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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 증거, 600명 증거(3)>
4. 북한 조국통일사가 1982년에 발간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인들의 투쟁”
1) 광주 및 전남지역 모든 시위현장에 북한의 기록요원들 배치: 북한이 발행한 이 책은 남한당국의 자료들보다 더 상세한 상황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짙은 가스 연기속에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던 버스1대(광전교통소속 전남5에이3706호)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추어섰을 때 계엄군 100명이 들이닥치자 차안에 있던 10명의 청년들이 결사적으로. . ”(576하5-8줄). 나한 자료와 일치합니다.
“광주봉기자들은 버스에 나뉘어 타고 목포와 라주 등 전라남도 기타의 도시들로 출발하여 봉기를 확대시키는 한편 그곳 경찰서와 향토예비군의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 라주에 진출한 봉기자들은 라주경찰서 관내 5개지서를 점거하고 경기관총을 비롯한 무기와 다량의 실탄을 빼앗았다. 화순, 승주, 호남탄광과 리양경찰지서에서도 . .화순광업소에 몰려간 봉기자들은 향토예비군에 사격을 가하여 물리친 다음 광주사이를 오가면서 무기와 폭약을 실어날랐다. 인민봉기는 라주, 화순, 함평, 완도, 승주, 담양, 령광, 해남, 목포, 장성, 송정, 려수, 순천, 광양, 보성 등 도 안의 많은 시,군으로 확대되어 . .”(580쪽 하반부). 모두가 수사기록들과 일치하는 내용들입니다.
“봉기군은 시 중심부에 있는 전남대학교부속병원 옥상에 경기관총을 걸어놓고 . .”(581쪽 하9-10줄). 수사기록의 상황자료들에는 전남대부속병원이 시 중심부에 있는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후3시부터 봉기자들은 공격서열을 편성하였다. 봉기군중은 승용차 4대에 불을 달아 저지선을 향해 밀어보냈으며, 뒤이어 기름이 가득 찬 드럼통을 실은 화물차에 시동을 걸어 저지선쪽으로 나가게 한다음 솜뭉치에 불을 달아 차에 던졌다”(582쪽 7-11줄). ‘공격서열을 편성했다’는 말은 군사용어이며 이는 수많은 단위의 시위대들에 공격 목표를 배당해주었다는 뜻입니다. 광주시위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조직적인 작전이었다는 뜻입니다.
“전라남도 26개 시,군 중에서 17개 시,군이 봉기에 합세하였을 뿐만 아니라 19일에는 서울에서 1,000여명 학생들이 반정부 집회와 시위에 떨쳐나섰고, 21일에는 전주, 리리에서 투쟁이 벌어져 전라북도에도 항거의 불길이 타번졌다”(584쪽 8-12줄).
“오후 4시 50분경, 시위대열이 도청으로 통하는 5개 방향으로 물밑듯 밀어닥쳤다. 이들은 제각기 화염병과 대형 드럼통을 굴리며 다가왔고, 이루 시위대열은 쇠파이프와 식칼을 들고 같이 죽자고 웨치기도 하였가”(576쪽 상단)
“밤 10시 30분경, 동구 동명동 앞길에서는 공정대 병력과 봉기자가 충돌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광주역에서는 11시경 공정대 병력이 약 20분간에 걸쳐 봉기자들에게 야수적인 맹사격을 가하여 수다한 희생자를 내었다”(577 하단)
2) 광주시위는 북한이 정한 시위전략 및 전술 그대로 수행:
(1) 시위전략: 이 책의 567쪽에는 남한의 시위전략이 기술돼 있습니다. “그들은 교외시위를 위주로 하면서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와 롱성투쟁 등을 결합하여 투쟁을 준단 없이 벌려나갔으며 시내 중심부를 시위구역으로 설정하고 역량의 집중과 통일행동을 보장함으로써 시위의 정치적 효과를 높였다”(567쪽 10-13줄). 실제로 당시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시위를 했습니다만 이것이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략의 요점은 1)주력시위(주공)는 시내중심부에서 벌이고,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조공으로 하여 중단 없는 공격을 실시하고 2)모든 시위대들은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라는 북한전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2) 시위전술: 제567쪽에는 시위전술이 기록돼 있습니다. “시위에서는 과감한 육박에 의한 경찰저지선의 정면돌파와 경찰의 포위를 역포위로 전환시켜 앞으로 열어나가는 돌파, 분산과 집합, 큰 대열과 작은 대열의 배합, 속도행진에 의한 빠른 기동과 바리케트에 의한 완강한 방어 등으로 주도권을 틀어쥐고 적을 피동에 몰아넣었다. 또한 작은 돌과 큰돌 심지어는 화염병까지 준비하여 적에 대한 타격력을 높였으며 의학대학 학생들로 치료대를 조직하여 부상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받게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시위와 대중선전을 밀접히 결합시키면서 광장과 큰거리에서의 집회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는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고, 공장지대에서는 로동자들에게 확성기로 <함께 나가자!>고 호소하였고, 경찰들에게도 함화를 들이대었다. 이것은 학생들의 투쟁전술에서도 종전의 투쟁에 비하여 큰 진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567쪽)
여기에서 ‘돌파’, ‘제역량의 배합’, ‘역포위’ ‘속도전’, ‘주위선동’이라는 군사용어가 나오며 이는 북한 특유의 전술입니다. 북한의 전략 전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배합”이며, 이 전술은 남한 시위에서도 응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북한식의 ‘돌파’작전은 첨입작전으로 대표됩니다. 적의 약한 곳에 최강-대량의 군사력을 투입하여 나무에 쐐기를 박는 작전을 의미합니다. 역포위’로 경찰저지선을 뚫은(돌파한) 시위대가 저지선상에 늘어선 다른 경찰들을 뒤로부터 둘러싸는 전술이며 이는 휴전선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우리 군의 방어선을 돌파한 후 돌파병력에 의해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 군을 뒤로부터 포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한의 시위에 이런 고수준의 전술이 응용되었다는 것은 북한 전문가들이 시위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국에서는 물론 서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1980년 5월의 시위들이 그냥 산발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시위전술을 통달한 검은 ‘의 일사불란한 지휘(계획, 명령, 상황파악) 하에 이루어진 작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5. 북한 노동당출판사가 1985.에 발행한 “광주의 분노“
전두환은 공정대 놈들에게 “전라도 놈들은 김대중을 따라 내란을 기도하고 있다. 이놈들은 모조리 죽여라, 잔인성은 군대의 첫째가는 기질이다.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여성도 재물도 무엇이든 차지하라” 고 떠벌렸다. 전두환은 공정대를 이틀 동안 굶긴 후 환각제를 먹였다. ‘전라도 놈들은 씨종자를 말려라’ 청년들을 보기만 하면 기어코 따라가 총검으로 찔러죽이고 쇠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광주여고의 한 여선생은 총검에 찔려 피와 함께 창자를 길복판에 쏟으며 쓰러졌다. 5월 19일 시내 중심인 금남로로부터 류동까지의 거리에서는 치열한 작전이 벌어졌다. 괴뢰군 31연대와 폭동군중이 맞붙어 육박전을 벌였다. 폭동군중은 공정대 놈들이 달려오면 골목골목으로 숨었다가 일제히 100명 단위로 달려들어 공정대 놈들을 때려 눕혔다. 이 표현은 공수부대원들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 .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기습하여 트럭 314대와 일반 차량 400여대를 노획하였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고, 오후 4시까지 노획한 총기 숫자가 열거돼 있습니다. 무기고 이름들이 정확하게 열거돼 있습니다 모략 측면에서는 황당하지만 시간과 장소 시위대 인원수 등을 포함한 상황 설명은 현장에서 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구체성을 띄고 있습니다. 황석영은 이 내용들을 가지고 5.18의 바이블이라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제목의 모략서를 냈습니다.
6.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 나타나 있는 5.22.15:08 “서울서 대학생 500여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에 5월 22일, 15:08에 서울에서 대학생 500여명이 왔고, 환영행사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광주가 봉쇄돼 있는 마당에 어떻게 서울에서 단체로 학생 500여명이 올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로써 광주에 외지인 500여명이 왔다는 사실은 오월 단체들도 솔직히 인정한 것입니다.
7. 교도소 공격
아래 자료는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중 교도소 공격에 대한 부분을 스캐닝 한 것입니다. 무장한 시위대가 5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교도소를 공격한 사실, 그 교도소는 3공수 제11대대 병력이 방어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 과정에서 광주시민 서종덕 이명진 이용충 등이 사살됐다는 사실, 교도소에는 간첩을 포함한 재소자 2,700명이 수용돼 있었다는 시실, 광주교도소는 주요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사실, 교도소 공격행위는 불법행라는 사실이 적시돼 있습니다.
8.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김일성은 1989년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여 1991에 개봉하였습니다.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썼고, 윤이상은 배경음악을 작곡하였으며, 그 주제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이 영화는 2010년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동시 관람한 바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시위기간 내내 도망가 있다가 체포돼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광주사람들로부터 비겁자라는 비난을 받아 단식으로 사망했습니다. 북한 영화는 이 사람을 부각시켜 교도소장과 투쟁하다가 교도소장에 의해 독약을 강제로 주입당해 사망한 이야기로 엮어 전두환을 모략하였습니다. 김일성에게 5.18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이면 남한의 재주꾼들을 불러다 영화를 만들며, 북한에서 최고로 자랑스런 것에는 5.18을 영예의 상징으로 시상을 하는 것이며 해마다 북한 땅 전 지역의 시-군-도시 단위에서 5.18을 성대하게 기념하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의 영화에도 남한의 영화에도 지휘자는 없습니다. 북한이 지휘했기 때문입니다. 지축을 흔드는 20만 규모의 시위가 10일 동안이나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거기에 지도자, 지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휘자 없는 20만 시위, 가능하다 할 사람 세계인구 중에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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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
국정원보다 먼저 황장엽을 통한 작전을 민간 차원에서 최초로 주도했던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이 2013.4.22.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에 출연하여 5.18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했고, 이 내용은 군 정보당국에도 전해주었지만 군은 침묵했다합니다. 1996년 11월 10일, 김용삼이 자세히 확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황장엽: “광주학생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남한에) 전가한 일”
황장엽-김덕홍: “조선노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민주화운동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 받았다”
10. 북한이 매년 전지역 시-군-도사 단위에서 5.18을 성대하게 기념한다는 통일부 자료
‘주간북한동향 제73호(1992.5.17.~5.23)에는 “북한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동사건을 ’광주인민봉기‘라고 규정하여 매년 평양시 군중대화를 개최하는 한편 우리 국내 자야운동권에 대한 반미 반정부 투쟁의 계기로 활용해오고 있는바 올해도 부총리 강희원, 조평통 부위원장 윤기복 평양시 당책 강현수 등 고위 당.정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군중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각 시-도 군중대회로 확장시켰음”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5월 19일에는 평양, 평남 황남 황북 개성 등에서 군중집회를 개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은 매년 5.18을 평양에서 뿐만 아니라 전 지역의 시도 단위에서 개최하고 이를 남조선 학생들로 하여금 반미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5.18이 남한의 민주화운동이라면 북한이 무엇 하러 그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전 지역의 시-군-도시 단위로 해마다 그 엄청난 행사를 주최하겠습니까?
아래 자료는 통일부가 소장한 북한관련 자료입니다.
1) 5.18광주인민봉기 20돐 평양시군중대회 개최
2)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발단 20주년 보고대회
3) 5.18광주민주화운동 반미 반정부 투쟁 선동
4) “남포시 등 지방도시에서 5.18기념 군중대회 개최
5) “광주의 넋은 거족적인 반미 반보수투쟁을 부른다”
6) “5.18광주민주화운동 17주년 기념 평양시 군중대회 개최
7) 분노의 지점에서, 광주인민봉시 10돐 기념문학 작품집
11.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 5.18글자를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
아래의 5개 자료는 기계, 역, 공장, 영화연구소 등 북한에서 최고로 꼽히는 존재들에 대해 김일성이 5.18이라는 글자는 영예의 상징으로 부과한 케이습니다. 룡성기계에서 제작한 1만톤짜리 프레스에는 5.18청년호, 기차역에는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남포에 있는 공장에는 ‘5.18대형단조공장’ 동해안 운천에는 ‘5.18공장’ 그리고 5.18연화연구소가 있습니다.
12. 최고반열의 5.18유공자들 증언(5.18항쟁증언자료집-시민군들의 구슬-전남대학교 출판부2003)
* 5.25일에 형상된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초기 위원장 김창길 증언
“수습위원회는 학생들이 다 도망갔고 일반인들로 채워졌다. 시민군조직들은 모두 자생적인 조직이었고, 도청에서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은 없었다. 23일부터 무기를 회수하러 다녔다.윤상원 정상용 등 인물들은 5월 24일 오후에 도청에 들어왔다”
* 김창길을 축출하고 위원장이 된 강경파 김종배(사형)의 증언
“예비군을 모아가지고 본격적으로 투쟁해보자 작정한 날이 5월 25일이었다. 이날 기동타격대를 조직한 사람은 자개공 이재호였고, 기동타격대장을 한 사람은 윤석루(19, 구두공, 무기징역)였는데 그는 어리고 뭐 잘 모르는 아이였다. 도청발포 이후 21일 오후에 총이 나왔다.
* 수습위원회 외무위원장 정상용(무기)의 증언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는 일명 항쟁지도부였다. 이는 5월 25일 오후에 급조된 조직이었다. 5월 19일부터 윤상원 등과 녹두서점에서 대책을 상의하다가 21일 총소리가 나자 각자 도생하자며 보성기업으로 도망쳤다가 22일 YWCA에서 다시 만났다. 운동권들은 5월 18일 계엄령이 선포되자 다 잡혀갔기 때문에 운동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는 사람들만 모였다. 국장급처럼 보이던 사람들(북한군) 은 24일 도청을 빠져나갔다.
* 항쟁본부 내무위원장 허규정(무기)의 증언
“주도자도 리더도 없었다. 도청을 군인들로부터 빼앗은 사람들은 우리더러 도청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 했다. 높은 관료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맨날 회의를 했지만 방법은 안 나왔다. 어른모임 따로, 학생모임 따로 일반모임 따로 제각각이었다. 통제도 안 되었고, 콩가루 식이었다. 나는 밖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다시 왔다.
* 상황실장 박남선(사형)의 증언
“운동권들은 다 도망갔다가 5월 23~25에 돌아왔고, 지식인들은 수습대책이나 만들어 가지고 얼굴 세우는 일만 했다. 앞장 선 사람들은 식당종ᅥᆼ업원 구두닦이 들 뿐이었다.
13. 5월 18일 아침 상황의 주역은 북한군
5월 17일 자정 전국비상계엄령이 발령됨과 동시에 예비검속이 발동되어 전국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 잔인했던 사북탄광도 부마사태도 공수부대가 출동하자마자 아무런 저항 없이 시위가 사라졌습니다. 5월 18일, 5.18 최고 유공자들의 증언들처럼 광주에는 운동권들이 잡혀갔거나 도망을 갔고, 5월 24일 오후부터 뒤늦게 텅 빈 도청에 들어간 시민들은 개념 없는 어린애들뿐이었습니다. 멀리서 경찰만 보아도 줄행랑을 치던 것이 예비검속이었는데, 광주에서만은 수백 명 단위로 감히 계엄군 숙영지를 일부러 찾아가 계엄군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위 북한 자료에는 200여명이 아니라 400여명으로 기록돼 있고,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500여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의 57~58쪽에는 200여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감히 계엄군의 숙영지를 찾아가 돌멩이 공격을 한다는 것은 광주의 개념 없는 이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발 빠른 공수대원들이 이들을 추격했지만 이들은 더욱 빨리 달아나 금남로와 충장로 파출소를 불태우고 차량에 불을 질러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에 한 후 이를 보고 달려온 시민들에게 준비된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이는 광주의 양아치 계급이 할 수 없는 고도의 정치공작입니다. 아래는 유언비어의 일부입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 왔다”
“경상도 군인만 골라서 왔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닥치는 대로 밟아죽이고 있다”
“계엄군이 출동해서 장갑차로 사람을 깔아 죽였다”
“공수부대들이 호박을 찌르듯이 닥치는 대로 찔러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체들을 트럭에 던지고 있다”
“여학생들이 발가벗긴 채로 피를 흘리며 트럭에 실려갔다”
“공수부대들은 ‘젊은 놈은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민 70%는 죽어도 좋다’는 구호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14. 유언비어 내용 황해도 신천박물과 모략내용과 정확히 일치
아래 그림은 1960년 6월 25일, 김일성이 황해도 신천군에 건설한 ‘신천박물관’ 그림입니다. 미군을 모략하기 위해 온갖 악랄한 개념들을 지어내 그린 그림입니다. 톱으로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그림, 여성의 유방을 도려내는 등 모략사진들이 수백 장 있습니다. 이 개념들을 그로부터 20년 후인 광주에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1982년 북한은 머리가 톱으로 잘린 시체얼굴을 삐라에 담았고, 그로부터 5년 후인 1987년 광주 정평위 신부들이 그 얼굴 그대로를 “오월이 다시 오면”이라는 사진집에 실어 계엄군을 모략하였습니다.
15. 5월 23일, 도청을 활보하는 경찰복
아래 사진은 5월23일 도청 안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당시 경찰은 심지어는 여성 몸베를 입고 모두 도망갔는데 어떻게 도청 안에서 장정들을 대상으로 하여 질서를 정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시체장사의 일환으로 구성된 무대인데. 북한의 시나리오 작가가 광주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기획을 잘 못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사진은 당시 한국사회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사진입니다.
16. TNT 폭탄조립 2,100발
당시 온건파 젊은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도청에 침투하여 5월 25~26 양일간 TNT폭탄 2,100발을 해체한 사람은 5급 문관 배승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훈장을 받았다가 노무현 시대에 박탈당했습니다. 최근 소송을 제기해 다시 찾았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폭탄조립 사실은 상황일지에도 있고, 광주 신문들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광주시민이라면 광주시 전체를 히로시마처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이 위험한 작업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그런 능력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207.1.16 연합뉴스보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 설치된 폭발물을 제거해 시민을 구한 배승일(53)씨가 광주 진압 관련자로 분류돼 취소당했다가 소송을 통해 되찾은 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17. 시위 지휘자 대한민국에 없는 사실
10일 동안이나 대한민국의 지축을 뒤흔든 20만이 동원된 조직적인 시위를 지휘한 사람이 이 나라에 없습니다. 누구도 지휘자를 찾지 않았고, 내가 지휘자였다고 나타난 사람 없습니다. 남북한에서 10여 개의 영화가 제작됐지만 그 어느 영화에도 지휘자는 없었습니다. 모든 영화는 오로지 공수부대만 모략하였습니다.
18. 2015. 5.18제35주년 기념행사 상징한 대형 조형물
2015년 5월 18일 광주가 5.18 제35주년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김대중과 김정일이 평양주체탑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조형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는 무의식중에 광주인들의 머리에 들어 있는 5.18에 대한 개념일 것입니다. 이는 예사로 보고 넘길 일이 절대 아닐 것입니다. 현수막에는 ‘전쟁연습‘ ’반통일세력‘ ’5.24조치‘ ’국가보안법‘ ’분단70년‘ 등 반체제 반국가 구호들이 도배돼 있습니다. 광주가 종북이라는 사실을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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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망자 중 신원불상자 12명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체는 바로 북한군 시체일 수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아래는 안기부 자료입니다.
20. 한국군은 살인자 아니었다
광주는 계엄군을 살인마라고 증오합니다. 당시 그런 정서가 확산돼 있었다면 아이들이 계엄군을 이토록 따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20사단은 광주시위가 진압된 후 42일 동안 남아 어지러 진 시내를 정리하고 청소해 주었습니다. 살인마들의 행동이 이렇게 착한 행동인 것인지 세계를 향해 묻고 싶습니다.
21. 광주와 북한의 유착
북한이 1982년 남한에 뿌린 삐라 속 시체사진들을 광주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1987년에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사진집에 넣어 공수부대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라고 모략하였습니다. 광주와 북한이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90. 한민전 평양본부
1987. 광주 정평위 신부들
2019.5.31. 지만원
●<5.18 광주 역사 진실>
답은 나왔다!
*북한특수군이 그때 왔다는 것
*반란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
속여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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