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2월 31일(정확히 말하면 2001년 1월 1일이겠지만)을 끝으로 서울 공연을 마무리한 서태지의 콘서트 '태지의 화'는 공연 내적, 외적인 면에서 모두 생각해 볼만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공연이었다.
이젠 '전설이 된 남자'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이후 처음 갖는 공연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엄청난 예매속도와 고가의 암표거래 등으로 이미 화제를 모았던 이 공연은 국내 공연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생각해볼만한 부분들을 담고
있었다.
>>> 국내 록페스티벌의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 <<<
우선 이 콘서트의 '공연 형식 자체'이다. 서태지의 단독 콘서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내 언더그라운드의 익스트림 록뮤직, 즉 핌프록이나 하드코어, 혹은 데스메틀 성향의 밴드들과 힙합 팀들 역시 하루에 세 팀씩,
그리고 31일 공연에는 무려 8팀이 참여해 7시간(12월 31일 밤 10시부터 1월 1일 새벽 5시까지)에 걸친 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국내 '록 페스티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어느 언론에서 우드스탁 페스티벌과 비교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개념상으로는 콘이 중심이 되어 여러 핌프록/힙합 뮤지션들이 무대에 서며 미국을 순회하는 패밀리 밸류투어(FAMILY VALUE TOUR)에 가까운 것으로서, 서태지의 콘서트 역시 서태지라는 거물이 중심이 되어 다른 익스트림 록/힙합 뮤지션들을 여러차례의 콘서트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짐으로서 국내 록 페스티벌의 또다른 형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록계의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계획으로 종종 시작도 전에 무너지는 록 페스티벌과 달리, 전국을 돌면서 꾸준히 다양한 밴드들을 홍보하는 이런 방법은 참여밴드를 적절히 선정해나간다면, 앞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있는 록 콘서트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태지 이외의 록음악과 라이브무대에 관심을 갖게한 공연!<<<
그리고 이와 맞물려 서태지의 콘서트는 참여한 언더그라운드 밴드나 서태지의 공연을 보기위해 모인 그의 팬들에게 무척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을 듯 싶은데,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경우는 지 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수의 팬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대형 콘서트의 맛을 알게 됐을 듯 싶고, 서태지의 팬들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
도 제대로된 무대와 사운드만 갖춰져 있다면 충분히 자신들을 매혹시킬 만큼의 음악성을 가진 밴드들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이니 썬'이나 '디아블로' 같은 밴드가 5천 여명의 관객 앞에서 그런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음악에 맞춰 서태지의 팬들이 열광적인 슬램을 보여준 것은 거의 '문화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이후 이들의 음반 판매량에 얼마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서태지의 팬들이 그간 있었던 안티 서태지나 몇몇 언더
밴드와의 공방으로 생겼던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더불어 '서태지 이외의 록 음악'과 라이브 무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는 충분히 되었을 듯 싶다.
특히 31일 공연에서 믿기 힘들 정도의 헤비함과 전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 '레이니선'이나 박력넘치는 무대를 선보인 '디아블로', 활기넘치는 랩을 들려준 '45RPM' 등의 무대와 팬들의 반응은 언더그라운드도 충분히 대중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적어도 콘서트에서만큼은 국내 언더밴드를 돕고 싶다던 서태지의 바램이 실현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보다 오히려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은 공연 주최측의 안전관리와 공연진행이었다. 이런 류의 스탠딩 록 콘서트, 특히 서태지같은 슈퍼스타의 공연은 공연 자체도 문제지만 안전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오르곤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공연장 플로어의 바리케이트와 각 객석의 진입로에 서서 안전을 관리했다.
전문 경호업체가 경비를 맡은 까닭인지 공연마다 늘 일어나던 관객과 스탭의 실랑이라든가, 안전을 이유로한 과잉 통제같은 것이 없어서 팬들이 기분좋게 공연을 볼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스탠딩 콘서트라는 점을 고려해 관객에게 물을 준다든가, 31일 공연의 경우 팬들을 위한 빵과 음료 등을 제공한 것, 그리고 비교적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물품 보관소의 마련같은 것은 작지만 성의있는 배려였다. 이런 모습들은 앞으로 벌어질 많은 록 페스티벌들에 소중한 노하우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핌프록'으로 일관한 대형 콘서트! <<<
뿐만 아니라 서태지의 콘서트는 그가 처음으로 일관된 록 성향의 콘서트를 한 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콘서트였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장시간의 핌프록 콘서트에 맞는 정확한 톤을 잡은 사운드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하는 것을 비롯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워낙 다양한 음악 세계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사운드의 문제로 그의 솔로 첫 앨범(혹은 5집)곡을 연주 못하는 상황(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짧은 시간 내에 5집의 사운드 톤을 잡아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5집 연주를 미루게 되었다고 한다)에서 그의 이전 앨범 곡들을 과연 어떻게 밴드 음악으로 편곡할 것이냐는 것도 궁금했고, 록 공연인만큼 우선 사운드에 신경써야겠
지만 이전의 공연들에서 탁월한 비주얼 능력을 보여준 서태지가 과연 이런 형태의 공연에 자신의 비주얼적인 감각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도 궁금증과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이었다.
>>> 핌프록의 에너지에 비주얼을 살린 공연!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서태지는 핌프록의 에너지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곡의 컨셉에 맞춰 비주얼적인 면을 살리는 방향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사운드적인 면에 있어서는 30일 공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스탠드부터 2층까지는 비교적 준수한 수준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소리가 상당히 뭉개져서 중저음 사운드만이 부각되어 기타 솔로에 필요한 톤이 묻
히거나 드럼 하이햇이 갈라진다는 점이 아쉬웠고, 31일 공연에서는 언더밴드의 공연시 마이크는 나름대로 소리가 파워를 실었던 반면 역시 하이햇이 갈라지고 스내어가 분명치 않게 들리며 드럼이나 기타의 헤비함이 덜 살아났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는 공연 중 악기간 세팅에도 어느 정도의 문제가 있었지만 공연장 자체의 문제도 있었을 듯 싶은데, 서태지가 비교적 규모가 작은 88 체육관을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최대한 사운드 전달을 잘 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체육관은 체육관이었던 탓에 사운드의 반사와 전달이 완벽하지 못했던 듯 싶다. 물론 공연장 양쪽이나 천정에 스피커를 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88체육관의 사정상, 그리고 장비의 문제상 그것까지는 바랄 수 없었을 듯 싶다.
하지만 다양한 톤을 쓰는 국내 언더 밴드들의 공연과 톤 잡기 어렵기로 유명한 서태지의 사운드를 한꺼번에 해결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라이브무대의 특성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사운드였다고 생각된다.
공연 자체로 보았을 때는 역시 예상대로 일관된 핌프록 성향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단지 곡 선곡이나 크게 바뀐 이전 앨범 곡의 편곡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눈 팔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이트하고 힘있는 무대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갔는데, '대경성'이나 '울트라맨이야' 같은 이번 앨범 곡들의 경우는 복잡한 톤이 쓰이는 연주는 과감히 제외하고 대신 헤비한 기타리프를 더욱 부각시켜 스트레이트하게 밀고 나감으로서 관객을 몰아치는 구성을 택했다.
>>> '대경성'에서 '너에게'까지... <<<
특히 첫 곡 '대경성'에이어 약간 템포를 조정하는 '탱크'가 지난 후 힙합 리듬이 믹스된 '오렌지', 핌프록 사운드가 더해진 '컴백홈'과 보다 헤비하고 빠르게 진행된 '울트라 맨이야'까지 이르는 곡의 전반부는 관객을 몰아붙이면서도 계속 새로운 충격을 주어 초반부터 분위기를 잡는 효과적인 선곡과 편곡이었던 듯 싶다.
그리고 이어진 곡들도 '슬픈 아픔'과 '아이들의 눈으로' 같은 곡들이나 'ㄱ나니?'정도의 곡들을 빼고는 모두 원곡에 비해 훨씬 스트레이트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일관성을 지켜나갔는데, '환상 속의 그대'는 원곡 자체가 후렴구에 록 사운드가 들어가는데다가 가사 자체가 상당히 파열음을 일으키는 딱딱한 분위기의 것이어서 록과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랩메틀곡으로 바뀌었다. 앞 부분의 편곡은 시도는 좋았지만 랩과 기타리프간에 리듬이 좀 맞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은 반면 뒷부분의 것은 후렴구의 원래 멜로디에 마치 블랙이나 데스메틀을 연상시키는 연주로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면서 곡 안에서 극적인 반전을 연출했다.
또 '컴백홈'은 록기타로 표현한 전주나 힙합의 전반부에서 핌프록의 후반부로 넘어가는 전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그러나 이런 곡들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앵콜을 제외한 공연의 마지막곡 '프리 스타일'이었는데, 상당히 가볍고 신나는 분위기였던 원곡
의 분위기를 후반부에 이르러 헤비한 베이스를 중심으로한 파괴적인 핌프록 스타일의 곡으로 바꾸어 확실한 공연의 마무리를 지었다. '컴백홈'에 비해서 관객들에게 그다지 어필한 편곡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사운드가 지니고 있는 헤비함 자체가 여느 핌프록 곡에서도 듣기 힘든 파워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공연에 새롭게 편곡된 곡들 중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곡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방나게' 관객을 몰아치는 록 공연의 구성으로서는 무척 뛰어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그러다보니 공연이 매끄럽고 일관된 파워를 지닌 반면 확실히 절정이라고 할만한 부분이 조금 약했던 것은 아쉽다.
아예 좀더 'ㄱ나니'의 비주얼을 강화했다거나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보여준 서태지의 솔로 무대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슬픈 아픔'과 '아이들의 눈으로'에서 모던록 스타일의 곡인 '슬픈 아픔'은 콘서트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렸지만 '아이들의 눈으로'는 팬들을 위해서는 좋은 선물이었겠지만 공연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싶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 비주얼적인 면은 공연의 특성상 이전 공연보다는 그 비중이 덜했지만 적절한 곳에 쓰이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프닝곡 '대경성'에 맞춰 약간의 시나리오가 등장하면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거나, 'ㄱ나니?'의 영상은 그전의 분위기를 지워내고 곡의 어두운 분위기를 유도했고, 그밖에도 '대경성' 등의 곡들에 곡의 흐름에 맞춰 편집된 감각적인 영상들과 앨범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가사등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를 유도했다. 특히 'ㄱ나니?'가 마무리 된 뒤 암흑 속에서 '인터넷 전쟁'을 암시하는 영상이 뜨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부분은 짧지만 음악과 영상이 잘 이어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번 공연의 비주얼은 이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보다 상당히 직설적이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이를테면 'ㄱ나니'에서 아예 악마의 날개가 크게 떠오른다든가, 아니면 '시대유감'에서 곡 시작과 동시에 가사내용에 맞게 '달'이 떠오르고, 서태지가 대형 신문을 찢는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점, 그리고 관객을 흥분시키는 록 공연의 특성상 이런 선택을 한 것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가사 자체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서태지가 이런 식의 직설 화법을 보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려면 좀더 대규모의 비주얼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뮤지션과 팬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
개인적으로는 서태지가 보여준 공연 이외에도 이 콘서트는 그의 팬들이 보여준 반응이 무척 흥미를 끌었는데, 컴백 초기만 하더라도 마치 서태지라는 카리스마의 결정체같은 인물에 눌려 그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던 팬들이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편안한, 뮤지션과 팬들의 의사소통이 보다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팬들이 서태지에게 '30살'이라고 놀린다든가, 웃으며 '아저씨'를 연호하는 모습은 그전까지 보여준 열광적인 슬램보다도 오히려 더 팬들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그런 모습들이야말로 팬들이 서태지를 '문화권력'이나 '지배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뮤지션으로서, 혹은 빼어난 엔터네이너로서 즐긴다는 증거일테니 말이다.
그 점에서 서태지의 이번 공연은 다양한 음악이 함께하는 록 페스티벌로서, 팬들에게 최대한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한 뮤지션의 공연으로서, '성공적인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