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제일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내팔자 탓이지.
*
읍내 약속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탕가리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노가리 꾸어먹을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오토바이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니까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
뒷산 음침한데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등짝을 치근대니까
피가 아랫도리로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쑤욱~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아~악!
외마디 비명 한번에
볼장이 끝장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콧물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 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ㅡ이정록
카페 게시글
◐――― 자유게시판
음침한대로 데리고 가더니 자빠뜨리더라고
삿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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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5
24.11.19 14:5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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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삿가스님
(이정근 소설 작가님)
반갑습니다
시월의 마지막밤 행사 에서 처음 만났지요
처음에는 누군지도
몰랐지요
작가님이 주신 병자호란 장편 소설책
조금씩 읽고 있지요
삿가스님
다음에 또 뵙기를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