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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0~21그림책을 보는 눈에 문득 어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부엉이와 보름달》을 보던 때였습니다. (…) 저는 부엉이를 보러 나온 것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르는 아빠와의 부엉이 구경. 조용히 해야 하고, 제 몸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하고, 무서워도 용감해야 하고, 못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아...
P. 43처음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이건 선택에 관한 이야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선택받으려는 자, 선택해야 하는 자들에게 닥치는 예측 불가하고 아이러니한, 뒤통수 제대로 치는 결과를 보아라.’ 백만 마리 고양이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P. 64~65“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연탄이었던 적 있는가?”라고 물은 시인도 있지만, 이 작가들은 ‘너는 네 트랙터를 이렇게 인생 전체를 걸고 지킨 적 있는가?’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연탄은 결국 재가 되고, 아이가 지키지 못한 트랙터는 홀로 녹슬겠지만, 중요한 건 뜨겁게 지켰던 ‘적’이 아닐까요.
P. 81~84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 어린 시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미움과 아픔 같은 부정적 감정도, 기쁨과 희망 같은 긍정적 감정도, 황홀한 맛이나 촉감 같은 감각의 원천도 어린 시절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어린 시절에서 찾고, 지금의 결핍을 그때로 되돌아가 충족시키기도 합니다. 어린 나는 지금 나의 해답이며 해결이며 목적지일 수 있습니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충만하고 너그럽고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 어린 나에게 위로 받고 격려 받아 새 길을 나설 수 있게 해 주는 책. 그림책에 대한 저의 정의에 또 한 줄이 보태졌습니다.
- ‘세상을 헤매고 헤매다 돌아가는 그곳’ 중에서
ㅁ 출판사 제공 책소개
“어른이지만, 아니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청소년 문학 평론가 김서정의 첫 그림책 에세이
인생이라는 한밤중, 한겨울, 깊은 숲속에서
나만의 부엉이를 만나는 시간!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까닭
어린이의 세계에서 솟아오른 엄청난 에너지
최근 10여 년 사이, 그림책 분야에서 생겨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구매하는 어른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저자 김서정은 이 현상의 본질을 “다른 예술 장르는 어른의 영역에서 아이들의 영역으로 내려오지만, 그림책만은 아이들의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솟아 올라간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토록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그림책이 자신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와 때로는 섬광처럼 삶의 비의(秘義)를 보여주고 때로는 봄볕 같은 위로를 건넸던 순간들을 이 책에서 낱낱이 펼쳐 보인다.
저자의 인생 그림책 목록 첫 줄을 차지하는 책은 《부엉이와 보름달》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때를 저자는“어린아이들이 주로 보는 책”이라고 여겼던 그림책을 보는 눈에 그야말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림책 속 가족의 통과의례인 ‘부엉이 구경’은 저자에게 와서 한겨울, 한밤중, 깊은 숲속 같은 삶을, 그래도 끝까지 걸어 내야 하는 이유로까지 확장된다. 그림책이 어린이의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솟아 올라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줄 안 되는 글에 몇 쪽 안 되는 분량”이지만 그 안에 삶의 진면목을 담을 수 있는 장르라는 점 말이다.
어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 처방전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는 그저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그림책이 불쑥, 혹은 새삼 저자의 마음에 파고들어 삶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만든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비평가로서 분석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로서 순순히 감탄하고 감동하고 위로받은 순간을 솔직하게 기록한 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비평적 텍스트이자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 처방전이기도 하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책의 1부에는 저자에게 삶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엿보게 해 준 그림책 이야기를 모았다. 저자는 젬베 앙상블 연습실에서 ‘노예의 음악’이라 불릴 만큼 단조롭고 반복적인 리듬의 둔둔을 연주하다 문득 그림책 《키오스크》를 떠올린다. “우리 실존의 기본 조건이 키오스크(신문과 잡지 따위를 파는 작은 가판점)”라는 깨달음을 안겨 주는 동시에, 좁아터진 자리의 지루한 일상에 충실한” 너와 나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 그림책이다. 현대 그림책의 시작이라 일컬어지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찾지 못했던 그림책 《백만 마리 고양이》는 긴 시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의미로 저자에게 다가든다. 정답이라 여겼던 선택이 꼭 정답만은 아니고, 오답이라 여겼던 선택이 꼭 오답만은 아닐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일깨우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저자 안에서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와 회한으로 돌아보는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책으로 완성된다. 저자는 《트랙터도 데려가》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한때의 순정한 타오름”을 상기시키고,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으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 준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게 해 준 《나의 호랑이》와 “어린 나에게 위로 받고 격려 받아 새 길을 나설 수 있게 해 주는” 그림책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 준 《돌아와, 라일라》 이야기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2부에서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화두로 던지는 그림책을 톺아 본다.
그중 백미는 수많은 대한민국 엄마를 반성하게(?) 만들었던 그림책 《고함쟁이 엄마》에 대한 새롭고도 통쾌한 해석이다. 아이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양육자라면 더없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자는 곧이어 《록사 벅슨》을 들이대며 지나친 안전주의로 아이들에게 자유 놀이를, 부딪치고 다치고 깨지며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부모가 물러나야 아이들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세 권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 《꼭 잡아 주세요, 아빠》, 《메두사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양육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3부는 저자가 분더캄머(비밀의 방)에 간직하고 싶은 그림책, 수많은 보물을 간직한 분더캄머로서의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책은 아니지만) 저자를 어린이 문학의 길로 이끈 길잡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60가지 판본에 실린 다양한 일러스트를 모은 책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를 시작으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서 철학적 깊이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국내외 그림책들를 소개한다. 이 분더캄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림책은 질 바클램의 《찔레꽃 울타리》다. 여러 해 전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돌아온 저자의 복잡한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고 더없이 무해하고 다정한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로 채워 준 그림책, 그 아름다운 판타지를 독자와도 함께 나누고 싶은 까닭이다.
반평생을 그림책과 더불어 살아 온 저자의 인생 그림책 리스트(물론 그림책에 진심인 작가들이 있는 한 저자의 인생 그림책 리스트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될 것이지만)는 어린이 못지않게 위로와 인정,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어른들에게 맞춤한 그림책 처방전이 되어 줄 것이다. “인생은 한겨울 한밤중 깊은 숲속이지만, 우유 같은 눈과 환한 보름달과 부엉이가 있는 곳입니다. 나는 추위와 두려움과 실망에 맞서며 그 숲길을 지나 부엉이와 드디어 눈을 맞추는 어린아이입니다.”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도 흰 눈 같고 환한 보름달 같고 부엉이 같은 자신만의 ‘인생 그림책’을 만나기를 바란다.
ㅁ웹사이트 링크 주소:https://aladin.kr/p/ZSX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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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좋아하는 김서정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