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는 노래로도 유명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영화로도 알려져있다.
그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
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명대사로 꼽힌다.
가수 백설희씨가 <봄날은 간다>를 부른 것이 1954년이다.
이 노래는 최백호씨도 부르고, 한영애씨도 불렀다. 최씨의 노래는, 그 사람의 노래가 항상 그렇듯이, 착실하고 진지해서 비애감을 의무처럼 떠맡기고, 한씨의 노래는 그 나른한 권태감으로 사람의 속을 이상하게 갉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
라는 말이 도무지 확연하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던 맹세’가 아니라 ‘울자던 맹세’라고 해야 말이 되지 않을까.
이 노래에 관하여, 내가 강박증에서 벗어난 것은 아마도 젊은 가수 김윤아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면서였던 것 같다. 노래가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라고 말할 때, 저 거짓 맹세는 이제 지킬 수는 없어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약속이 된다.
이 새로운 약속 앞에서라면 ‘울자던’이나 ‘울던’이 더 이상 문제될 수 없다. 이 노래를 엔딩 타이틀의 배경음악으로 삼은 영화, 영화평론가 듀나씨의 말을 빌리자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 제목을
“징그러울 정도로 지적으로”
끌어다 붙인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도 물론 한몫을 거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순결한 청년 유지태는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것들이 항상 잡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도,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이 세상에서의 그 실현을 곧바로 보장해 주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는 다음과 같이 유지태를 유혹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妖婦이영애는 유지태에게 말했다. 유지태는 이영애의 숨은 뜻을 전혀 몰랐다.
라면의 뒤에는 유지태의 멍청한 사랑이 시작될 줄은 이영애만 알고 있었다. 관객들도 그때까지 이영애의 숨은 뜻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眞實을 알고 관객들은 자신의 멍청함은 모르고 영화 속 두 남녀의 벌거벗은 몸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후, ‘라면 먹고 갈래요’는 서서히 그 위력을 발휘 하기 시작했다.
라면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