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마르티네즈 소말로 추기경
바티칸
역대 교황들이 곁에 두려했던 소말로 추기경 선종
스페인 출신 마르티네즈 소말로 추기경이 바티칸에서 선종했다. 향년 94세. 소말로 추기경은 2004년까지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수도회성) 장관을 역임했다. 소말로 추기경은 지난 200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 당시 궁무처장으로서 공석인 사도좌를 책임지는 등 젊은 시절부터 교황청의 중요한 소임을 담당해 왔다.
Alessandro De Carolis / 번역 이재협 신부
“고귀한 인품”과 “근엄함 속의 온화함”. 이는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기억하는 에두아르도 마르티네즈 소말로(Eduardo Martínez Somalo) 추기경의 모습이다. 소말로 추기경은 2007년 3월 31일 생일을 며칠 앞두고 정년에 따라 교황궁무처장직을 사임하겠다는 서한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게 보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답신을 통해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거두고 진정한 존경을 표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2007년 4월 4일 보낸 서한에서 “고귀한 인품”과 “근엄함 속의 온화함”이라는 표현 외에 “열성, 역량, 사랑” 등의 단어로 추기경을 기억했다. 교황궁무처장을 역임하던 소말로 추기경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 당시 임시로 교회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답신에서 사도좌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 사제이자 주교인 소말로 추기경에 대한 “진실된 평가”를 발견할 수 있다.
온 세상에서 로마로
지난 8월 10일 오전 바티칸의 거처에서 선종한 소말로 추기경의 삶은 그의 초기 직무에서부터 로마와 깊은 인연이 있다. 사제 서품 전 이미 그는 고향인 스페인 바뇨스 데 리오 토비아를 떠나 로마에서 공부하라는 소임을 받았다. 그는 로마 교황청립 스페인 기숙사에 머물며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과 교회법을 전공했다. 미래의 추기경은 1950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고 출신 교구인 칼라호라-라칼자다로그로뇨교구로 귀국한다. 이후 소말로 신부는 다시 로마로 떠나는데, 이번에는 교황청의 미래 외교관을 양성하는 교황청립 외교관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1956년 8월, 소말로 신부는 스페인어 책임자로 국무원에서 교황청의 첫 직무를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소말로 신부는 1968년 제39차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콜롬비아 사도적 순방길에 오른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동행하기도 했다.
막중해지는 책임
14년간 바티칸에서 소임을 수행한 소말로 신부는 1970년 4월 주 영국 ‘사도좌 대리(Delegazione apostolica)’ 참사관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6개월 뒤인 같은 해 10월, 교황청 국무원은 소말로 신부를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조반니 베넬리(Giovanni Benelli) 대주교를 보좌하는 국무차관으로 임명해 다시 로마로 불러들였다. 소말로 신부는 5년간 국무차관의 임기를 수행하는 동안 교황청의 여러 부처 사람들과 잘 협조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유머감각 있고 사람들과 함께할 줄 알며, 특히 고통받는 세상에 많은 관심을 둔 소말로 신부의 모습을 사랑했다. 1975년 11월 12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소말로 신부를 대주교로 임명하고 주 콜롬비아 교황대사로 파견했다. 이로써 소말로 대주교는 다시 로마를 떠나게 됐지만, 교황청은 4년 만에 그를 또 다시 로마로 불러들였다.
추기경의 시간
197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소말로 대주교를 교황청 국무원의 국무원총리 대리로 임명했다. 그는 1988년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했다. 소말로 추기경은 1988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으로 임명돼 1992년까지 재임했다. 이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수도회성) 장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