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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기도 가운데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더 나아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도 더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혜와 능력과 만복의 주인이시기 때문이고, 그 백성들의 살아 있는 믿음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그 백성들이 좋고 선한 것들로 가득하기를 가장 원하심이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인생들을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못 주실 것이 없는 것이며, 잘 따지고 보면 원론적으로는 믿음에 따라 우리들이 응답받고 누릴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복들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만큼인 것이고, 동시에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 만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대한 계획과 약속과 섭리들 만큼인 것이라 할 수 있고..
진정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모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 만큼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솔로몬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에서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 더 나아가 다른 그 누구보다도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야 말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합당한 기도와 예배와 믿음의 몸부림들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복과 역사들, 열납과 응답들이 근본적으로는 변함없이 함께 하고 있고 역동하고 있으며 예비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모든 전제는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으로 다시 말해 다양한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다른 그 무엇보다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관건이고 열쇠이며 통로인 것일 뿐 아니라 최우선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진정 본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 신실하고 치열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모든 근본이자 핵심이며, 기준이자 실제이고, 믿음의 세계, 복음의 능력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전제이자 전부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인데..
단적으로 말하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름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며, 실상 잠시만 생각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와 정욕과 세속들 등을 감추며 벗하고 반복하는 자들에게, 또한 그러한 자들이 올려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작정들 가운데 기뻐하시거나 은혜와 복들을 부으실 리는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아무리 감추고 심지어 회칠까지 한다고 한들 그러한 죄악들 하나하나까지 다 모르실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아무리 깊숙이 숨기고 은밀하게 처리하는 것인들 단 하나라도 빠짐없이 다 아시는 것이고, 게다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내가 모르고 잊어버린 죄악들까지도 다 아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그냥 넘기시지는 않는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시대와 나라들을 넘는 구원이 아니라면 우리 인생들에 있어 그 어떤 사함이나 나음, 회복과 갱신, 역전과 소망 등과 같은 은혜와 긍휼과 능력과 구원의 일들이 있을 수 없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실상이라는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 여러 가지 모양들로 범하게 되는 그러한 악들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경우 하나님의 시간까지 은혜와 응답과 복들이 막히곤 하고,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으며 하루 바삐 돌이키고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설 수 있도록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입니다..
아래 본문의 솔로몬만 하더라도 말씀대로의 신앙과 함께 하는 살아 있는 믿음의 몸부림들 가운데 그렇게 큰 은혜와 응답들, 복과 풍성함들을 받고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보면 비록 한 때이긴 했고, 참으로 더 훗날에는 참회하고 돌이킨 것임이 분명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갈수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기는 했고,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과 믿음의 역사와 열매들이 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열왕기상 11장 9~11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리고 열왕기상 11장 14절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또한 11장 23절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등에서와 같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작지 않은 시간 죄악과 불신앙들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며 아내들이나 후궁들로 삼고 우상 숭배에까지 심각하게 빠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결코 적지 않은 하나님의 징계들이 그의 온 지경에 임하게 되고 넘치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여러 대적들이 일어나게 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그 아들 르호보암 왕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쪼개시어 르호보암 왕의 남 유다에는 유다 지파 중심으로 극히 일부 지파만 남기신 것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은 그 이전에도 가장 유명한 믿음의 대선배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다윗 또한 가장 큰 은혜와 승리들, 복과 흥왕들의 때에 순간순간 깨어 있고 더욱 살아 있는 믿음이 되지 못함으로 인해 오히려 밧세바와 간음했고,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큰 은혜와 승리와 복들의 위치와 권한과 직위를 악용해서 오히려 그 남편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와 유사한 악과 같은 있을 수 없는 죄악을 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진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믿음과 함께,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가운데 통째로 하나님의 것으로 뒤바뀌게 되고 영생까지 이어지게 된 의미도 포함된 구원이라는 것이, 더군다나 행위가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듯이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분명한 것이라면 행위에 따라 돌이켜 질 수 있는 이치일 수 없는 것이기에, 실제로 만일 그렇게 행위에 따라 구원이 돌이켜 지는 차원인 것이라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은 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구원이 돌이켜지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기에 그렇게 돌이켜 질 수 있는 개념 자체부터도 아닌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는 것으로..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그에 적합하고 합당한 사람 막대기들과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이 사무엘하 12장부터 보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러 저런 모양들로 가득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 속에는 그의 배다른 자녀들의 성폭행과 살인, 또한 여러 반란들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생각 이상으로 쓰라리고 처참했던 상황들이 많았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말씀, 말씀의 신앙이 중요한 만큼 죄악, 불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분명한 것은 결국 그러한 죄악과 세속들 등으로 병들거나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아래 본문 당시의 솔로몬이나 심각한 죄악들을 범하기 전의 다윗과 같이, 뿐만 아니라 요셉이나 다니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후의 베드로와 다메섹 도상 이후의 바울 등과 같이..
말씀과 기도와 찬미 가운데에서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과 함께 진노와 징계들, 곤고와 비참들 등이 아닌 승리와 역전들, 은혜와 복들이 생생하게 함께 하고 풍성히 예비되어 있으며 기대 이상으로 강렬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여러 모양으로 험하고 위험하며 살벌하고 악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섭리들, 시간과 계획들 안에서 살아 있고 뜨거운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고난과 시련들도 있을 수는 있는 것이나 실상 만일 그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그때그때, 순간순간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 극복하며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게 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이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함께 하는 것임은 물론 그 모든 시간과 과정들 속에서도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그 이상의 연단과 영광과 계획과 예비들이 기다리고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실상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와 같은 모든 이치와 법칙들은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시고 실제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참으로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영적인 이치와 하나님의 세계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이며, 사실상 우리들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 모든 곳들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더 나아가 모든 일들과 영역들, 기도 제목들 하나하나에 있어서까지 생각 이상으로 깊이 해당되며 상상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특히 오늘 우리들의 예배와 기도들에 있어서의 열납과 영광들,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응답들,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온 지경에 있어서의 온갖 은혜와 복들, 책임져 주심과 예비하심들 등에 깜짝 놀랄 정도로 상통하고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 시도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것입니다..
다만 애초부터 우리의 힘과 세상적 방법들로는 그러한 죄의 유혹과 권세와 현실들에서 이기기도, 벗어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우리 인생들의 힘과 의와 방식들로는 말씀을 갈망하며 행하기도 힘든 것이고, 심지어는 제대로 깨닫거나 온전히 믿게 되는 것부터가 원론적으로는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순간의 방심과 연약함과 인간적 한계 등과 함께 걸려 넘어졌던 한 때의 다윗이나 베드로 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한가운데 있는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의 일들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실제가 되게 하시며, 진정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그 십자가 구원과 함께 일하시고, 특히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약속되시어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실질적인 하늘의 능력과 은혜들을 덧입고 의지하며 누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필요하며, 절실하고 또 절실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들의 모든 일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이름에 약속되신 보혜사 성령님, 그리고 그로 인한 기도와 찬미들 가운데에서의 오직 말씀, 말씀의 신앙이 모든 시작과 우선, 중심과 전부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믿음을 진정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고, 기뻐 역사하지 않으실 리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고 강렬하게 역사하시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말씀으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과 함께 아래 본문 당시의 솔로몬과 같이 말씀대로 오늘도 사람이 못하고 세상이 짐작도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응답과 복들 등을 실제로 생생하게 경험케 하시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말씀, 말씀 신앙의 복합체이자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과 절대 진리이자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오직 말씀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강렬하게 나타내시고 맛보게 하시어 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바로 나에게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에도,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3:11~14)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16일(토)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