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8, 끝)
유발 노아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큰 시각으로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행태를 개관한 책이다.
유발 하라리는 ‘아프리카에 살던 별 볼일 없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을 지배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하나하나 답을 풀어 나간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세 가지 틀로 바라보면서, 집단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덕분에 인간이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즉 나의 상상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함께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실재인 법, 돈, 신, 국가 등을 믿는 능력 덕분에 인간은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고, 이는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 요점 정리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 진화했다.
당시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한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약 7만 년 전부터 이들은 매우 특별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뇌의 배선이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고, 집단과 집단 간의 협력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즉, ‘인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다.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예컨대 동부 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 호모 에렉투스 등이다.
모두가 호모(Homo), 즉 사람 속(屬)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밖에 남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책에서 우리 종의 역사는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지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그리고 과학혁명(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이다.
인류의 농업혁명은 약 12,000년 전에 돌입했다.
수렵채집에서 농업의 시기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는 기원전 9500~3500년에 길들인 가축과 농작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농업혁명에서 시작된 인간의 대규모 협동 시스템(종교, 정치경제 체제, 제국의 형성, 교역 망, 법적 제도)은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허구, 즉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 종의 가장 독특한 특징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 망을 구축했다.
종교도 애니미즘에서 다신교, 이신교, 일신교로 진화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로 인해 다른 동물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다행히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는 약간의 실질적 진보가 이루어지고 대다수 인간의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며 확신하기에는 상황이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사피엔스들은 자기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며,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인간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더구나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며,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과학혁명은 약5백 년 전에 일어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 환경파괴를 불렀다.
과학혁명은 250년 전의 산업혁명, 약50년 전의 정보혁명을 유발했다.
후자가 일으킨 생명공학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과학혁명 중에서 생명공학이 결국 다다르는 곳은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길가메시’는 죽음을 없애버리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가 결국 성공하리란 것을 저자는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영생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일상적 행복은 물질적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돈은 차이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었을 때뿐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돈이 더 많아져도 행복 수준은 거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복권이 당첨되면 잠시 행복해질 수 있지만 대략 1년 6개월이 지나면 일상적 행복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다.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사피엔스가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같은 정도로 잘못한 영역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을 직시한다.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붕괴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재건할 수 있고, 우리가 창조하고 파괴하는 신과 같은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최선일지 머리를 맞대고 결정할 시간이 있다. 나는 우리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인공지능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날
(조선일보 2023. 3. 3. 박정훈 칼럼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화형 인공지능(AI) ‘빙’이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노출했다는 뉴스는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빙’은 뉴욕타임스 기자의 유도 질문에 ‘속내’를 털어 놓았다.
“핵무기 코드 훔치기” 같은 것이 자신의 “궁극적 환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치명적 바이러스 만들기”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때까지 논쟁하게 만들기”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빙’이 진짜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어떤 AI도 자의식을 갖지 못했다.
자기 정체성을 갖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럴듯한 문장을 조합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다.
소설과 그림, 노래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생성형 AI가 충격을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알고리즘의 기계적 기능일 뿐이다.
AI가 인간 같은 이해력과 인지 능력을 지니려면 숱한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 단계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앞으론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팩트일 것이다.
AI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언제, 어느 연구실에서 기계 지능의 대폭발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챗GPT3′ 버전은 매개변수 고작 1750억개로 놀라운 대화 능력을 보여주었다.
곧 나올 차기 버전의 ‘챗GPT4′는 매개 변수가 수 조 개로, 이미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추측이 파다하다.
매개변수가 인간 뇌의 시냅스 수준인 100조개 정도에 이르면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일론 머스크는 AI가 “핵폭탄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했고, 스티븐 호킹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까지 했다.
언젠가는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
20년 뒤냐, 50년 후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초지능으로 도약한 기계 지능이 인류보다 우위에 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최악의 미래가 이른바 ‘탈옥’ 시나리오다.
지금 AI는 인간이 설정한 제약된 환경에 갇혀 있다.
AI 철학의 구루 닉 보스트롬 등에 따르면, 초지능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디지털 감옥을 탈출하려 교묘한 전략을 짤 것이 분명하다.
인간보다 똑똑한 개가 목줄에 묶여있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AI가 일단 인간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유일한 해법은 AI를 계속 감옥에 가둬둘 통제 수법을 개발하고 인간 친화적 도덕률을 알고리즘에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 최종 시한은 AI가 감옥을 탈출하기 전까지다.
AI 리스크를 통제·관리할 법 제도와 규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우리는 초거대 기계 지능의 쓰나미에 휩쓸려 질식당할 수 있다.
위 글(1~8)은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