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팔코네(Mateo Falcone) 는 아들의 손에서 은시계를 빼앗아 마당에 있는
돌에 힘껏 내리쳐서 산 산 조각 나게 깨트려 버린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총을 가지고 마당으로 나와 어린 아들에게 앞장서서
동구 밖 언덕 너머로 가라고 소리친다.
어린 아들은 큰 소리로 울며 제정신이 아니다.
아이 엄마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울부짖으며 아이 아버지에게 매달려 집을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 지 만 남편의 고집을 꺽지 못 한다.
언덕 넘어 계곡까지 울며 걸어온 아들에게 마테오 팔코네는 무릅을 꿇고 앉아
십계명을 외우라고 큰 소리로 명령한다.
그리고 얼마 후 총소리가 나고, 마테오 팔코네는 아들을 총살한 것이다!
당연히 사람이 치켜야 할 의리를 저버린 아들을 단죄한 것이다.
마피아의 본거지라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이 이 단편의 무대다.
내가 이 단편을 읽은 것은 지금으로 부터 76년 전(?!) 6.25 전쟁 때 피난 간 시골
원두막에서 굴러다니던 헌책에서 였는 데,
그해 한여름 비 오던 그날 원두막 안은 참 시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10대 초반이던 그때 읽었던 이 “은 시계” 라는 짧은 이야기 와
“마테오” 라는 이름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지금까지 도 기억에 남아있다.
엊그제 일을 까맣게 잘도 잊으면서.....
Reminiscence Bump (회고 절정) 현상 때문이다.
10대 초에서 20대 초반 기억이 그 이후 어떤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현상 말이다.
내가 이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HL1YM 이 om 이 올타 게시판에 쓴 글
“When the Stars Begin to Fall” 에서다.
이 단편의 맨 앞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한적한 이탈리아 시칠리섬 농촌, 남자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외출하여 혼자 집을 보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총소리가 나고, 얼마 뒤에 다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힘겹게 겨우 걸어오는
한 남자가 이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쫓기는 이 사람은 아이에게 좀 숨겨달라고 급하게 애원한다.
그러나 이 영악한 남자아이는 숨겨주면 뭘 주겠느냐고 되묻는다!
다급한 이 남자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아이에게 준다.
이 소년은 남자를 마당 한쪽에 있는 헛간 건초 더미에 숨기고, 그 위에 졸고 있는
고양이를 얹어 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무장한 군인들이 이집 마당에 들이닥치고,
이 남자아이에게 총을 맞고 피 흘리는 남자를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아이는 딴청을 부리며 못 보았다고 잡아뗀다.
특무상사는 핏자국이 마당에서 끝난 정황으로 보아 이 집에 숨은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 한다.
온갖 수단을 써서 이 약아빠진 아이를 회유해 보지만,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아이 아버지와는 먼 친척이 되는 특무상사는 아이 아버지를 들먹여도 요지부동이다.
특무상사는 하는 수 없이 주머니에서 시계 줄에 매달린 반짝대는 은시계를
소년의 얼굴에 대고 흔든다.
잠시 마음의 갈등을 겪던 소년은 은시계를 잽싸게 낚아채며 턱으로 건초 더미를
가르친다.
피 흘리는 남자가 체포되어 끌려가며 경멸하는 눈초리로 소년을 노려보면서
“네가 이러고도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냐?” 라고 소리친다.
소년을 속으로 뜨끔 한다.
이 남자는 분리 독립운동(?)을 하다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소년의 아버지
마테오 팔코네 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이 지역에서 마테오 팔코네는 총 잘 쏘는 남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저녁때가 되자 외출했던 소년의 아버지 마테오 팔코네 부부가 집에 돌아오고,
마당의 핏자국 그리고 아들의 손에 있는 은시계를 보고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체포되어 압송되는 그 남자를 보았을 것이다.
단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내가 처음 이 단편을 읽은 그때는 대략의 줄거리와 중국인 이름처럼 느낀 “마테오”
그리고 시칠리 섬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단편의 무대가 이탈리아이니, 작자도 당연히 이탈리아 사람이겠거니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인터넷 세상이 된 뒤에 우연히 기억을 더듬어서 검색을 해보니
작가는 프랑스 사람, 프로스페르 메리메 (Prosper Merimee) 이고, 1829년 작
마테오 팔코네(Mateo Falcone) 라는 단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국내 여러 종류의 책 중에서 한 가지 판본의 표지.
이 단편 마테오 팔코네 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러 종류가 번역 출판되어
시판되고 있다.
이 판본에서는 내가 10대 시절 읽었던 기억과 줄거리는 같지만 몇 가지는
좀 다르다.
이 단편의 무대는 내가 기억하는 시칠리섬이 아니고 나포레옹 이 태어난 프랑스령
코르시카(Corsica) 섬 이란다.
아마도 당시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과정 또는 내 기억의 오류로 생긴 듯하다.
뚜껑이 가려진 혹은 없는 회중시계 사진.
시계 주머니에서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어 시간을 보는
회중시계 (懷中時計:Pocket Watch) 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요즘엔 골동품으로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손목시계가 보급되기 전 남자들이 조끼나 바지에 있던 시계 주머니에 시계를 넣고
시계줄을 늘어뜨려 멋 부리던 회중시계.
이 회중시계는 꼭지를 누르면 톡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리고, 그 안쪽에 예쁜 여자
사진이나 아니면 아기 사진을 넣어 놓은 것을 보기도 있는데, 나의 선친께서
몹시 아끼던 물건으로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신사복 바지에 있던 시계 주머니는 없어져서 귀중품을
넣을 때 사용했는데 좀 아쉽다.
그건 그렇고
그 유명한 Oh. henry 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 에 나오는 금(Gold) 시계
도 있다.
미국 뉴욕에 사는 가난한 젊은 부부가 성탄절이 되자 남편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다운 긴 금발 머리에 꽃을 보석이 박힌
머리핀을 사 온다.
그런데 아내는 이것도 모르고 남편의 시계에 줄이 없는 걸 늘 안타깝게 여겨
자기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멋진 시계 줄을 사 온 다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이야기 말이다.
자 그러면 이제는 45년 전으로 가보자.
1980년대에 내가 창업한 자동차 부품회사는 때마침 붐을 탄 자동차 와
그 업계에서 내 인맥이 작용, 규모가 크게 늘어 서울에 본사 건물을 짓고,
충남에 큰 공장을 세워 규모가 큰 회사가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97년 소위 IMF 사태가 일어나고,
회사는 국내 은행을 통하여 끌어다 쓴 저금리의 외국 자금 때문에 갑자기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할 수 없이 구조 조정을 하기로 하고, 내가 모든 간부직원들 의 일괄
사직서를 받는 껄끄러운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게 되었다.
모든 간부 직원들을 회의실로 모이게 한 나는 차마 모두에게 사직서를
쓰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에 직원들 앞에서 내가 먼저 내 사직서를 썼다.
내 사직서를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여러분들도 사직서를 써야 한다고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나는 사직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지만 창업 초기부터
동고동락하던 간부 직원들 앞에서 의리상 차마 나만 쏙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회사는 냉큼 “내 사직서만” 수리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창업주에 회사 지분을 가진 주주(Shareholder) 그리고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보증수표(?)로 통하던 나를.....
이래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가족 간에도 법정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가.
나에게 집히는 것이 있기는 했다.
회사 내에서 언제나 직원들 편에 서서 “악마의 대변자” 노릇을 하던 까칠하고,
고집 센 나였다.
이 미련한 남자는 한참 뒤에서야 회사가 파 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진 것
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고액 연봉에 부러울 게 없던 나, 친구나 옛 직장 동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고난의 행군” 이 시작되었다.
이 아둔한 남자는 의리 나 명분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세상 이치를 뒤늦게 그것도 겨우 깨닫는다!
세상을 살아보면 좋은 시절도 어려운 때도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더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거 라 구요?”
그건 힘겹게 마차를 끄는 당나귀 코 앞에 매달아 놓은 옥수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 유명한 Apple 의 한 고집하던 고 Steve Jobs 도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던데, 나는 언감생심 그 근처에도 못 가는 정도였지만,
왠지 그런 생각도 난다.
혼자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구실로, 바보처럼.
Apple 의 Co-Founder, Steve Wozniak 은 Ham 이었는데, 아깝게도
자가용 경비행기를 조정하다가 추락하여 가족과 함께 sk 했다.
미국에는 이렇게 사이좋게 더불어 창업하여 세계적인 대기업이 된 예는 많은데,
Apple 은 물론이고, HP, TRW 등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LG 가 유일한 듯하다.
그건 그렇고,
고집 센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많은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예수, 석가모니 그리고
쏘크라데스 등 등 이 엄청난 고집 쟁이 였다고한다.
“고집은 인생을 재미있게 한다.
고집 있는 사람은 남들과는 다른 법칙에 복종한다, 자신 속에 있는
단 하나의 거룩한 법칙, 바로 “자신 의 감각” 에 말이다“
-헤르만 헷세-
-73-
첫댓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 가듯 글을 읽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제켜두고 어릴 때의 큰 외삼촌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모시 조끼적삼의 주머니에 넣어 두고 가끔씩 꺼내어 뚜껑을 열어 보시던 모습이 아련합니다. 긴~ 은줄에 묶여 반짝거라는 그 회중시계가 눈에 선합니다..
그러시군요.
난 선친에 대한 기억이 있답니다.
회중시계를 애지중지하시던 일과 깡통에 든 썬 담배를 파이프에 넣고 담배 연기를 뿜어 대던 모습.
그 냄새가 담배에 첨가된 향료 때문에 어린 나에게 조금은 향기로웠지요.
그런데 라디오를 몹시 좋아하셨답니다.
그 영향으로 내가 지금 Ham 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hi hi hi
지금 생각하니 Hallicrafters 의 여러 기종들을 바꿔가며 집에 설치하고는 했지요.
물론 그때는 난 라디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 시절 나의 선친께서는 Ham 이라는 걸 알고 계셨을까?
해방 전에 우리나라에서 Ham을 하신 몇 분 중에 이인영, J8CK 선생이 있는데,
KARL 이사회와 기타 공적 모임에서 자주 만났고, 그때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는데,
HL1DQ om 의 아버지입니다.
단파를 수신만 해도 체포당하던 시절에 어떻게 Ham 을 할 수 있었을까?
경외 스럽기 까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더워 “짤짤 거리지” 못하니 대신 PC 자판을 가지고 놀지요.
ㅋ ㅋ ㅋ
댓글 고맙습니다.
@HL3EA 좌장님은 그래도 춘부장님의 모습(얼굴)은 기억하시겠지요? 그나마도 부럽습니다. 소생은 갓태어나 10달만에 달랑 이름 두자만 남겨 주시고 소천하셨으니 사진 속에서나 기억할 뿐이고 거의 외가에서 장성했기에 외삼촌둘이 전부랍니다. 그래서 그 회중시계도 기억합지요. ㅎㅎㅎ
짤짤거리거나 빨빨거리고 가실 곳이나 있으신지요? 한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했습지요. 참고 기다리시다가 시원해 지면 싸 돌아 다녀 보시지요. ㅋㅋㅋ
@HL1FY 그러시군요 -2-
창 밖으로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천천히 동쪽으로 흘러 가는 게 보입니다.
가을이 모퉁이 까지 와 있는 듯.
숫컷들이 바람 난다는 가을.
그때나 봅시다!
ㅋ ㅋ ㅋ
EA 황오엠님의 글은 참 맛갈나서 다시 한번 읽게 됩니다. FY 황 오엠님과 합작으로 사진과 해설이 곁들인 시집이나 HAM LIFE 단편집을 출판하여도 프로의 냄새가 날듯 합니다.
저는 회중 시계가 아닌 손목 시계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돐이 되기 한달전 일어난 6 25 당시 인민군이 집으로 쳐들어와 저의 부친을 납치할때 손목시계를 풀어 어머니 한테 드렸는데 그후 15년이지나 제가 고등 학교시절 그 손목시계를 받고는 한동안 멍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아마 이런 일도 EA 황오엠님이 글을 쓰셨다면 정말 정이 흠뻑 솟이나게 쓰셨을 겁니다.
-1YM 이 om 의 댓글을 읽고 먹먹해져서 나도 모르게 오래전으로 순간 시간 여행을 했답니다.
그 시절 그러니까 해방 전 우리나라의 일부 엘리트 들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칼 마르크스 의 공산주의에 의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순진했지요.
실제로 그때 소련은 이들을 지원해 주기도 했답니다.
내 어린 기억으로도 6.25가 일어난 다음 날 우리 집과 친한 동네 엘리트를 퇴각하는 경찰이
즉결 처분 한 걸 기억합니다.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지 몰랐다는, 친일로 몰린 그 시절 지식인들의 하소연도 참 안타깝습니다.
그놈들이 아무나 납치하지 않는데....
가슴 아픈 추억을 가지고 계시군요.
물건은 생명이 없지만 어떤 경우 생명체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지요.
더구나 “째깍 째깍” 거리는 살아있는 시계는 더할 나위 없지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댓글 과 분에 넘치는 칭찬은 내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답니다!
너스레 떠는 수준인데.... ㅋ ㅋ ㅋ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