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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습니다. 전기 예초기, 톱, 낫, 전지가위를 들고 산윗밭 과수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윗밭은 산 위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3년 전부터 스님은 산윗밭보다 더 높은 땅에 다양한 과수나무를 심어두었습니다.
첫 번째 과수원은 나흘 전 공동체 법사님들이 예초를 했습니다. 3년 전에 심은 나무들은 조금씩 자라 이제 스님보다 더 커졌습니다. 빼곡히 자란 가지들을 전지가위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6시 30분이 지나자 향존 법사님과 거사님 여섯 명이 과수원에 도착했습니다. 무거운 예초기를 들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온 거사님들의 얼굴에 벌써 땀방울이 맺혀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아니, 직장은 어쩌고 아침부터 울력을 하러 왔어요?”(웃음)
요즘 스님이 매일 풀을 뽑는 영상을 보고 대구경북지부와 부산울산지부에서 거사님들이 스님을 돕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하루 휴가를 내고 온 거사님도 있었고, 출근 전에 1시간이라도 울력을 하겠다며 온 거사님도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을 한 번 더 오르면 풀로 뒤덮인 두 번째 과수원이 나왔습니다. 거사님들은 스님과 짧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예초기 시동을 걸고 사정없이 풀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풀로 뒤덮여 잘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스님도 전기 예초기를 원형 날로 갈고 풀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형 날이 생각보다 잘 듣지 않았습니다. 다시 나일론 줄로 갈고 거사님들이 풀을 베고 있는 과수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거사님들은 순식간에 두 번째 과수원의 풀을 다 베고 한 번 더 오르막길을 올라 세 번째 과수원에 갔습니다. 이곳에는 풀이 과일나무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거사님들은 빠르게 풀을 벴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는 사이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햇살이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은 전기 예초기로 나무 가까이에 난 풀을 말끔히 깎았습니다.
나무 주변 풀을 다 깎고 나서 전지가위를 들고 과일나무 가지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과수원 두 곳에 풀을 깔끔하게 깎았습니다.
“이제 내려가면서 길을 예초합시다.”
올라오는 길이 정글과 같았습니다. 거사님들은 원래 길보다 더 넓게 풀을 깎으며 내려왔습니다.
“자, 잠시 쉽시다!”
첫 번째 과수원까지 내려와 잠시 휴식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한 얼음물을 나누어 마셨습니다. 한 거사님이 땀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옛날에 배고픈 시절에는 산 위에까지 와서 농사를 지었지만, 요즘 이런 곳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스님이시니까 하지요.”
“어르신들이 더 이상 농사짓기 어려운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짓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거사님들이 예초를 해주셔서 빨리 했어요. 첫 번째 과수원은 며칠 전에 법사님들이 예초를 해주었는데, 한참 걸렸어요.” (웃음)
잠시 휴식을 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거사님 한 명은 출근을 하러 가서 기념사진은 5명만 찍었습니다. 거사님들은 활짝 웃으며 외쳤습니다.
“스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스님과 거사님 두 명은 산윗밭 울타리와 사면을 뒤덮고 있는 풀을 베기로 했습니다. 향존 법사님과 거사님 세 명은 들깨 밭으로 가서 예초기로 풀을 벴습니다.
울타리를 뒤덮은 덩굴을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사면을 뒤덮은 풀까지 싹 치웠습니다.
“아이고, 덥다!”
머릿수건이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습니다.
9시 30분이 넘어 울력을 마치고 그늘에 앉아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다가 오후 2시에는 SK에너지 초청 강연을 하기 위해 울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스님은 곧 단잠에 들었습니다.
3시가 되어 SK에너지 울산COMPLEX 본관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관계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강의를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회의실에서 관계자들과 SK에너지 직원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시 30분이 되어 강연 장소인 지하 1층 하모니홀로 이동했습니다.
650석이 다 차고, 맨 뒷줄에 서 있거나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무대에 오른 스님은 청중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강연을 하러 가보면 늘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남성이 많고 여성이 몇 분 안 되네요. 중공업, 자동차 공업, 화학 공업 분야는 아직도 남성이 주류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대다수의 직장이 여성이 더 우위인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좀 특별하네요. 군대에 온 기분이 듭니다.” (웃음)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4월~6월에 동남아, 서남아를 답사하며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저는 4월에서 6월 중순까지 두 달 이상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등 12개국 80여 곳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만 놓고 보면 노사 갈등, 여야 갈등, 빈부격차, 젠더갈등 등 여러 가지 갈등이 있고 사회문제도 많습니다. 게다가 자살률은 세계에서 제일 높고, 출산율은 제일 낮죠.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 밖에서 보면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이 괜찮은 나라이고 가능성이 높은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대로 괜찮다고 안주하면 정체될 것이고,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라고 하는 자존감을 가지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많은 갈등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의 바탕 위에 비판이 있어야 혁신이 일어나고 개선이 됩니다. 비판만 있으면 파괴적인 에너지가 되고, 긍정만 있으면 안주하게 됩니다. 긍정 위에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요소를 알았으면 좋겠고, 긍정적인 요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러분들은 하청 업체나 여러 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만날 겁니다. 제가 이번에 동남아 각국을 방문해 보니까 그들은 자기 고향에 가면 우리 사회 안에서 우리들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라고만 보지 말고 좀 더 존중해 주는 자세를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자세야말로 미래 한국의 국위 선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질문자는 퇴직이 다가오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퇴직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저는 정년퇴직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퇴직 후에 무엇을 할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30년 넘게 안정된 직장생활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서 더더욱 퇴직 후 낯선 미래가 두려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퇴직 후에도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을까요?”
“30년을 일했으면 많이 일했어요, 적게 일했어요?”
“많이 일했습니다.”
“많이 일했으면 퇴직하고 쉬어야죠. 쉬는 데 무슨 준비가 필요합니까?”
“제 주변 생활의 80% 이상을 직장 동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봉사 활동 하고 외부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 직장 동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도 해보고 싶고, 사회에 잘 쓰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있는 돈마저 까먹으려고 그러네요.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군대에서 퇴직한 장성들이나 회사에서 고위직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주식 투자라든지 어떤 자리를 제안할 때 쉽게 넘어가는 겁니다. 일할 만큼 충분히 일했으니까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소일거리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다면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어서 퇴직 후에도 남이 봤을 때 좀 모양이 있는 자리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제안이 ‘조그마한 회사에서 간판 사장을 해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여기에 투자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제안도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순진하게 가진 돈을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돈 까먹으려고 지금 머리를 쓰는구나’ 하고 말한 거예요.”
“퇴직 전에 재산을 아내 이름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요즘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모두 웃음) 질문자의 부모 세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녀가 회사를 끝까지 다니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회사를 다니다 중간에 나오거나, 아니면 작게 자영업을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문제가 생깁니다. 자녀가 사업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면 부모가 논이라도 팔아서 자금을 대주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사업 대출을 받을 때 부모가 은행에 선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고향의 집과 선산을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가 시골에서는 흔히 일어납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두북수련원 주위에도 대부분의 땅을 고향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습니다. 농촌진흥공사로 넘어가거나 외지인에게 넘어간 경우가 많아요. 이런 현상 때문에 노인이 되었을 때 굉장히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의 경우에는 마음을 이렇게 먹어야 됩니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챙겨야 한다. 죽는 날까지 집은 아니더라도 내가 살 수 있는 방 하나는 꼭 갖고 있어야 된다. 가끔씩이라도 먹거리를 재배할 밭뙈기 하나 정도는 꼭 있어야 된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배우자도 믿을 수 없고, 자식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못한다면 노후에 삶이 초라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젊을 때는 재산을 다 날리고 셋방이나 텐트 안에 살더라도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늙어서 같은 상황에 처하면 보호 시설이나 요양원에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의 나이라면 어떤 야망을 가지고 투자를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퇴직자 중에서도 열에 한두 명 정도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퇴직자의 경우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런데도 퇴직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나는 성공할 거야’ 하고 기대를 하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창업 아이디어가 있거나, 전문 기능을 갖고 있어서 그 경력을 살려 창업이 가능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사업이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퇴직금을 가지고 뭔가 일을 벌이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큽니다. 젊을 때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면 안전에 대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아요. 과거 30년 전에는 먹고살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투자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 전체적으로 먹고살 만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성장보다는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길입니다.
질문자가 퇴직까지 앞으로 몇 년이 남았다면,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두세 가지 정도 선택해서 주말에 그것을 해보시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귀농을 하고 싶다고 덜컥 퇴직해서 집을 팔아 시골로 내려가면 3년도 못 살고 돌아오게 되거든요. 해외 교민들도 노후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퇴직 후 재산을 다 정리하고 귀국했다가 얼마 살지 못하고 다시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귀농을 하고 싶다면 지금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실제로 지어보아야 합니다. 한 3년 해보면 본인의 계획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어요.
만약 퇴직 후에 빵가게를 열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주말마다 빵집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봐야 합니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고,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좋아요. 그래야 이 일이 할 만 한지 아닌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퇴직 후에 시민 단체나 환경 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직하고 나서 바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이런 중간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장을 다닐 때 은퇴 이후의 계획을 미리 테스트해보는 거죠.
둘째, 퇴직을 한 후에 한 1년에서 3년 정도는 쉬는 길도 있습니다. 부인이 같이 직장을 다니든, 집에 있든, 퇴직을 하면 욕심부리지 말고 한번 쉬어보는 거예요. 질문자의 세대는 눈만 뜨면 그저 빨리빨리,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잖아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다 보내야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승진을 향해 달리느라 시간을 다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퇴직 후에는 손을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지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밥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돈 좀 벌어다 준다는 미명하에 부인에게 큰소리 뻥뻥 치고 살았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 퇴직한 다음 날부터 딱 앞치마를 두르고 부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30년 간 내 뒷바라지한다고 참 수고 많았어. 오늘부터 밥은 내가 할게. 청소도 내가 할게. 커피도 내가 끓여줄게.’
이렇게 태도를 바꾸지 않고 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밥 가져와라’, ‘커피 가져와라’ 하고 있으면 부인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렇게 되면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남편은 ‘내가 돈을 못 번다고 무시하나?’, ‘내가 그동안 벌어다 준 돈이 얼마인데!’ 하는 생각이 들겠죠. 부인은 ‘평생 저렇게 가만히 앉아서 주는 것만 받아먹는다’, ‘심부름만 시킨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갈등이 증폭되어 언젠가는 폭발을 하게 됩니다. 노인 이혼율이 높은 이유도 많은 요소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인들은 여러분들이 돈을 벌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지내고 살아온 측면이 큽니다. 일본에서 황혼 이혼율이 굉장히 높은 이유도 여자들이 참고 기다리다가 남편이 퇴직하면 바로 이혼 신청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혼 신청을 하면서 재산 절반을 달라고 하죠.
첫째, 퇴직 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쉬는 동안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그동안 내 뒷바라지하느라 참 수고 많았어’ 하는 관점을 갖고 최소한 3년은 가족에게 봉사를 하는 길이 있습니다. 퇴직 후 돈벌이, 친구 관계, 이런 걸 고려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한국 문화는 가족이 한 집에 살 뿐 가족 문화는 아닙니다. 자녀들은 자녀들끼리 놀고, 남편은 직장 가서 동료들과 술 먹고 놀고, 아내는 아내들끼리 어울려 놉니다. 한 집에서 잠만 같이 자는 것일 뿐 ‘끼리끼리’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문화가 형성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당도 많고, 술집도 많은 겁니다. 그래서 가족끼리의 사랑과 유대감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50대 또는 60대 아저씨들은 아내에 대한 애정 표현이 너무 부족합니다. 특히 경상도는 더 하죠.
그러니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지, 돈을 더 버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아내도 남편이 퇴직하면 돈 벌어 오라고 자꾸 압박하지 말고, 조금 쉬라고 얘기해 주어야 해요. 이렇게 해서 약간 여유를 가진 뒤에 주위를 돌아보면 소일거리가 많이 보입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눈에 보이는 소일거리를 찾아서 해야 돼요. 퇴직하기 전에 미리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정했다 하더라도 조금 쉬고 난 뒤에 하는 게 좋습니다. 퇴직할 때까지 죽도록 일만 했다면 적어도 1년은 쉬어야 합니다. 3년 정도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일을 물색하는 과정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후에 소박하게 일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
사회적으로는 이미 30년 전에 정년퇴직이 58세로 정해졌잖아요. 그 사이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늘어났습니다. 그에 맞춰 정년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금 피크제’라는 게 생긴 겁니다. 만약 정년이 60세라면 60세까지는 그냥 일하더라도 60세 이상이 되면 월급을 절반으로 낮추고, 근무시간을 주 3일로 줄이고, 주로 기술적인 조언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부장을 했던 사람도 수위를 맡을 정도로 직급을 팍 낮추는 그런 조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각자가 수행이 좀 되어야 가능합니다. 여러분도 직급이 올라가는 것만 경험해 봤지 직급이 내려오는 경험은 못해 봤잖아요. 왜냐하면 직급이 내려가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젊은이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니던 직장에서 직급을 낮춰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근무하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70세까지도 재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사회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를 마련하는 문제이니까 정부나 국회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대신 저는 조언을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첫째, 불안해하지 말고 주말을 이용해 몇 가지 사업을 물색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쉬기도 하고, 돌보지 못한 가족도 돌보고, 아이들과 대화도 충분히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리 좀 와라! 얘기 좀 하자!’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지 말고 우선 상대의 얘기를 들어줘야 돼요. 어떤 일이든 의논 없이 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가정의 평화와 사랑을 먼저 느낀 바탕 위에서 노후를 설계하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평균 나이를 생각했을 때 질문자는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한 만큼 더 살아야 되기 때문에 건강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 일과 중에 운동 시간도 배정하고, 마음의 여유도 가지면서 선택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변두리 어딘가에 차를 세워두고 생각을 좀 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답변에 모두가 공감을 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선정된 5명이 더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 1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웃고 손뼉 치고 공감하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입니다. 나만 좋고 남에게 손해가 나면 상대가 못 참습니다. 상대는 좋은데 나에게 손해가 나면 내가 못 참습니다. 참는 것은 오래 못 갑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렇게 말하며 화를 내듯이 보통 한국 사람들은 세 번밖에 못 참습니다. 지금은 좋은데 미래에 나빠져서 화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욕망을 쫓아가게 되면 주로 그렇게 됩니다. 반대로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은 굉장히 힘들게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거나,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되고,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을 다닌다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도 괜찮아야 됩니다. ‘지금 참고 일하면 나중에 이익이 될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은 지금의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항상 현재에 주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10년 후를 위해서 열심히 참고 살았는데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 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내 삶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너무 ‘좋음’에만 빠져서 살면 미래에 불행이 닥쳤을 때 큰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니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내내 박수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차를 타고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를 보고 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전국법사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하고, 주간반을 위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을 위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