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교야박(楓橋夜泊)”을 중국 공산당은 칼잡이로 사용 !!
위의 붓글씨 내용은 “풍교야박(楓橋夜泊)” 이라는 중국 당(唐)나라 때
장계(張繼) 시인의 시(詩)다.
가을 강과 다리, 단풍, 작은 배를 배경으로 쓴 유명한 시(詩)다.
이 시(詩)는 특별히 필자 오랜 기억 속에 있다.
학생시절 서예를 배울 때 스승께서 이 시(詩)를 외우면서 쓰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한시(漢詩)를 대하는 것은 이 시가 처음이었다.
시(詩) 제목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한자(漢字) 글자대로 설명하자면
“단풍이 물든 다리아래서 하룻밤을 보내다”이다.
위에 시(詩) 내용은 붓글씨에 대한 설명을 아래에 하였다.
月落烏啼霜滿天-달 지고 까마귀 울고 서리 찬 하늘이라고 시작한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뒤에야 안것이지만 많은 서예가들 또는
한시(漢詩)를 좋아하는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즐겨 쓰는 시였다.
이 시(詩)의 배경을 찾아보니까 전쟁(戰爭)을 피해 떠돌아다니던
시인(詩人)이 “풍교(楓橋)”라는 이름의 다리 부근의 강 배위에서 밤을
보내면서 잠을 못 이루며 객지(客地)에서 나그네의 쓸쓸함을 달래는
시(詩)였다.
강변의 단풍나무들
고기잡이배에 켜진 등불
문득 느껴지는 만리타향의 외로움
그리운 고향 생각
검다시피 어두운 밤중에 뱃전으로 들리는 주변에 있는 절
한산사(寒山寺) 종소리…
한껏 외로움을 자아내게 하는 정경(情景)이다.
당(唐)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대표적인 절창(絶唱)이다.
시(詩) “풍교야박(楓橋夜泊)”배경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시(詩) 제목의 “풍교(楓橋)는 글자대로 단풍나무와 함께 있는
다리(교량(橋梁))을 지칭하나
현대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중국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반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일환으로 준군사적인 조직을 이루어 투쟁한
홍위병(紅衛兵)으로 대학생 및 고교생 집단을 전위대로 이용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 한자(漢字)도 기존 번체자(繁體字)에서 간화자(簡化字)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은 군중(群衆)을 동원한 대규모 정치운동이 있었다.
이 정치 운동은 군중(群衆)이 “군중(群衆)의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는
명목 아래 벌어진 운동이다.
시(詩)안에 있는 저장(浙江)지역의 “풍교(楓橋)”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이 운동은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옛 반역 잔재들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혹독한 틀을 유지했고, 무분별한 인민재판(人民裁判)의
운동 방식에 따라 반역자들을 처리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의 이 사건을 “풍교경험(楓橋經驗)”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수시로 필요할 경우에 마치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꺼내 썼다.
중국은 혹독(酷毒)한 계급투쟁으로 많은 정의로운 지식인을 처형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사실상 첫 단초가 이 “풍교경험(楓橋經驗)”
이라했다.
이때는 공자(孔子)의 묘(墓)도 파헤쳐 훼손당했다고 한다.
시진핑 공산당 지도부가 망령(亡靈)과도 같은 이 대중운동을
다시 소환한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시진핑 정치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서정적(抒情的)인 “풍교야박(楓橋夜泊)” 시(詩) 제목이
공산당의 독재(獨裁) 운동의 제목으로 응용되는 것 아쉽다.
또
이런 비인간적인 중국에 스스로 종속(從屬)되겠다는
문재인과 이재명의 굴종적(屈從的) 친 중공 좌파 자세도 서글프다
얼마 전에는 주한 중국 대사 싱하이밍(邢海明)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우리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발언이 문제 되었다
중국 대사 싱하이밍의 "후회할 것" 발언이 문제 되었다
2023.06.10 조선일보
중국 정치의 비 시대적 역행(逆行)과 퇴행(退行)을
한국 민주당이 본을 뜨고 있는 것이 “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詩)처럼
서글플 뿐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