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
채효정
인 디언들의 달력에서 여름은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 (퐁카족)
더위가 시작 되는 달(위네바고 족)
겨울은 침묵 하는 달 (크리크족), 무소유의 달 (퐁카족)
가을은 산책하기 알맞은 달(체로키족), 모두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아라파호족)
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우리네처럼 숫자에 의해서만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게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끔 하는 달이 많다.
인디언들의 달력을 보면서 우리의 시간 개념이 얼마나 메마르고 빈약한 것인지 깨달
았다.
그래서 햇살 맑은날 나도 나만의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 보기 위해 가을산을 엄마와
함께 찾았다. 이제 무릎이 시큰거려 정상까지의 동행이 힘들만도 하실 텐데 홍엽의 짙
은 가을산 나들이는 좋아라 하셨다.
엄마와 함께 노오란 마음으로 가까운 야트막한 산을 찾았다.
이제 막 물이 오른 새초롬한 산국화와 알 수 없는 야생화, 어디에도 인색함이 없고 너
그러우며, 몸과 영혼을 몇 번씩 겹쳐 둘러도 몇 자락 족히 남아 돌 것 같은 가을 맑은
햇살 한줌이 은빛을 부수며 나와 엄마를 반겼다.
홍엽의 나무들은 뒤따라 올 계절을 위해 기꺼이 초록빛을 내주고 한 걸음 물러나 쇠락
해 가고 있었고, 그 물듦으로 인해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모든 걸 버리고 개운하게 가지만 남기고도 아름다움을 담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엄마의 여윈 모습으로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가을산이 겹쳐졌다. 다 내어주고도 어
찌 저렇게 남아 있는 사랑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랬었구나!
안으로 안으로 품고 사는 의연한 산처럼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 것이었
다 어린아이처럼 낙엽보다 더 깊은 분홍빛을 띤 얼굴로 살짝 미소를 머금고 행복해 하
시는 모습을 뵈니 처음으로 만족한 효도를 하는 것 같았다.
내게 가을은..… '어머니 품속에서 휴식하는 달'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한 제각각 겨울을 준비하고 드러내 놓고 있는 가을산 안에서 작은 것들이지만, 주
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음을 깨달았다. 한편으론 가을산을 닮은 엄마의 뒷
모습에서 너무나 크고 산뜻하고 눈부신 것만이 가치라는 일방적인 잣대를 수정하고도
싶었다.
다 내어주는 것이 아름다움의 완성이라는 나만의 철학을 심고 온 하루였다.
세상이 아프고 삶이 아프더라도 내어주기에 인색하지 않는 가을산처럼, 어머니처럼,
그렇게 내 삶을 수정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2004.19집
첫댓글 내게 가을은..… '어머니 품속에서 휴식하는 달'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한 제각각 겨울을 준비하고 드러내 놓고 있는 가을산 안에서 작은 것들이지만, 주
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음을 깨달았다. 한편으론 가을산을 닮은 엄마의 뒷
모습에서 너무나 크고 산뜻하고 눈부신 것만이 가치라는 일방적인 잣대를 수정하고도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