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전쟁이다! (6.25전쟁 사진집) 07
IⅣ. 낙동강 방어선: 고지전
미8군에게 있어 끔찍했던 모든 날 가운데 9월 첫 주의 날들보다 더 위태로웠던 적은 드물었다. 8월 중순쯤부터 북한 공산군들이 아직 병력이 미약하게 배치된 부산 방어선에 총력을 기울여 집중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해오고 있는 정황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적군의 공격들은 정밀하게 계획되었고 이어서 포항 가까이 있는 동북부 전선 끝부분을 사수하고자 애쓰고 있었던 한국군 사단들을 거의 궤멸시켰다. 분명히 한국군 병사들의 기진맥진한 육체와 텅 빈 탄약 상자들, 그리고 긴급 투입된 미군 병사들만이 공산군들이 전선을 돌파하고 공격하여 부산항을 차지하려는 것을 막고 있었다.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서부전선은 방어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서 공산군이 밤의 어둠을 틈타 물에 잠기는 부교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 하나의 고지로부터 다른 고지로 이동해가며 미 24사단 병사들을 공격했고, 공격은 효과적이어서 전 전선으로 보내어지는 거의 모든 보급품을 수송하는 주 보급로인 부산-대구를 잇는 대로를 차단할 것 같이 보였다.
대구에는 미 8군의 사령부가 있었고, 비참한 재난으로 수도를 잃어버린 남한의 임시수도로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남쪽에서 미 제1해병여단의 해병대원들은 일찍이 '진주공격'으로 많이 알려진 공격작전에서 손실된 병력을 교대 요원으로 보충하기 위하여 무장하고 장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목표인 진주시를 감제할 수 있는 능선을 따라 전선을 확보하고 막 전투를 끝낼 수 있는 유리한 순간에 불가하게 물러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부산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마산으로 복귀하라는 미 8군의 명령을 받은 해병대원들은 할 수 없이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그들이 되찾기 위해서 매우 필사적으로 조금 전까지 싸워왔던 지역을 거쳐 되돌아 행군할 때 그들은 앞사람의 발뒤꿈치만을 지독하게 내려 쳐다보았다.
그들은 임시 진지로 활용하기 위해 마산 주위에 그들의 2인용 천막을 간신히 흩뿌려 놓았고, 이후에 주 보급로를 위협하는 공산군에 대항하기 위해 북쪽으로 돌진했다. 해병대원들은 적의 진격을 멈추게 하고, 방향을 바꾸게 했으며 그들을 낙동강 쪽으로 몰아냈다.
강가에 있는 마지막 고지에 대한 최종 기습공격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투가 되었다. 이 전투는 미국의 군대 역사에서 "무명능선 전투"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해병대원들이 공산군의 돌진을 낙동강을 가로질러 박살을 내고, 사계를 통제하면서 병사들에게 강위의 진지로 복귀하도록 하자마자 북한군이 다시 거의 같은 장소를 공격해 왔고, 고자들로부터 방어중인 미 2사단 병사들을 휩쓸고, 그들의 전선을 돌파하고, 다시 한 번 방어선의 중심부를 향해 쇄도해왔다.
이 장의 사진들 "The Hill(고지전)"은 해병대원들이 적군의 돌파를 분쇄하도록 명령을 받았을 때 촬영된 것들이다. 부산에 상륙한 해병대 교대 요원들은 그들 가운데 단지 몇 명만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실제 전투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점령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가 지금 부산 방어선을 따라 전투에 깊이 참여하고 있는 순진한 젊은이들과는 달리 맨주먹을 꽉 쥐고 뻣뻣하게 곤두선 채로 나아가는 이미 색깔이 바랜 카키복을 입은 이 해병대 젊은이들에게는 두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격렬한 전투경험을 가진 참전용사들인 장교와 부사관에 의해 지휘 통솔되었고, 그 장교와 부사관들은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후 직업으로서 해병대에 남기를 원했던 사람 중에서 아주 면밀하게 선택된 해병대원들이었다.
그리고 농장, 공장, 삼림지역, 어선, 약국주인, 부자 등 미국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온 이 젊은이들이 가진 다른 거대한 이점은 어느 한 사람도 강요받지 않은 스스로의 의지가 충만한 지원병이라는 것으로 그들은 "자랑스러운 미합중국의 해병대원들이었다.
그들 해병대원은 머리를 짧게 깎아 귀가 툭 튀어나오게 하고 군화의 끝 주위로 전통적인 카키색 각반을 단단히 묶어 두르고 있었다. 각자는 모두 해병대원이 되려고 애쓴 지원병들이었고, 세상에서 제일 강인한 싸움꾼들이 사는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강력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처음 해병대원이 될 때 생각하던 것이었다. 나중에 첫 훈련을 마친 해병대원이 피를 나눈 형제들이지만 색깔 바랜 카키복을 입지 않은 다른 군인들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들은 해병대원이었고, 또 죽을 때까지 해병대원으로 남을 것이었다. 보병소의 첫날부터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추적하기는 쉬워 보였다. 그것은 항상 한 노련한 부사관의 성난 눈빛 아래 민간인의 색깔을 벗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병대에서 사용되는 모든 무기를 눈을 가리고 분해하고 나서 재조립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밤에는 완전군장으로 비틀거리면서 캐롤라이나나 버지니아의 늪지대를 통과하여 가는 강행군을 하면서 또 캘리포니아의 사막과 산을 가로질러 가면서 보내졌을 터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두가 미합중국만큼이나 오래된 해병대의 전통을 이어왔다.
해병대원 중에 많은 인원이 가까운 시내에 있는 문신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꼼꼼히 돈을 모아서 주말 자유 시간을 택해 '어머니', '불명예보다 죽음', '미 해병대 아니면 그냥 미국국기를 그들의 이두박근이나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이러한 문신들은 새롭고 비밀스러운 남자의 굉장한 상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단어들과 색깔들은 그들의 훈련이 그들 깊숙이 남은 것처럼 전혀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선으로 이동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없었지만 너무 느렸다. 부대를 수송하는 기차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때 쓰던 것으로 튼튼했지만 오래된 목제 객차였다. 악의 때문인지 또는 단지 습관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 것 같았는데 남한의 기관사들은 보이는 신호나 마을도 없는데 계속해서 비어있는 궤도를 따라 기차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가도록 기관사에게 강요했고 때로는 권총으로 위협도 가했지만 우리는 다른 기차를 만나지도 않았고 차가 지연되어야 할 어떤 다른 이유도 보지 못했다. 안에 있는 해병대원들은 천천히 지나가는 풍경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투식량을 먹었고 무기들을 기름칠하였으며 소총을 가까이 두고서 객차 사이의 연결로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단순히 일하러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있는 전문가들 같았다.
늦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태양의 열기가 여전히 철모를 통해 바로 아래로 도달하여 위장을 낚아채 병사의 두뇌까지 홱 잡아당기려 하였다. 습기도 많았는데 특히 병사들이 열차와 트럭을 떠나 낙동강 방어선의 서쪽 끝 깊이 길을 가로질러 행군을 시작한 후에 더욱 심해졌다. 길을 따라 서 있는 몇 그루의 가로수 그늘에 길게 누워 휴식하는 동안 적과 진주 대공세에서 싸웠던 다른 해병대원들이 새로운 대원들에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나빴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믿기는 어려웠다.
해병 제1여단장인 에드워드 크레이그 준장은 무더위와 습기는 공격을 위해 협조해야 할 그의 지휘 하에 있는 모든 부대가 이미 산악지형만으로도 어려운 앞으로의 임무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병 제1여단이 배에 타기 작전에 미국에서 돌아온 크레이그 장군은 그의 해병대원 모두를 집합시켜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해병대원들은 이미 보도를 통해 사진을 봤고 또 전장에서 공산군에 의해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인지 무표정하게 행동했다. 크레이그 장군은 그들 나라인 미국이 긴급사태를 만났을 때 해병대의 역사적 역할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들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다음으로 크레이그 장군은 그의 옆에 여단 의무참모를 서 있게 하고서 한국에서 아직 총을 쏠 수 있거나 수류탄을 던질 수 있는 살아있는 해병대원이 있는 한 부상당했거나 전사한 다른 해병대원들을 전장에 남겨두고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000명 이상의 해병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기분 좋게 서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행복하게 웃고, 도대체 언제 그들이 배를 탈 것인지를 궁금해 했다.
지금 낙동강가의 방어선으로 가는 길 위에서 여전히 곁에 여단 의무참모를 대동한 크레이그 장군은 콩 통조림을 먹으며 다가올 전투에서 부딪칠 수 있는 위기와 예견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을 처리하는 임무와 전사자들을 보충하는 임무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조용히 말했다.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해병대원들의 대열을 쓸어내렸는데, 그 비는 이미 남쪽 바다를 강타하고 있는 태풍의 상륙과 또한 가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해병대원들은 발아래 길이 깊은 진창이 되는 것을 무시하며 욕을 섞어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 비는 무더위를 끝내주는 진짜 고마운 비였다. 경기관총 사수들로 보강된 해병대의 커다란 퍼싱 전차가 도로에 접해있는 작은 마을과 농가등에 은폐하고 있던 적들로부터 산발적인 요란사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차와 경기관총 사수들이 불타는 건물의 화염이 적군의 포들을 침묵시킬 때까지 예광탄과 전차포를 적의 각 저항지점에 쏟아부었다. 정찰병들이 길에 인접한 밭을 통과하여 이동했고, 대열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해병대원들에 의해 배치되고 장전된 모든 무기가 도로를 차단하고 있는 적을 쏘아버릴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고, 정찰대가 도로를 따라 접해있는 밭을 가로질러 고지 위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군들은 여전히 중기관총을 배치해놓고 행군 대일의 앞쪽 능선에 있는 진지로부터 길 아래쪽을 향해 집중사격을 했고 총탄들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해병대원들의 행렬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해병대원들은 아름답고 거대하고 독한 냄새가 나며 쇠로 만들어진 그들의 단짝 친구 탱크들의 철컥거리는 궤도 가까이에 붙어서 길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그 전차들은 적들의 사격이 집중되고 있었던 도로의 보다 넓게 펼쳐진 지역을 가로질러 해병대원들을 이동시켰다. 그러나 가끔은 해병대원들이 육중하고 든든한 전차의 뒤를 떠나 뛰어서만 지나갈 수 있는 때와 장소가 여전히 산재해 있었다.
다행히 공산군의 첫 번째 기관총 사격은 거의 최대 사거리 밖에서 개시되었고 정확도도 역시 낮아서 아주 적은 인원만이 피해를 보았으며, 치명적인 부상자는 없었다. 실탄을 사용한 실전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많은 새내기 해병대원들은 대부분 이것이 적 기관총 사수로부터 첫 번째로 맛본 사격이었다. 이제부터 모두가 몇 달간의 진지한 훈련의 결과 덕을 볼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훈련받은 대로 그 새내기 해병대원은 도로에 연해 있는 논으로 뛰어들어 아주 빠르게 달리며 공산군의 기관총 사격으로부터 완전히 교묘하게 벗어났다.
그러나 병영생활과 특별 훈련과정 등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경험 중에서 적군을 처음으로 직접 맞닥뜨리는 충격을 대비토록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해병대원의 총탄을 맞아 머리의 대부분이 날아가 버린 죽은 적군을 맞닥뜨리는 놀라움! 아마 전투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어떤 것보다도 그의 탄통을 단단히 쥐고 적군의 시체를 넘어 기어 올라가야 하는 그 어린 해병대원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용기가 요구되었고, 그는 이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그와 똑같이 적의 사격 하에 있는 다른 해병 대원들의 길목을 그가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해병대원들은 베테랑이었고, 흙탕물이 튀기는 몸 아래쪽에 눈길조차 한번 주지 않고 적 기관총을 향해 일어서서 곧 바로 돌격했다. 가볍게 무장한 정찰대가 행렬의 전방과 측방을 샅샅이 수색했다. 조우했던 공산군들은 대부분 교전 없이 물러났다.
그들 역시 전진하는 적의 병력을 성찰해서 알아 내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해병대원들이 사살된 소수의 공산군을 신중하게 정밀조사를 하며 적들이 실제로 죽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심하게 부상을 입어서 정찰대가 지나가자마자 수류탄을 던지거나 날쌔게 움직일 수조차 없었는지를 신속히 점검했다. 전진하는 해병대의 본대에 배속된 의무병들은 부상당한 적들을 아군과 마찬가지로 돌봐주었다.
행렬을 정지시키고, 고지 정상을 둘러싸고 참호를 구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때
베테랑이든 새내기이든 해병대원들 모두가 곧 적과 맞닥뜨릴 것이고 치열한 교전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한개 대대는 참호를 파지 말고, 오히려 멀리 앞쪽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 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명령은 좀 더 높은 곳에서 고지들 쪽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사람들의 가느다란 줄처럼 간신히 들려왔다. 각 대원은 자기 짐을 지고 계속해서 오르고, 자신의 생각은 삼켜버린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부대원 모두가 적의 돌파를 저지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반격에서 그들이 선두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은 더는 식사시간에 나누는 열띤 주제 따위가 아닌 현실이었다. 공산군들이 다음 고지를 넘고 다음 계곡을 넘어, 또는 빈약한 나무들의 다음 덤불 안에서 공격할지... 그렇지 않으면 해병대가 공산군들을 공격하는 대신에 공산군들이 크레이그 장군과 대령과 대위와 중위와 부사관, 그리고 전체 저주받은 무리를 속이고 오솔길의 다음 굽이 주변에서 매복했다가 그들의 코를 찌르듯이 그들을 습격할 것인지...
각자가 생각할 때처럼 단순하게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생각으로 게임을 하는 끊임없는 '질의응답' 경기였다. 계속해서 그들은 산을 올랐고, 침목을 지켰다. 공산군들은 크레이그 장군이나 대령이나 해병여단의 그 누구도 속이지 못했다. 그들은 한 팀으로서 아마 최전선에서 작전 중인 미군의 가장 우수한 정찰대원인 건장한 대위와 포병 부사관의 직접적인 감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대위는 나중에 서울 공격을 위한 최종 정찰 기간에 한강을 수영으로 도강하면서 크게 다치게 되고... 그 포병부사관은 다른 정찰대의 선두에서 작전하다가 세 번째로 총격을 당하게 된다. 어쨌든 이번에 공산군의 돌파를 저지하기 위한 반격 작전 동안 그들은 해병여단과 대대에 적의 모든 동태를 완벽하게 알려주었다.
간결한 명령이 대대를 통해 내려왔고, 한 개 중대는 단독으로 계속해서 전방으로 이동했다. 해병 5연대 1대대의 베이커 중대가 뽑혀서 바로 앞의 전방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적을 공격하는데 선두에 서게 되었다. 해병대원들은 무거운 오후의 대기를 채우고 있는 숨과 소리를 죽이고 있는 고요함에 속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적들이 이 시간에 그들을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거의 모두 짐작했다.
그들 중 많은 대원이 거의 나무가 없는 산꼭대기 위로 진격하는 데 필요한 발끝 디딤대 따위의 활용방법 같은 기본지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새내기 대원들까지도 그것의 형태에 대해 저 아래 야지에서 그들이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의 마지막 모금을 빨면서 충분히 들었고, 또 자세히 살폈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살벌한 "무명능선을 마주하고 있는 고지를 공격했다.
처음에 좀 더 아래쪽 기슭에서 분대가 아주 신중하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해병대원들 모두가 이미 아주 자그마한 흙무더기나 밭고랑 골 뒤에 피해있었기 때문에... 기복 있는 불모지를 아직 이동하고 있는 대원들은 그들의 심장을 똑바로 겨누는 소총의 가늠자 너머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최적의 사정거리에 발을 들여놓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적의 눈을 사방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일은 침묵을 깨고 순식간에 일어났다. 기관총들이 앞 능선을 따라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을 때 정적은 영원히 깨졌다. 해병대의 기관총들도 응사했다. 다른 해병대원들은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사격을 하며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쪽으로부터 몰아닥친 폭풍이 고지 정상을 넘어 낮게 스쳐 지나가는 거품이 이는 것 같은 구름을 가져왔고,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시야는 점점 나빠졌고, 모든 무선 통신이 끊겼다. 중대장인 아이크 펜튼은 빗소리와 총소리와 다른 사람들의 잡음 가운데에서 명령을 외치며 사선 가까이 서 있었다.
고지 가장자리에 있는 관측자들이 공산군들이 무명 능선 정상을 넘어 진격하는 해병대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미 해병대원들은 아래쪽 계곡을 가로질러 고지의 정면 경사면을 기어올라 산 정상 부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적 기관총 사수와 박격포병들은 공격하는 해병대의 앞 곳곳에 사격을 쏟아 붓고 있었다.
다른 공산군 소총수들은 기관총사수들을 지원하고 있었고, 왼쪽 어딘가로부터 그들은 고지능선을 따라 쇳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포탄을 보내는 자주포 속사를 개시했다. 펜튼 대위는 무용지물이 된 무전기를 무시하고, 손을 깔때기 모양으로 만들어 입에 대고 카빈총을 들고, 몸을 구부리고 잠시 경직되어있는 해병대원들에게 명령을 외쳤다.
"공격!" 해병대원들 모두가 전진을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수류탄을 투척하고, 다른 해병대원들이 폭발로 노출된 공산군들을 쏘기 위해 그들의 팔위로 일어설 때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었다.
점점 더 많은 해병대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점점 더 많은 수류탄이 산꼭대기 위 목화밭으로 빙글빙글 돌며 솟구쳐 오르거나 목화밭을 지나 떨어지거나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이크 펜튼 대위는 고지 정상을 탈취하기 위해 마지막 돌진을 하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외쳤다. 그들에게 보내는 명령은 모두가 현 위치에서 절대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격의 성공과 낙동강 방어선의 만회는 그들이 이 고지를 탈취해서 장악하는 것에 달려 있었고, 고지의 점령 없이는 이 모든 일이 불가능 할 터였다. 아이크 대위는 이 작고 시시한 것 같은 고지가 공산군들의 돌파를 분쇄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과 부하 해병대원들이 죽을 수도 있는 크레이그 장군의 공격작전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크 펜튼 대위는 이 고지의 방어를 구축하기 위해 능선의 반대 사면에 머물러야만 했다. 비가 소대들과의 휴대용 무전기 망까지 마비시켰고, 측방과의 유일한 통신은 전령 뿐이었으며, 후방과는 아무 통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 레오날드 영 상사가 소총병들과 함께 고지 정상부로 기어 올라왔다. 그는 능선을 가장 잘 확보할 수 있도록 각 화기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시야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쏟아지는 적의 사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일어서서 침착하게 고지 정상부를 따라 오르내리며 각 대원을 신중하게 배치했다.
레오날드 영 상사가 총에 맞았다. 기관총탄 한 발이 그를 진창 속으로 처박히게 하면서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나 그가 한명의 노련한 부사관으로서 자신이 중대장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아이크 펜튼에게 주기 전은 아니었다. 그는 해병대원들이 그를 기슭을 가로질러 끌고 왔을 때까지 살아있었다.
대원들이 그를 거친 판초 들것 위에 눕혔을 때 그는 흠뻑 젖은 캔버스 같은 판초를 손으로 만지고 서있는 펜튼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중대장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물러나게 하지 마십시오. 제발 물러나게 하지 마십시오." 펜튼은 들것을 나르는 짐꾼들이 빗속으로 사라져 고지로부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band.us/band/61257492/post/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