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6. 03월 첫째주 일요일 '혜명화'보살의 안내를 받아 등불과 함께 낯선 오룡골 정토원을 찾아 정목스님을 처음 친견하고 돌아와서 썻던 일종의 수행 기행문입니다. 필자가 굳이 오늘 이 글을 올리는 것은 한 불자의 눈에 비쳤던 당시의 정토원과 정목스님의 모습을 되새겨 보면서 염불수행 정진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해량 바랍니다.***
사람의 몸은 지 · 수 · 화 · 풍(地 · 水 · 火 · 風), 이 네 가지가 잠시 인연 따라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인연이 다해 흩어지면 한 점 구름이 소멸되는 그것과 다를 바 없는데 저마다 무슨 남겨 둘 사연이 그리도 많았던지 살아있는 중생에게는 짐이 되고 부담스럽기만 한 무덤들이 빼곡히 들어 찬 양산시 상북면 석계공원묘원, 그 입구에서 왼편으로 꺾어드는 차선 없는 좁은 계곡 길을 따라가면 정목스님의 염불수행 처 오룡골 정토원을 만날 수 있다.
맞은편에서 불쑥 차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비켜가나 싶은 조바심으로 주변 경관 같은 것은 눈여겨볼 겨를도 없이 모퉁이 모롱이를 서둘러 돌다보면 나무 판때기에 하얀 종이를 붙이고 검은 붓글씨로 「정토원」이라 쓰인 안내판이 눈에 잡히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어렵사리 길을 따라 온 수고는 방향표시가 없는 그 안내판 앞에 서서 길을 잃고 마는 황당함을 겪는다.
도대체 부처님의 땅이라는 극락의 동산 그 정토원은 좌측길인가? 우측길인가?
그렇다. 정목스님은, ‘그 험난한 가시밭길과 거센 풍랑과 파고(波高)를 견디며 속세를 헤매다가 인연 닿아 찾아 나선 길이라면, 그것도 저마다 구구사연들의 전생 업(業)을 안고 죽어서 즐비하게 누운 공원묘원 무덤들을 뒤로하고 찾아 온 길인데 굳이 무슨 방향표시가 필요 하느냐. 길은 네 스스로 찾으라.’는 묵시적 제도를 하고 계신 것이다.
방향표시가 없는 이 두 갈래 길 앞에 서서 나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신비한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인생이야말로 길 위에서 태어나고 길 위에서 사랑하고 길 위에서 죽어가는 하나의 길 없는 길임을 절실히 느낀다.”라고 쓰고 있는 소설가 최인호의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책의 머리글 한 부분을 떠올려보면서 인생의 길은 따로 정해져 있거나 이정표가 없는 것이니 길은 너희들 스스로 찾으라는 화살표 없는 길 안내판의 의미를 되새김 해 보는 것이다.
속인들의 의식이 늘 고만치서 머물고 있듯이 첫 길의 법우들은 거개가 번듯하게 다리 놓이고 넓혀져 포장된 좌측 길을 따라 오르는 한 차례의 미혹(迷惑)을 겪은 뒤에야 우측 모롱이를 돌아서 길 같잖은 길을 따라가야 정토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무아미타불()()()
길 끝의 돌고래만한 바윗돌에 새겨진 「정토원」 표지석을 지나 절 입구에 올라서면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야할 지붕에는 윤기 흐르는 기와 얹고, 추녀 끝에 풍경 달고, 대웅전 앞문은 닫혀있으며 댓돌위에는 눈이 부시게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향냄새가 그윽하게 퍼지는 그런 절은 보이지 않는다.
저 앞 당산나무 사이로 바위틈에 보이는 움집 같은 극락전과 아미타전, 기와는 얹혔지만 건사할 이 없는 촌로(村老) 부부가 촛불 켜고 앉았을 것 같은 간소한 염불전이 있고, 그 뒤편에는 청정한 왕대나무 숲이 사군자의 위용을 지키며 성글게 에워싸고 있는데 이런 겉모양의 정토원 정경을 보고서야 어찌 “면도날처럼 기가 살아 있는 중, 생사의 허물을 벗기 위해서 백척간두에 홀로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시퍼런 중이 되고 싶다.”던 저 최인호의 여망을 실현하고 계시는 큰스님, “지혜로운 이 들이여,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어떤 스님보다도 철저하게 실행하시는 선지식이 계시는 도량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뿐이랴, 계곡을 건너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 절집 마당에 다가서면 무량이, 진구, 아리라는 세 마리의 개들이 쪼르르 뛰쳐나오고, 컹컹대는 개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모습을 내미는 정목스님의 겉모습을 보면 장엄한 가사장삼을 두르고 정적뿐인 도량의 바람을 가르며 위엄을 뽐내는 그런 큰스님의 모습은 다만 우리들 통념상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이 바로 느껴지는 첫 대면이 생경스럽기마저 하다.
옷차림이며 도반을 맞이하는 꾸밈없는 모습이 어찌 보면 60·70년대 지역사회개발을 이끌어 왔던 새마을지도자를 닮기마저 했는데 우리들 관념상의 분별의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정토원과 정목스님의 모습만으로도 정수리에 내려 꽂히는 섬광 같은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오룡골 정토원은 백중, 동지와 같은 큰 재(齎)를 올리거나 대중불사(大衆佛事)를 일으켜 절 살림을 꾸려가지 않는 청빈한 염불수행도량이며, 정목스님은 의례적 기복불사(祈福佛事)로 정법 신심을 어지럽히거나 대웅전 건립 기와불사 등을 크게 일으켜 도반들의 동참을 유도함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갖도록 하는 일은 정통(正統)불교의 수행과는 거리가 있는 전통(傳統)불교의 문화적 산물임을 이해시키면서 불자이면 누구나가 편안한 마음으로 염불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정법 전도에 전념 하시는 법사이시다.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의 확암〔廓庵〕선사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선종화 심우도(尋牛圖 = 十牛圖)를 그렸는데, 그 열 번째 단계에 있는 입전수수(入廛垂手 ; 세속으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한다)의 경지에 이르러 계시는 정목 큰스님의 세계관을 참새나 쪼아 먹을 접시 물처럼 얕은 우리들의 공부로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심오한 중생제도의 경계를 감히 우리가 논증할 수 있기나 할 것인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고 기도해서 소원 성취할 길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가 대통령이 되거나 이건희 회장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깨달아 내 안의 부처를 찾아내는 종교, 한 없이 버리고 비우고 낮추라는 부처님의 지혜를 우러러 믿는 불교를 마치 인간사 길흉화복이나 점치고 소원성취의 영험을 믿게 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인양 중생을 미혹케 하는 기업형 도량이 도처에 널려있고, 승복(僧服) 입은 짝퉁스님들이 영업사원과 진배없이 시주 동참을 억지로 권하고 다니는 일마저 다반사로 있어서 진실한 불자들이 보면 안타깝고 부끄럽기까지 한 불교계의 실상이 어지러운 이 시대에 정목스님은 <아미타파>카페를 통해 인터넷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에 원효사상과 서민적인 정토사상을 전파하고 계신다.
정목스님은 오직 ‘나무아미타불’ 염불수행에 정진하면서 “수행자가 배부르면 공부는 게을러지고 중생은 오탁(五濁)에서 구제받지 못 한다.”라고 설파하시며 가난한 수행자의 길, 시퍼런 면도날 같은 구도의 길을 홀로 가는 한국 불교계의 보기 드문 이판승(理判僧)이시다.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일체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박에 생사를 벗어난다.’는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서라벌 저잣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시중(市中)의 중생들을 제도하신 원효스님, 유수한 불교대학에서 그 많은 불서(佛書)와 경전을 읽고, 외우고, 써내어 법사가 된 내 친구는 “석·박사 학위를 받기보다 원효사상 공부가 더 어렵다.”고 일러주었으나 나는 정작 그 말의 뜻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초급의 재가불자지만 정목스님의 염불선(念佛船) 큰 배에 올랐으니 윤회하지 않는 저 무량광 영원한 빛의 생명을 얻어 극락왕생 할 것임을 믿는다.
신심 깊으셨던 내 어머니 보살님의 원력가피와 선근공덕으로 태생적 불성을 안고 살아오면서도 세속사 번뇌망상의 무명을 깨치지 못해 길을 잃고 방황한 허송세월, 오십대 중반을 넘긴 어느 날 인연 닿아 찾아간 오룡골 정토원의 정목스님이 일깨워 주신 수행방편이 바로 ‘염불수행’이었다.
나는 정목스님으로부터 염불수행의 길을 안내 받은 초보 재가불자이지만 “우리는 조그만 조약돌 한 개도 물에 띄울 수 없다. 그러나 큰 배에 실으면 많은 돌을 실을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 염불수행이고, 정목스님은 여러분을 정토로 데려다 줄 큰 배의 선장이다.”라며 격려하시던 범어사 여산 정여 큰스님의 법문을 양식으로 삼아 불심 닦기와 내 안의 부처를 찾는 공부로 그 어떤 명예나 영달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부처님을 우러러 생각하고 믿으라(仰愉如來 一向伏信)’는 정목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염불선 큰 배를 타고 영원한 정토의 생명으로 남을 것이다. -<2006년 03월>-
첫댓글 무애님의 신심 깊은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또한 거의 비슷한 길을 걸어 왔기에 동감하는 바가 큽니다.
이골짝 저골짝 다녀보고 이스님 저스님 만나뵈도 오룡골골짝이 최고고 이시대 정목스님 같은 분은 이전에 만나 보지
못했으니 인생 3/4을 지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마지막 이정표 삼아 열심히 정진하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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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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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너무나감명깊은글로숨이멈추어ㅡㅡ긴한슴을쉬어봅니다
모든인연의은혜에감사드리고보은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반야월꽃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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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에 우리를 홀로 이끌어 가시는 정목스님- 각 처에 휼륭하신 도반님들 계심에 태산같은 신심과 의지가 되고 환희심마저 납니다 우리 정목스님 도반님 감사드림니다 고맙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아름다운해인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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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 처음 방문했을때와
촌로같이 따뜻하게 보이시는 스님을 처음 친견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조금은 타성에 젖은 저를 반성하며 채찍질이 되는 글을 올려주신
무애님께 감사드립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반야행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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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碍님의 신심을 일으켜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처음 정토원을 찾았을때 저도 그 반듯한 다리가 있는 왼쪽길로 올랐었는데...
정토원 찾아가는 길에서 내 마음을 드려다 보신듯한 글에 또 한번 감동합니다.
그날 이후로도 그 전에도 저는 절이라곤 그냥 구경하는곳이 아닌
마음에 두고 간 절이란곳이 처음이였기에 사진으로 익혀진 정토원이긴 했지만 정토원 모습도 그렇고
처음 뵙는 스님의 모습은 그냥 옆집 아저씨같이 털털하신 분이셨다는 생각입니다.
無碍님의 글로 옛날을 돌이켜 감회에 젖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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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화님, 그동안 정토원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고, 도반들도 많이 늘어났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06년 03월에 카페에 올렸던 글이지만 초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다시 올려 보았습니다.
늘 카페를 성실하게 지켜주시는 신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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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스님은 여러분을 정토로 데려다 줄 큰 배의 선장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선법행님, 매달 정기 법회 시에 등불의 정토원 왕복 안내를 맡아주시는 선법행님께 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등불이 정토원의 염불행자가 된 인연이 이 글에 담겨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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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벽공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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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파를 이끌어 주시는 정목스님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겨져 있네요.
등불님과 같이 아미타파를 묵묵히 지켜 주시는 무애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두 분이 함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일체 인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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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화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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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심광명.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제일시네마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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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경게 일심입니다.
처음 정토원 갔을때가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원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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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옴아훔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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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류미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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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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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불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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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님의 글을 보면서 저절로 동감이 됩니다.
친구분이 원효사상이 더 어렵다라고 하신 말씀도 이해가 되고요.
원효스님, 정목스님, 도반님들 모두 희유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법을 이렇게 자유롭게 재미있게 같이 배우고 있다는게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우담바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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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멋진 표현에 좋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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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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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님의 글을 보며 회상에 잠깊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등불님께서 차차 회복되시니 감사합니다.~~~
원효사상을 중심으로 정목스님과 함께 모인
우리 형제 자매님들 정말로 희유하신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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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신 문장력으로 신심과 염불수행의 의지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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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心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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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훌륭한 글 올려주신 무애님, 감사합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
붓다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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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심광명화신아미타아미타아미타()()()
묵언(내려놓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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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善光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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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_()()()_
조화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번듯하게 다리 놓이고 넓혀져 포장된 좌측 길을 따라 오르는 한 차례의 미혹(迷惑)을 겪은 뒤에야
우측 모롱이를 돌아서 길 같잖은 길을 따라가야 정토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무애거사님, 감동적으로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悲朗子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글입니다
얼마나 책을 읽고 수행해야 이런글이 나올까요
나무아미타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freefroms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도착했을 때 새마을 지도자같은 분이 나오셨다는 말씀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70년대 새마을정신과 아미타파의 일심정토사상은 새롭다는 면에서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채로운 글에 감명받았습니다. 나무아미타()
sunmoon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신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오늘 무애님을 만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부처님을 우러르듯이 모든 도반님들을 우러릅니다
오늘 참 행복한 아침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봉화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