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귀환과 민간소비 부진
담당부서조사국 거시분석팀 과장 정동재등록일2024.06.11 조회수4401
첨부파일
2021년 이후 물가는 빠르게 상승하였다. 이처럼 빠른 물가상승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에서 근 10여 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기간 모습을 감췄던 인플레이션의 갑작스런 귀환으로 물가는 곧 모든 이의 관심사가 되었다.
물가라 하면 보통 소비자물가, 즉 소비재의 가격을 지칭한다. 사람들이 소비행위로 구매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곧 물가이다. 따라서 물가와 소비는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둘 간의 관계가 단선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월급이 늘었던 모종의 이유로) 전보다 사과를 많이 소비하고자 하면 시장에서 사과가 귀해지므로 사과의 가격은 상승한다. 이때 사과 소비량과 가격은 모두 높아진다[수요 요인]. 반면 농장에 흉작이 들거나 사과를 따고 옮기는 데 드는 인건비가 올라가면 시장에 사과가 덜 공급되게 된다. 이때에도 귀해진 사과의 가격은 역시 상승하지만, 사람들이 비싸진 사과를 덜 소비하게 되면서 소비량은 감소한다[공급 요인]. 인과관계 측면에서 보면 전자는 소비가 물가를 움직인 것이고, 후자는 물가가 소비를 움직인 것이다. 본고에서 관심이 있는 관계는 후자에 해당한다. 즉 물가가 원인이 되어 소비를 얼마나 낮추었느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다.
물가가 소비를 얼마나 움직였느냐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는 소비와 물가가 움직인 방향에 있다. 앞선 예에서 수요 요인이 발생하면 소비와 물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소비↑, 물가↑). 반대로 공급 요인이 생기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소비↓, 물가↑). 이러한 관점에서 2021년 이후 물가상승기의 소비와 물가 흐름은 어떠했을까? 먼저 소비자물가는 2021년 이후 최근(24.4월)까지 누적 12.8%, 연평균 3.8% 상승하였다. 이는 2010년대 연평균 1.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로 추세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같은 기간 민간소비는 부진하여 팬데믹의 영향이 상당 부분 소멸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추세를 큰 폭 하회하고 있다[1]. 이러한 물가-소비 간 역(逆)의 관계는 2021년 이후 높은 물가상승이 상당 부분 공급 요인에 따른 것이며, 같은 기간 민간소비의 부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림 1. 누적 물가상승률1) 및 상품·서비스 기여도
주: 1) 2010.1~24.4월중 전월대비 물가상승률을 누적 합산
자료: 통계청, 조사국 추정
그림 2. GDP 민간소비 추세1) 및 흐름
주: 1) 점선은 2015~19년 추세
자료: 한국은행, 통계청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가계별로 달라
① 실효 물가상승은 고연령·저소득 가계에서 높았지만 공적이전소득이 이를 만회
물가상승이 소비를 둔화시켰다면 그 영향은 가계별로 고르게 나타났을까? 아니면 누군가 물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가계별 소비품목과 재무상황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먼저 물가의 영향은 가계 소비품목(소비바스켓)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가계는 총 소비지출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또 어떤 가계는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따라서 물가상승이 높은 품목을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가계일수록 실제 체감하는 ‘실효 물가상승’이 높아 물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소비품목의 차이를 고려해 실효 물가상승률을 산출해보면, 물가가 크게 상승한 식료품, 에너지 등 필수재 지출 비중이 큰 고령층 및 저소득층에서 실효 물가상승이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20-23년중 실효 물가상승률은 60대 이상 고령층이 16.0%로 여타 연령층 평균 14.3%보다 높았고, 소득 1분위(하위 20%) 저소득층이 15.5%로 고소득층(소득 5분위, 상위 20%) 14.2%를 상회하였다.
이처럼 실효 물가 측면에서 고령층과 저소득층이 물가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이들 가계의 고물가가 고스란히 소비둔화로 이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물가상승에 따른 가계소득의 변화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물가상승만큼 가계소득이 동등하게 상승했다면 해당 가계가 특별히 소비를 줄일 이유는 없다[2].
이들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원천을 살펴보면, 공적이전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공적이전소득은 노후소득 보호, 취약계층 지원 등 정부 정책이 투영되므로 물가상승으로부터 보호되는 소득[3]이다. 실제로 2021년 이후 공적이전소득이 저소득·고령층을 중심으로 상당폭 증가하면서 해당 가계의 고물가 영향을 완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