물이었다. 시험을 앞둔 이들에게는 간절하게 느껴질 보물이었다.
청계천 물속에도 보물이 있었다. 부와 재물을 많이 불러온다고 해서 인기가 많았다는 황금잉어였다. 돌다리 가까이 놓인 잉어는 인기가 있었다.
12가지 미니어처는 청계천의 곳곳에 놓여 있어서 찾는 재미가 있었다. ⓒ이선미
조선시대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청계천 다리 위에서 연을 날리며 한 해가 태평성대가 되기를 빌었다고 한다. 정월보름날 밤에는 도성의 모든 사람이 보신각 종이 울린 후 청계천의 다리를 밟으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연날리기’는 지금도 많이들 하지만 ‘답교놀이’(다리밟기)는 거의 보기 힘든 풍습이 되었다.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연 날리는 풍경 미니어처 ⓒ이선미
지금은 보기 힘든 ‘답교놀이’는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이선미
고된 하루를 보낸 일꾼들과 시전상인들이 모여들어 하루의 피로를 한 잔 술에 풀곤 하던 피맛골 풍경도 미니어처로 만날 수 있었다. 그 옛날 청계천에는 ‘땅꾼’도 있었다. 뱀을 잡는 사람을 땅꾼이라고 불렀는데 영조 임금의 배려로 이들은 청계천 주변에서 뱀을 잡아 약재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한다. 청계천은 삶의 터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 주변에 뱀이 많아서 뱀을 잡아 돈을 버는 땅꾼도 있었다. ⓒ이선미
청계천에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한 임금이 수표교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나중에는 결국 사랑을 이뤘다는 야사가 있다고 한다. 청계천 물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연인의 미니어처를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이 장면을 무척 좋아했다. 당연히 연인들은 인증샷을 찍고 돌아섰다.
청계천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선미
광통교와 장통교 사이에는 효심 지극하기로 유명한 정조 임금이 어머니 경의왕후의 환갑에 아버지가 묻힌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능행반차도’가 있다. 경의왕후와 정조의 두 누이 공주들, 그리고 문무백관과 호위군사 등 6,000여 명이 그려진 그림에 정작 정조 임금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몸과 얼굴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림에는 임금이 탄 말은 보이지만 얼굴은 그려 넣지 않았다. 하지만 ‘왕의 보물을 찾아라’ 프로그램에서는 어머니의 가마 뒤를 따르는 ‘말을 탄 정조’도 등장한다.
시민들이 능행반차도 앞에 놓인 보물을 찾아 인증하고 있다. ⓒ이선미
능행반차도에는 보이지 않는 정조 임금을 말 탄 미니어처로 만날 수 있다. ⓒ이선미
어린이들과 놀이 삼아 보물찾기를 하는 젊은 시민들도 보물을 다 찾아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참여하는 시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떤 구간에서는 아주 쉽게 보물을 찾았지만, 난이도가 높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누군가가 보물을 찾고 있어서 덩달아 해결해 나가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시민들은 아주 진지하고 열심히 보물을 찾았다. ⓒ이선미
두 시가 되자 모전교 아래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문을 듣고 모여든 관객들이 벌써 가득 자리를 잡았다. 명랑 쾌활 경쾌한 도포 차림의 전기수가 등장했다. 듬직한 고수도 자리를 잡으니 배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모전교 아래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선미
“여기가 어디지요?”
어린이 관객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청계천이요.”
“그렇지요, 청계천. 오늘 청계천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데 좋아요?”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눈을 빛내며 전기수의 말과 행동에 주목했다.
공연은 9월 28, 29일에 진행되었지만 ‘왕의 보물을 찾아라’ 프로그램은 10월 6일까지 이어진다. 12개의 보물을 찾는 동안 청계천의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보물을 찾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예쁜 기념 배지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오래 기다렸던 가을이 그래도 오는 중이다. 걷기에도 한결 편안해졌다. 청계천 나들이에 나서 보물찾기도 하고 마음속의 소원도 챙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