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단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쓰이는 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 마음이 무엇이며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음은 무엇일까? 신경계의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수물인가?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실제일까?
또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마음이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단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마음 즉 의식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크게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는 근세에주장된 심신이원론과 몸과 마음은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것이라는 현대의 심신일원론의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최초로 심신이원론을 언급한 사람은 심리철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정신적 실체와 물리적 실체로 이분되어 있으며, 이 두 부분은 송과선라는 구조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라고 주장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 주장은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특성은 순수 물리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이 발달하면서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됐고 또한 물질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명확하게 나눠질 수 없다는 ‘심신일원론’이 학계에 지배적이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에는 상호작용론과 그 모순점들을 벗어나려했던 부산현상론(극단적유물론)과 그에 반하는 역부산현상론 그리고 이 둘을 함께 취하려했던 병행론 등이 있다. 일원적 심신관계이론에는 행동주의로 대표되는 유물론과 경험적 유물론인 동일성이론등과 주관적 관념론(유심론) 등이 있다. 동양적인 생각과 유사한 서구의 이론으로는 스피노자와 그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는 스트로슨의 양면이론이 있다.
[2] 몸은 악의 근원인가? 그렇다면 악이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인가?
선과 악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데블스 어드버킷>에서는 항상 승소하기만 하는 젊은 변호사를 통해 논하였고, <양들의 침묵>에서는 약간은 비정상적인 의사와 새내기 FBI요원을 통해 논하였고, <드라큐라2000>에서는 드라큐라와 그를 죽이려는 노신사를 통해 논하였다.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만큼 주장되어지는 것도 다른데 <데블스 어드버킷>에서는 "인간의 삶 속에는 언제나 선을 유혹하는 악이 있다, 선의 근처에는 항상 악이 있다, 악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라는 것이 있고. <양들의 침묵>에서는 '선과 악은 하나의 동전과 같은 것으로 앞·뒷면이 있어야 하나의 동전이 되듯 선과 악도 같이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은 공존하고 있다.'라고 조장하고 있으며 <드라큐라2000>에서는 '선은 악을 선으로 인도하여 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주장의 바탕은 "오로지 선의 추구만이 정당화 될 수 있다."라는 선의 추구에 있다. 그러나 선의 추구만이 인간의 진정한 도리일까? 선을 추구하는 것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양들의 침묵>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이 영화에서 렉터 박사는 악의 대표적 모습으로 나오며, FBI요원인 클라리스는 선의 대표적 인물로 나온다. 연쇄살인을 해결하고자 클라리스는 렉터 박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상처를 치유받고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얻게된다. 이 내용을 봤을 때 과연 선만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선만 추구한다면 렉터박사(악)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았어야 하며, 자신의 가슴 속 상처도 치유받지 못했을 것이다. 또 렉터 박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탈출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오직 선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옳은 일이 아니며 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악의 대표적 인물인 렉터 박사가 오로지 악하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클라리스의 상처를 치유해 줬으며, 미궁에 빠진 수사의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렉터 또한 악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경우는 어떠한가?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나중에는 쾌감을 느낀다. 그러고 렉터(악)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득(상처치유, 사건해결)을 얻는다. 그러므로 클라리스 또한 착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화의 기본적 바탕인 <선의 추구>는 인간에겐 선과 악의 양면적 모습이 함께 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악의 비중 조절 혹은 억제의 노력으로 선의 비중을 늘리되 악의 비중을 줄이며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드라큐라2000>에서는 드라큐라 본성은 매운 선한 사람이였으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정반대의 매우 악한 사람이 되어 반그리스도적 세력이 되었다는 개념 아래에서 드라큐라를 죽이는 세력들로 인하여 영생을 잃고 다시 죽게되면서 선으로 귀환한다는 내용으로 선의 추구만을 부각시키고 있으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산과 악의 이중성을 띄고 있어, 오직 선의 추구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생각된다.
[3] 왜 우리는 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인가?
오늘날의 구체적인 몸담론들과 관련하여(연예인 누드, 웰빙 기타) 말해보자.
현대는 바야흐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다. 아마 현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자의 대상'이라 말 할 수 있겠는데, 과거에는 외부의 상품들, 예를 들어 부동산이나 은행의 금융상품에 투자를 했다고 하면, 오늘날에는 그보다는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상품에게 투자를 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젊은이들이 한푼이라도 모아 저축통장을 만드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한푼이라도 모아 헬스클럽이나 요가강좌에 등록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계획을 세워 보아도 예상과 다르게 변동하는 주가와 달리, 자신이 운동한 만큼 정직하게 표현하는 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 관리 능력의 향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기 관리 산업은 개인의 호오와 관계없이 지나치게 팽창하고 있으며,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넘어서서 그것을 선택하도록 엄밀히 말하면 소비하도록 부추김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이른바 '웰빙(well-being)'이라 불리는데, 언론에서 보도하는 소위 웰빙족의 생활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 명상과 요가를 한 뒤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육류보다 야채 중심으로 고르되 반드시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며, 오후에는 아로마테라피 요법을 곁들인 스파와 마사지와 스킨 케어 등을 받는 등의 수순을 밟고 있다. 웰빙을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해당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행복과 안녕을 뜻하지만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중시하는 태도와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이다. 최근 여행과 레저 등 인생을 즐기며 자연을 누리고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웰빙은 완전한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패션과 인테리어, 뷰티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쳐 하나의 트렌드처럼 여겨지고 있다. 요가나 명상, 자연 성분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 핸드메이드 제품의 사용, 채식 위주의 식생활, 아로마테라피 등은 모두 웰빙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러나 웰빙의 정신에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도 따라하기는 쉽지 않다. 일간스포츠 웰빙족 특집기사에 따르면 허브와 머드, 해초 등이 가미된 스파와 호텔에서 내놓은 유기농 식사, 피트니스, 마사지 등이 포함된 ‘웰빙 패키지'등은 코스에 따라 20만∼80만원이 드는 고가의 서비스다. 과연 진정한 월빙인지 의심케한다.
첫댓글[3] 선과 악에 대한 기독교적 신화 가운데 하나가 악은 선의 결핍이지만, 이 결핍은 충만한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키고, 따라서 선에로 귀결되게끔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선에 종사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입장입니다. 앞서 언급된 영화에서의 모순도 그런 사고에서 비롯된 겁니다.
첫댓글 [3] 선과 악에 대한 기독교적 신화 가운데 하나가 악은 선의 결핍이지만, 이 결핍은 충만한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키고, 따라서 선에로 귀결되게끔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선에 종사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입장입니다. 앞서 언급된 영화에서의 모순도 그런 사고에서 비롯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