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동명이인들 같은 직군들 또래들 심사위원들 수상자들 주인공들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데 남들은 괴이쩍게 평온하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동아일보/나민애의 詩가 깃든 삶』2023.07.15. -
시는 좀 고리타분하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 시를 보여주고 싶다. 시는 너무 점잔만 뺀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이 시를 보여주고 싶다. 있는 척하기는커녕 오장육부를 뒤집어서 보여주는 시. 맨얼굴을 벅벅 문지르면서 맨발로 펄떡펄떡 뛰는 시. 솔직하다 못해 울컥하니 뜨끈한 이 작품은 서효인의 시집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에 실려 있다.
세상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상대적인 비교 앞에서 나의 자신감은 쭈그러든다. 우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듯 잘나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승리자는 반짝이는데 나는 녹슨 유물 같다는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요즘은 남의 부러움을 먹고 사는 시대다. 타인에게 부추겨진 부러움 때문에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너희들은 잘났고, 나만 못났구나.’ 이런 생각이 노랫말처럼 귓속을 맴돈다.
자랑이 유행이 된 오늘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이러한 심리를 시인은 종기 건드리듯 톡 터트린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성찰이자, 현대인의 새로운 자화상이자, 자조 섞인 시대 비판이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가장 미워하게 되었다니, 우리는 최첨단 내비게이션을 가지고도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나민애/문학평론가〉
Smooth Bossa Nova - Relax Bossa Nova Chill Music with Sea Waves
질투는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제가 저를 너무나 좋아해서 생기는
습기 같은 것이라
해수욕장의 발바닥이 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붙는다.
도넛 방석 위에 앉아 불 꺼진 모니터를 바라보면
거기에 진짜 내가 있다 늠름한 표정으로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 날도 많은데
남은 나를 좋아해 미칠 수는 없겠지
오늘은 동료가 어디 심사를 맡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후배가 어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친구가 어디 해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그 녀석이 저놈이 그딴 새끼가 오늘은
습도가 높구나 불쾌지수가 깊고 푸르고
오늘도 멍청한 바다처럼 출렁이는
뱃살 위의 욕심에 멀미한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나는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변명하고 토하고
책상 위에 앉아 내 이름을 검색하고
빌어먹을 동명이인들 같은 직군들
또래들 심사위원들 수상자들 주인공들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데 남들은
괴이쩍게 평온하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늠름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화장실 간다
오줌을 누는데 보이는 건 불룩한
아랫배가 전부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니.
대답 대신 쪼르륵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푸르고 깊은 몸 곳곳에 해변의 모래가 들러붙어서
사무실에까지 왔다 질투는
로맨스 같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내일은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와
동명이인과 같은 직군과 비슷한 또래와
노인과 젊은이와 이토록 연안에서 깊이 추잡스럽겠지만 극적이게도
바깥은 평온하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 시집〈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문학동네 | 2022 -
사진 〈Unsplash Images〉
닭의 갈비
서 효 인
죽은 닭처럼 쓸쓸한
송별회였다
우리는 퇴사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닭에게
불만이다 뒤적거리며 뒤척이며
계륵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야
오늘도 가르침을 주시는 분
여기는 사실 갈빗살이 아닌 거야
오늘도 말씀이
모가지처럼 기신 분
죽은 닭은 아주 오래전에
죽었고
한참을 뒈진 채로 얼어 있었고
우리는 입만 살아 먹고 말하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닭의 살갗 같은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앉은자리를 털며 푸드득 서두른다
죽을 줄도 모르고
죽으러 가고
죽은 줄도 모르고
죽어서 가고
말씀이 기신 분이 가르침을 멈추고
놀라 묻기를
여기 웬 닭대가리가 있어
우리는 놀라 벌떡 일어나 모가지를 비튼다
먹다 남은 닭의 순살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오르며 추는 삼바
안녕, 뼈가 없는 친구들아,
안녕, 살이 없는 친구들아,
안녕, 쓸쓸한 동료들아,
갈비를 떼어서 안녕
죽은 닭들의
송별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