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리며,조심스럽습니다.
이 와중에 복잡한 분위기를 달려래고,
매일 부족하나마,글을 적고, 댓글을 적습니다만....
모래사장에 수많은 글씨들을,
바닷물결이 다 덮어줍니다.
상처를 덮으려는 좋은 의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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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사춘기가 시작되려나 보았다.
막연한 그리움,기다림.......
괜히 눈물이 나고,
맘속에
누구에게도 말못할 그리움이 차올라,
그 열심이던 공부도 등한히 하게 되었다.
그 첫대상은 교회오빠(목사님 아드님...)
기타를 치고,찬양을 너무 멋있게 하던 오빠.
늘 내게 좋은 말과 미소로 용기를 주던 오빠셨다.
하얀얼굴에 긴 손가락.나지막한 목소리,
안경너머의 따뜻한 미소.......^^
그 당시 우리 달동네 모든 소녀들의 로망이었다.
한동안 그에게서 헤어나오질 못하다가,
수줍게 편지를 건네었지만,
그는 여전히 좋은 오빠일 뿐이었다.
( 그 오빠는 역시,목사님이 되셨다.
현재 제법 큰 교회를 맡고 계신다.)
그 오빠의 권유와 설득으로
다시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고
부모님의 기대대로...
제법 좋은 여자 명문대학엘 갔다.
대학만 가면,되리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공부보담은 연애가 우선인 여대,
온갖 의상실과 미용실이 즐비한 그곳...........
다들,화려한 대학문화를 즐기고 있었지만,
난 대학학비를 벌기위해,기숙과외선생을 하였는데...
거기서 또 한 사람을 만난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의 오빠.
내가 다니던 옆 대학에서 학보사편집장,
그리고 운동권이었다.
그 오빠와 함께,나 또한 잠시동안
데모와 모임에 나가기도 했지만,
맘이 여린 나는,공장 취업대신
결국 제 2선에서 야학과 시설봉사를 했다.
(제 2선의 활동을 권한것은 그 오빠셨다.
네 형편에,부모님과 동생들을 돌보아야한다고....)
그 오빠는 한동안,운동권으로 활동하셨으나,
그 이후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뽀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문정희 / 찔레꽃 중에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네에!!맞습니다....^^
다들 자신만의 우물이 있죠..
그 우물안을 들여다 보면,스스로
정화되는 듯 하더이다......^^
늘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시원하게 보내셔요~~^^
가장 인상적인 닉네임중 하나.그리움하나님.
울카페 닉네임 콘테스트가 있다면
대상감 입니다.
잔잔한 추억을 그리는 글.
그 글속에 같이 풍덩~하고 빠져들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다다닥님^^
다들 마음에 그리움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평범한 닉인데.,.,이리 잘 봐주시는 것을 보니요.ㅎ
글을 인상깊게 잘 쓰시더군요.
좋은 글로 만나뵙지요!!
더운 여름,건강하세요~~^^
그리움하나님
애잔한 글~속에 옛추억에
저도 그쪽 의상실과 강촌을 갈수있는 기차역이 있던곳~~
제가 늘 애정했던곳이고
지금도~
그리움하나님 덕분에
추억여행을 다녀왔네요
오늘도 덥네요
시원한 밤 되셔요
아....그러시군요?ㅎ
맞습니다...요즘은 더더욱 변해서,
학교 앞같지가 않더군요...ㅠㅠ
강촌가는 기차역에서, 수업도 빼먹고
기차타고 다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건강하세요!!
80년대 초 우울한 시기였지요
10.26으로 학교폐쇄되고 80년도엔 거의 한학기는 학교를 못다녔지요
당시 위장취업했던 선.후배중에 요즘 정치권에서 이름을 볼수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분은 아주 가까웠던 분도 있고...
당시 신촌에서 교외선 타고 가면 (지금은 일산신도시가 되었지만) 논밭있던 허허벌판 백석역 근처에 '화사랑'이란 조그만 카페가 있었는데 그후엔 좀 알려지니 그근처가 유흥가처럼 변해버렸던 기억도 나는군요
앗! 너무 깊이 발을 담갔나봅니다. 빠지기전에 얼른 빼야겠습니다
어머...그옆학교?
다니셨나봅니다...^^
맞습니다..
저도 화사랑에 몇번갔었지요!!
제가 80학번..첫학기 휴학하고...
격동기였습니다....ㅠㅠ
< 반갑습니다 ^^>
동시대를....같은 곳에서
보낸분이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