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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 (겔98)
찬송 :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성경 : 겔43:1-5절
‘목사의 이사할 집 찾기’가 금주간 나의 급한 과제다. 어제 사무실과 밖을 오가며 집 찾기는 시간을 가졌다. 4식구가 살기엔 너무 작아서, 집이 곰팡이가 있어서, 돈이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곳을 보았지만, 주님이 준비하신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집이 없어 집을 찾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분들의 힘겨움을 조금 공감하는 시간이 되어 감사했다.
목사로서 집을 얻기가 힘들어 어제의 묵상 주제인 ‘거룩’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 이래서 아침에 주님이 ‘거룩’을 묵상케 하셨구나! 생각하며 힘을 내었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니며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형편이 더 어려운 분들은 얼마나 힘겹고 절망이 올까를 생각하며 작은교회를 섬기는 내게 이런 시간들을 가지게 하신 주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주님, 이 종이 오늘도 주님의 레슨을 잘 받아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종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오후에 작은교회 교육의 대안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역이 중단된 시간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세 사람이 소중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주님, 이 모임을 축복하셔서 작은교회 교육의 대안이 세워지고 한국교회 교회교육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바삐 움직여야 할 이날 어떤 말씀으로 주님은 나를 인도하실까?
본문은 무려 19년 전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그 동문을 통해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10:18-22, 11:22-24)이 바로 그 동문을 통해 다시 완성된 성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2-5절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19년의 절망을 딛고 이 영광을 보는 에스겔 선지자의 심정이 얼마나 흥분되어 뛰었을까? 선지자로 성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백성들에게 멸망을 선언해야 했던 선지자 ...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듣지도 않는 백성들속에 19년을 견디면서 묵묵히 자기 사명을 감당하던 선지자는 오늘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동문을 통해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더 나아가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있다. 19년의 절망스런 사역을 견디며 65번이나 하나님의 예언이 전달될 때마다 순종의 길을 걸어온 선지자의 그 발걸음을 묵상해 보는 아침이다.
문득 주님의 발걸음이 생각되며 이 찬양이 생각난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19년의 65번의 예언을 전하며 절망 또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 이제 영광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그 에스겔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감히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감격과 눈물을 ... 주님~
그러면서 에스겔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소리로 표현하며 그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그룹으로 둘러싸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룹들의 날개소리라고도 한다. 그러나 굳이 성경이 밝히지 않은 것을 밝힐 이유는 없다. 그저 영광이 임하는 소리가 많은 물소리처럼 즉 굉음처럼 들려졌다는 말이다. 감히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
그리고 그곳이 영광으로 빛났다고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이다. 그분은 어둠이 없으신 분이시다. 성전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고 환한 빛으로 임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3절에 그분의 영광은 ‘성읍을 멸하러 올때에 보던 환상 같다’고 한다. 그렇다. 심판과 구원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그분은 심판할 때나 구원할 때 동일한 모습이라는 사실이 매우 울림을 가지고 들려진다.
인간은 심판할 때와 구원할 때 얼굴이 달라진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이 되고 말투와 표정이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심판 때와 구원의 때에 얼굴이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그 엄위하심과 높으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을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보던 환상과 같다.’고 한다. 이것은 1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겔1:26절은 ‘그 보좌의 형상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의 모습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사람의 모양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 하나님의 임재가 아름다운 것은 그분이 당신을 우리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소중한 존재임을 밝히시며 자신과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짧은 5구절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포기와 절망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시기 위해 성전의 회복을 보여주시고 그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을 통해 에스겔을 위로하시고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은 이렇게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한 이들이 성경에 네 명이 나오는데 바로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사도요한이다. 특징은 이들이 모두 어려운 때에 이 영광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사야는 앗수르의 침공의 때에, 에스겔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기, 사도요한 로마제국의 박해 곧 극심한 환란과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의 보좌를 보여주셨다.
오늘 대한민국은 코로나로 매우 심각한 예배 중단의 때를 만나고 있다.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세상이 하는 말이고 예배는 영상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교회는 심각한 갈등과 위기를 만나고 있다.
세상은 마치 교회가 코로나를 만든 것처럼 교회를 향해 욕을 하고 있어 어떻게 말도 못하는 안타까운 교회가 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때도 아니다. 이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지 거의 7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때 주님은 다시 성전에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주님은 떠났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변질되었지 하나님은 조금도 변하시지 않으신다. 아멘. 아멘.
이 찬양의 가사가 떠오른다.
‘변찮은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볼 때까지 .... ’
참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 땅과 교회를 향해 그리고 내 삶을 향해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그분이 신실하심으로 오늘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권능과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통치하시고 계심을 말이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이란 삶의 자리에 절망하지 않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주어진 자리를 지켜내며 거룩한 빛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