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민 엮음 강건구 사진 구술기록집 '남양군도의 기억'
ㅡ잊혀진 섬 남양군도 그 곳은 지옥이었다.ㅡ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이나 회유에 의해 일본의 탄광이나 군수산업시설에서 강제 노역을 하신 분들은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그들보다 더 열악한 태평양의 작은 섬들인 팔라우, 티니안, 사이판, 파푸아뉴기니
등지 흔히 남양군도라 불리던 곳으로 가서 몇년간씩 지옥같은 생활을 하다 병들고 상처 받은 몸으로 귀국한
사람들도 95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MBC 경남방송에서 이 들 중 경남 출신 피해자들의 유족인 배우자나 그 자녀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방송을
하고 여기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였다.
피해자들은 건강이 악화되어 5,60대에 사망한 분들도 있고, 그보다 오래 사신 분들도 있으나 지금 나이로
100세를 넘긴 분들이라 직접 인터부한 분은 없고, 아흔이 넘은 배우자 두 분을 제외하곤 모두 70대가 넘은
자녀들과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그 자녀들은 피해자들이 귀국한 후에 출생한 분들이 많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직접으로 많이 듣지 못했고,
아버지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고 하며,
어머니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은 내용들도 그렇게 자세한 내용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건강이 좋지 못하여 간병을 한 자녀들도 있고, 생활 능력이 없는
피해자들의 배우자들이 생활을 꾸려나가 참으로 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남양군도에 끌려가 비행장을 만드는 작업에 동원되었으나 미군의 폭격으로 야간에 주로 일을
하였으며, 연합군에 밀리던 상태여서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뱀이나 개구리, 달팽이
같은 것을 생식하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까지 하면서 연명하였다고 한다.
봉급을 준다고 했으나 거의 받지 못하였고, 통장에 넣어 준 것도 해방 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측에서는 박정희 정부 때에 모두 보상을 해 주었다고 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선 그 때 받은 돈으로 경제개발에
사용하고 개인적으로는 보상을 해 주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한일간에 외교문제가 된 것 중의 하나가 일본에 강제로 징용되어
일했던 분들의 보상문제이다.
인터뷰 내용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피상적이지만,
이 분들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남양군도의 기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경남지방 출신들 중에 남양군도 피해자가 900여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인터뷰를 한 유족은 겨우 20명이다.
나머지 분들은 연락이 닿지 않아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들의 명단을 부록으로 남겨 두어 다음 기회에 참고할 자료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취재진등이 남양군도에 직접 출장을 가서 취재하려고 시도했으나, 코로나19 문제도 있고 해당국가들과의
협조관계가 그리 쉽지 않아 이루지 못하여 매우 아쉬웠다고 한다.
언젠가 여건이 조성되면 꼭 현지 방문
취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