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 살아있다”
3.1 운동 직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는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젊은 여성 7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유관순, 대부분이 10대 중반에서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으니 그때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포의 밤을 달래며 서로 용기를 불어넣으려 옥중에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창가(唱歌)였던 셈입니다.
누가 가사를 썼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7명의 십대 소녀들이 함께 감옥 바닥에 엎드려 이 노랫말을 고쳐 써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불렀을 것입니다. 개성 호수돈여학교 졸업생이었던 심명철 지사의 아들(문무일 선생)이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받아 적은 가사에 음악감독 정재일이 곡을 붙인 것이 “대한이 살았다”라는
노래입니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노래에 나오는 ‘전중이’는 본래 가사에는 ‘진중이’로 되어있습니다. ‘전중이’의 오기로 추정합니다.
국어대사전은 ‘전중이’를 ‘징역살이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대부분 10대였던 그들은 기독교에서 세운 여학교를 졸업했고 기독교 신앙을 통해 민족 독립의식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걷지 못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돌아온 저녁에 감방에 함께 모여 그들은 피눈물로 기도했답니다.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를 격려했답니다.
여러 차례 간수들이 제지 했지만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래했고,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조국 해방의 광복의 그날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민족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